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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cy Jan 10. 2023

어른 엄마가 되고 싶은 보통의 엄마

엄마는 늦게 와!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나의 출근준비와 아이 등원준비를 함께 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아이의 유치원과 더 가까운 곳에 근무하는 남편이 등원을 담당한다. 오늘은 모처럼 남편도 방학을 맞아 휴식을 취하는 첫날이라 내가 출근하는 길에 등원을 하겠노라 생색을 내었다.


- 오늘은 엄마랑 갈 거야.

- 싫어, 아빠랑 가고 싶어.


 아빠랑 하고 싶어, 아빠랑 자고 싶어, 아빠랑 가고 싶어.

 

 아빠바라기인 내 아들의 흔한 레퍼토리이다.

 처음엔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나름 편한 것도 있고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엄마껌딱지 아이를 가진 다른 엄마들의 부러워하는 시선도 한몫했다.


 아빠만 찾는 아이를 두고 서운할 일이 아니구나, 좋은 거로구나.

- 오늘은 아빠가 유치원 쪽으로 안 가신대. 지금 엄마랑 안 가면 혼자 유치원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라고 하자 하는 수 없이 따라나서는 아들.

대신 오늘 마칠 때는 아빠가 데리러 가실 거라고 위로했더니 아들은 한술 더 떠,


- 그럼 엄마는 오늘 늦게 와. 늦게까지 일하고 와. 늦게 와!!


 연신 외쳐댄다. 내가 일찍 집에 오면 큰 일이라도 나듯이. 아빠와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아들의 마음일까. 아빠와의 즐거운 등원길을 나에게 빼앗겨서 보상받고 싶은 마음일까.


 누군 좋아서 이 아침부터 바쁘게 준비해서 너 데려다주는 줄 아니? 엄마도 싫어!!라고 뾰족하게 쏘아붙이고 싶은 유치한 마음이 그 순간, 나를 스쳐간다.


 아이가 잘하든 그렇지 않든 늘 엄마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아들아, 네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엄마는 너를 사랑해. ”


- 엄마도 서운하네. 엄마는 우리 아들이 빨리 보고 싶어서 일찍 마치고 급하게 데리러 가는 거였는데 늦게 오라니. 아들은 엄마가 너 오늘 늦게 들어와, 오지 마.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좋을까?


라고 말해주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을 이유로 다른 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마구 하게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제는 그런 것도 배워야 할 때인 것 같다고 애써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아들에게 조용히 일러본다.


 감정을 누르는 듯 누르는 데 실패한 듯.


 등원하는 길, 차 안에서는 우리 둘 다 말없이 음악을 들었다. 요즘 아들이 푹 빠져있는 음악으로.

 LOVE DIVE. 


 한 친구는 이런 말도 했다. 아이에게 화를 너무 많이 내는 것 같다고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인생에는 희로애락이라는 것이 모두 있는데 엄마의 분노도 그러한 감정 중에 하나가 아니냐고, 세상을 살다 보면 겪게 될 감정들인데 집에서도 경험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오은영 선생님이 아시면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이를 키우며 자주 화를 내서 죄책감을 느끼는 친구들을 위로하고자 했던, 반은 농담인 말이었다.


 다른 엄마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엄마 미워, 아빠 싫어.'라는 말을 하는 시기가 누구나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된다. 가끔 아이는 남편에게도 '아빠 싫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다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늘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는 언행 불일치의 모습을 보이고, 엄마인 나에게는 어느 정도 언행일치인 것 같아 이따금 짝사랑의 아픔을 느끼곤 한다.


 나는 아이에게 늘 사랑받지는 못하지만, 아이에게는 늘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아이의 입장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 노력한다는 표현을 썼다.)

 사실 나 또한 언제나 아이가 사랑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떼를 쓰거나, 미운 말로 나에게 상처를 줄 때에는 정말 미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할머니 집에서 제어되지 않는 야생마가 되는 아이를 보면 한 대 콩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울 때도 있다.

 

 너도 항상 반갑고 사랑스럽기만 한 건 아니거든?


 나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똑같이 쏘아붙지 못하는 것이 불공평해서 억울하기까지 하다.

이런 억울함이 드는 나 자신이 유치하고 어른답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스스로를 괴롭힌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가도, 부끄러워서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여러 번 교차한다.


 나는 아이에게 매일 들려줘야 할 말들 best10 등을 보며 밑줄을 치고 저장해두기도 한다. 고마워, 사랑해, 고마워, 너랑 있어서 좋아 등의 표현들.


 사실 엄마인 나도 매일 듣고 싶은 말.

고마워, 맛있게 먹을게, 사랑해, 엄마가 있어서 좋아.

 내일도 나는 퇴근 후, 아이를 만나러 허겁지겁 유치원으로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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