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61
별 대수롭지 않았다. 딱히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우리 사이에 큰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처음 만난 후, 서로를 알아갈 때 지형씨는 자신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었다. 마치 바늘 옷을 입은 고슴도치가 '나는 고슴도치인데 이래도 날 좋아할 거야?'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연애물에서는 상대를 너무 좋아해서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설정이 나오던데...
내 경우는 그런 영화의 예쁜 사랑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까지 사랑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임지형이라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그 외의 것은 굉장히 사소하고 별거 아닌 문제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라고 하는 쪽이 맞을 것 같다.
그때 아내가 말 했던 것 중 하나가 자신의 몸 상태에 관한 것이었다.
나를 만나기 수년 전에 수술을 했던 적이 있었고, 그 후에 또 배에 물혹이 생겨 있는데 꽤 크다고 했었다. 그때야 그러려니 했지만 나중에 만져보고 생각 이상으로 크고 딱딱해서 놀랬다.
결혼을 앞두고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했을지 직감할 수 있었다.
평생을 함께할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진실해야 함이 당연한 일이겠다. 다만 진실 자체는 용기가 필요 없지만, 그걸 상대에게 주도권을 주고 있는 그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하다.
지형씨는 그걸 했고, 그런 모습에서 자신이 문제처럼 말했던 모든 것들이 정말 아주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뱃속에 있는 혹 때문에 자신의 체력이 좋지 않다고 했다. 쉽게 지칠 것이며, 매달 유난히 아파서 까칠해질 수 있고, 우리 사이에 아가를 갖는 것이 굉장히 힘들 것이라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 해남에 계신 우리 부모님께 이런 상황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부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만히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형씨의 모습에 이런 모든 것이 다 별것 아닌 것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지형씨 배꼽 아래에 있는 시간의 자국을 만지며 일본 라이트 노벨에나 나올법한 느낌으로 '이것까지 다 내 거예요.'라고 해놓고 얼마나 오글거리던지...
그런 말 나 같은 사람은 함부로 하면 안 되겠구나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 모든 것 이상으로 임지형은 내게 참 좋은 사람이었다.
결혼 후 몇 번이나 배에 있는 근종을 제거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번번이 지형씨는 수술하는 것에 두려움을 이야기했었다. 처음 수술의 기억이 굉장히 좋지 않았었다. 차가운 수술실에, 얇은 담요 한 장 덮여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마취에서 깨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막연한 두려움.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했던 지독한 외로움까지 다시 떠오르게 되었던 모양이다.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뒤로 미루게 되었다.
결혼 초에는 어떻게든 동화작가로 한 권의 책이라도 더 내고 싶은 마음으로, 그 후에는 자신의 자리를 찾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활동하느라 더욱 수술 이야기를 미루게 되었다.
그 후 19권의 책이 나올 때까지 지형씨의 몸은 열심히 버텨주었고, 그게 고맙고 또 고맙다.
그러다가 올 6월경 검사를 통해 더 미루면 위험하게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닿았다.
수술을 결정했고, 우리 나름 준비를 했었다.
아내는 수술 이후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잘 회복되도록 그간 해왔던 운동을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아내 돕고 하려면 내가 우선 체력과 건강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아파서 한층 가증될 임작갑의 짜증과 명령질을 견디려면 무엇보다 강한 체력과 정신력의 필요함이 당연하다.)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상념들이 참 많이 떠다닌다.
요즘 많이 하는 수술이고, 큰 수술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는 응원의 말들을 붙들고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우리보다 나중에 들어간 환자가 수술이 끝나 회복실로 옮겼다는 안내 화면을 보니 속이 좀 탔다.
'000씨 보호자분~'이라는 소리가 나올 때마다 몸은 반사적으로 움찔거리고, 신경은 온통 아내가 들어간 수술실 문을 향했다. 속이 바짝 죄어들어갔다.
한참 후 '임지형씨 보호자분!'이라는 목소리에 얼른 달려갔다.
