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86
결혼 8년 차. 여전히 새록새록 아내가 얼마나 매력 터지는 사람인지 깨닫는다.
황금연휴에 낀 토요일.
간만에 좀 뒹굴뒹굴... 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는 미뤄 왔던 피부과 진료를 받았고(1시간 넘게 대기할 줄은 몰랐다.)
점심에는 9살 조카 효은이가 놀러 와서 지형씨랑 셋이 밥을 먹었다.
효은이는 말 잘 듣는 친구라 손 갈 일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님은 손님인지라...
넷플릭스 켜주고, 지형씨가 자주 굴리는 실내 자전거 태우고, 동화책 읽히는 등등 나름 최선의 접대 후에 돌려보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오후 6시.
배가 몹시 고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1862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인쇄기술자 제임스 해리슨은 위대한 기계를 만들어 낸다. 그는 활자에 묻은 잉크를 세척하는 에테르가 기화하면서 손을 시리게 하는 것을 깨닫고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냉동용 공기 압축 컴프레서를 개발한다.
그가 만든 이 기계는 마침 열린 국제박람회에 전시되었고.
그 기계를 접한 육가공업체와 맥주 생산업체는 엄청난 환호성을 지르게 된다.
제임스 해리슨이 만들어낸! 인류 지성과 과학의 찬란한 집합체!!
훗날 사람들은 제임스 해리슨을 '냉장고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오오오오!!!!
그리고 1927년 제네럴 일렉트릭은 Monitor Top이라는 가정용 냉장고를 만들어 냈고!
인류는 과학과 기계공학 그리고 거대 공장 시스템의 세례를 통해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축복을 얻게 된다.
그것은 배고픈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집 냉장고에 무엇이 들어 있든, 들어 있지 않든 상관없이 배가 고프면 냉장고 문을 열어볼 수 있는 권리'를 내려준 것이다!
그리하여 냉장실과 냉동실을 뒤적거린 끝에, 몇 달 전에 남겨두었던 냉동 갈비만두 4개와 얇은피만두7개를 득템하였다.
내가 만두 11개에 식용유를 대충 바르고 또 다른 문명의 선물인 에어프라이어에 조리해서 취식하는 동안.
아내는 장을 봐왔다.
그러더니 배가 불러서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무시하고는.
소면을 삶고, 골뱅이를 무치고, 방울토마토에 오이를 썰고, 치즈에 와인까지 곁들여 한 상을 차려냈다.
"자기야! 이럴 거였으면 만두 먹지 말라고 말을 해주지 그랬어!!"
라는 내 절규에 아내는 굉장히 즐거운 미소를 띠었다.
세상에 노렸던 거다!
어쩐지 냉동만두를 먹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나가더라니...
이미 배는 부를 만큼 불렀지만, 오기로라도 먹어보겠다고 달려들었으나 역부족.
딱 한 젓가락 맛보고(맛있었다.)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기로 했다.
먹다 토하기라도 하면 등짝 10대로는 안 끝날 것이 뻔하니...
부러운 눈으로 골뱅이 소면을 맛있게 먹는 지형씨를 볼 수밖에.
근데 먹방모드의 지형씨를 보는데 참 매력적이다.
골뱅이 소면이 와인과 어울리는가는 뒤로하고서라도.
치즈에 방울토마토에 오이... 이건 아마도 까나페를 염두에 두고 가져왔지 싶은데...
먹는 방식이 굉장했다.
치즈 한 장을 벗겨서 왼손에 척~올린다.
그리고 반으로 썬 방울토마토 4알을 그 위에 올리고, 얇게 썬 오이도 올린다.
그러더니 잘 싸서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와인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싸놓은 치즈를 한 입 베어 물어 먹는다.
분명히 와인에 카나페 재료인데, 어째서인지 먹는 느낌은 막걸리에 상추쌈하는 것 같다.
괴상하지만 이국적인 외모의 지형씨가 하니까 또 이게 어울린다.
와인을 곁들인 방울토마토오이치즈쌈에 골뱅이 소면!!!
어쩐지 지금이라도 프랑스 파리 뒷골목 산 67번지 주막에서 팔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와인을 한 잔하고,
'크아~~~'소리와 함께
치즈쌈을 한 입 베어 물고
넷플릭스에 집중하는 지형씨의 모습.
그렇지. 저 사람이 내 아내다.
아무렴.
지구를 통틀어 저렇게 매력적인 사람을 어떻게 찾겠는가.
아내의 매력을 또 하나 찾은 밤.
참 소중하다.
몹시 그렇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