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그리고 엄마의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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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이번에 나온 아내의 동화책 <고구마 선거>의 한 장면.

주인공 여름이가 전교 부회장 선거에 나간다고 말하자, 엄마가 말린다.

피자집을 하다가 장사가 잘 되지 않자, 최근 치킨까지 함께 시작한 엄마.
그런 엄마에겐 딸이 학교 임원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엄마는 여름이에게 선거 나갈 생각 말고 공부나 하라고 말한다.
여름이는 그런 엄마가 서운하고 속상하다.

방에 들어와 무릎을 끌어안고 우울하게 앉아있는데...
라이벌 후보인 왕미나가 떠오른다.
아빠가 국회의원이고 집도 잘 살고, 왕미나 엄마는 왕미나가 하겠다는 일은 발 벗고 나서서 처리해준다.
그 생각을 하니 여름이는 더 짜증 나고, 우울하다.

이 장면을 읽는데 고등학교 때 기억이 불쑥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실장을 했었다.
내 성격상 남들 앞에 나서서 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늘 조용조용 살았는데...
그때 뭐가 씌었는지 어찌어찌하게 되었다.
다른 건 그럭저럭했었는데, 학교 소풍 가면서 처음으로 '아... 이런 거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당시 학년 회의를 통해 각반 실장들이 선생님들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으로 했었다.

어머니께 부탁해서 육각 찬합에 김밥이니, 반찬이니 정갈하게 담아서 땀 삐질 거리며 들고 갔다.

점심시간에 도시락 드린다고 선생님들 있는 곳에 가보니 회가 나오고, 술도 나와 있고, 뭐가 참 많더라.
다른 반이나 선배 반장들은 요리를 준비했는데, 나만 도시락을 들고 간 느낌이었다.
(보니까 거기 엄마들은 다년간의 경험이 있어 뭐가 필요한지 알아서 준비했다면, 나와 어머니는 말 그대로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다는 느낌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어머니가 싸주신 분홍색 보자기에 묶인 육각 찬합을 내놓기 민망했다.
그걸 들고 우물거리는 나 스스로에게도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멍청하게 서있는 내가 뻘쭘해 보였는지, 젊은 남선생님이 얼른 받아서 '민성아 고맙다. 잘 먹을게.'라고 하셨다.
어쩐지 눈물이 나도록 내가 고마웠다.
그렇게 말해줘서...

돌아오는데 찬합에 김밥이 상당히 남아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내 기억에 집으로 오는 길 어디 골목에 앉아서 그거 풀어서 꾸역꾸역 집어먹고, 도저히 다 못 먹어서 조금 남은 것은 버렸던 것 같다.

글고는 집에 가서 어머니께 선생님들이 김밥 정말 맛있게 드셨다고, 어머니께 감사드리더라고 했다.

그 뒤로는 가급적 반장이니 뭐니 더 안 맡게 되었다.
안 그래도 귀찮은 것이 싫은데... 굳이 나랑 안 맞는 일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별생각 없이 여름이 장면 보다가 그때 기억이 불쑥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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