우리 담당 의사는 꽤 커다란 수술 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어지간한 참외 크기의 빨간 덩어리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수술에서 제거한 근종을 보여준 것이다.
그걸 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막연히 크다는 거는 알았지만, 저렇게 클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약간 멍해지고, 입이 탔다.
담당의는 내 표정에서 두려움을 읽었던지 얼른 말을 이어갔다.
수술은 잘 되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크기가 너무 커서 다른 부위들에 유착되어 있었고, 그래서 수술 시간이 길어진 거다.
너무 염려하지 않도록 알려주는 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형씨 몸에 들어있었을 저 큰 덩어리 두 개를 들고도 담당의는 아무렇지 않게 차분히 경과를 설명했다. 약간의 거리를 둔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그냥 고개를 끄덕 거리며 나도 모르게 허리를 주춤거리며 잘 부탁드린다 간절한 마음으로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다시 '임지형씨 보호자분!'이라는 부름을 듣기까지 두 시간가량을 더 기다려야 했다.
수술실에서 나온 아내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분들이야 늘 보는 환자의 모습 중 하나겠지만, 내겐 처음 보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병실로 와서 침대에 옮겨지고, 이런저런 조치가 취해진 후 커튼이 쳐지고, 겨우 아내와 둘이 있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9시까지는 잠들지 않도록 말을 걸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말을 이어가는 것은 늘 그렇듯 쉽지 않다.
고생했어. 잘했어. 자기 대단해. 기특해. 고마워... 아내의 귀 옆에 계속 중얼거렸다.
평소에 아내보다 일찍 일어나면 간혹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찬찬히 하나하나 보게 되었다.
반듯한 이마, 아파서 찡그리는 미간, 깨끗하게 정리한 눈썹, 눈동자의 움직임이 비치는 얇은 눈꺼풀, 피어싱을 뺀 귓불, 금식에 들어가 쏙 들어간 볼과 수술 때문에 아파서 부은 입술...
가만히 쓰다듬고 만지는 것 밖에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큰 덩어리 들을 속에 담고 너도 참 어지간히도 버텨왔구나.
때때로 무척 힘들고 고통이 컸을 텐데, 그 조차 원래 그런 것인 양 익숙해져서 버텼던 거구나.
그러고도 그동안 글 쓴다 그렇게 오래 앉아 있고, 강연한다 돌아다니고, 사람들 만나 웃으며 지냈구나.
너 참 독하게 여기까지 왔구나
끙끙거리던 아내가 뭔가 웅얼거린다.
얼른 귀를 가까이 댔다.
"인제 운동 많이 해서 내년에 머슬 마니아 나갈 거야. 근육 만들어서 머슬 마니아 나갈 거야."
하아...
그래 나가라. 누가 뭐 래더냐.
남편이야 수술실 밖에서 걱정하고 그런 게 수술한 너보다 대수겠냐.
다 됐고, 얼른 나아서 운동 더 해서 내년에 머슬 마니아 꼭 나가라...
이 순간에도 자신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생각하는 아내가 존경스러울 뿐이다. 웃음이 나왔다.
한참 후 담당의가 왔다.
수술 이후 조심해야 할 것들과 이후 경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내일 금요일 하루 더 금식하고 토요일부터 물과 보리차 조금씩 먹고 시작할 거라 설명한다.
토요일까지는 물도 안된다는 말에 파르르 감겨 있던 지형씨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목말라죽겠는데? 내일도 물 마시면 안 된다고요?"
지형씨의 격한 반응에 의사도 함께 온 간호사도 설핏 웃는다.
"네. 안됩니다."라는 단호한 의사의 말에 지형씨는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순순히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나는 봤다.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지형씨의 입술을. 너무도 익숙한 단 두 글자 입모양을.
'ㅅㅂ'
오늘 하루 종일 너무 걱정했는데, 이제야 그녀가 내 곁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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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지형씨가 수술 마치고 썼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