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71
최근 아내가 자신의 몸무게를 재고는 꽤 충격을 받았다.
작년에 수술 이후 빠졌던 몸무게가 원상 복귀됨은 물론이고,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이 쪘단다.
나야 늘 살이 찐 상태이니 아내의 충격이 별 감흥이 없다.
어쨌든 아내는 강력하게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고, 나름 가열차게 시작했다. 운동이야 늘 하는 것이니 그건 논외로 하고, 소식과 간헐적 단식을 하기로 한 거다. 남편 된 입장에서 아내를 응원할밖에.
다음날, 카페에 앉아서 김미승 작가님의 동화책 '산해경' 북트레일러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문득 아내가 옷 행거를 부탁했던 것이 떠올랐다. 마침 배가 고플 시간이 되기도 해서 짐을 챙겨 카페에서 나왔다. 근처 대형마트에서 2단 행거와 1+1 하는 베이글(양파+블루베리) 세트, 양장피 세트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낑낑거리며 행거와 장본 것을 들고 왔다. 아내는 글 쓰는 테이블에 앉아서 작품을 쓰고 있었다.
사람의 낯빛이 불과 하루 만에 이렇게 어두워질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가관이었다. 하루 종일 뭘 제대로 챙겨 먹은 것이 없는지 피부 빛은 두 톤은 다운되어 보였고, 눈은 퀭하니 들어갔다. 다크서클은 또 광대까지 내려왔고, 머리는 더 푸석해 보였다. 글 쓰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다이어트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상태가 좋지 않음은 분명했다.
내가 장 봐온 것에 호기심을 보낸 아내는 상자 안에 든 양장피와 베이글에 눈이 찰나 간 번쩍였다. 그리곤 이내 짜증을 부렸다.
"닝겐! 나 다이어트한다고 했잖아! 이런 걸 사 오면 어떡하자는 거야?"
"어. 양장피는 살이 안 찌잖아. 괜찮을 거야. 같이 먹자."
"싫어. 안 먹을 거야. 오늘 하루 어떻게 버텼는데. 그냥 너나 먹어."
"싫으면 어쩔 수 없고. 다 못 먹을 것 같으니까 좀 덜어놓고, 남은 것은 그럼 자기가 내일 먹든지 해."
"알써."
왜 시무룩한 표정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좀 귀엽기는 했다.
여튼 나야 내 분량의 양장피를 먹었다. 다 먹은 후 이제는 행거를 조립할 차례. 내가 꾸물꾸물 행거를 조립하고 있자, 아내는 옷을 챙겨 입더니 재활용 상자를 내놓고 오겠다며 나갔다. 작년에 8천 원짜리 건담 SD 타입 조립 이후 오랜만에 뿌듯한 남자의 조립 시간을 가졌다. 아내가 왔을 무렵 대략 조립이 끝났다. 행거를 작은 방에 넣고, 우리는 거실 의자에 쌓여 있던 옷들을 행거에 걸기 시작했다.
옷을 절반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아내가 멈칫한다. 안색이 파리하니 창백해진다.
"자기야. 나 이상해. 갑자기 어지러워. 그리고 등에 식은땀이 막 나. 옷 일단 혼자 걸고 있어 봐."
겨울 옷을 들고 있던 아내는 황급히 옷을 내게 넘기고 거실로 나갔다. 걱정이 됐다. 얼른 옷들을 정리하고 따라나갔다. 아내는 자신의 상태 이상에 당황스러웠는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왼손으로는 연신 이마의 식은땀을 쓸어냈다. 문득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아까 사 왔던 블루베리 베이글 하나를 꺼내서 아내에게 건네며 말했다.
"임작갑님. 아무래도 오늘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 사료됩니다. 감히 청컨대 소인이 구입해 온 베이글을 조금 섭취하심이 어떠하신지요?"
내 말에 피식 웃더니 아내는 베이글을 받아 들었다. 손 끝이 약간 떨리는 것이 보인다. 웃으며 농담을 건네기는 했지만 걱정이 됐다. 그리고... 시작됐다. 아내의 베이글 섭취 라이브 쇼가.
베이글을 받자마자, 아내는 그걸 뜯어서 황급이 입으로 가져갔다. 후드득 빵 뜯는 소리가 다급하다. 처음 뜯은 빵이 입에 들어가자 그걸 씹음과 동시에 손은 다음 빵을 뜯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연신 빵을 뜯어 급하게 입으로 가져가더니 웃기 시작한다. 웃다가 입에 빵을 제대로 못 넣어서 가슴에 흘리고, 그걸 다시 얼른 집어 입에 밀어 넣는다.
"(우물우물) 아. 놔 진짜. (쩝쩌) 오늘 다이어트한다고 (후드득) 하루 종일 (우물우물) 얼마나 참았는데. (쩝쩝) 모냥 빠지게 이게 뭐냐고!"
빵을 씹던지, 한탄을 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해라.
조금 여유가 생긴 아내는 자연스럽게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서 에어프라이에 굽고, 크림치즈를 꺼내 발랐다. 나는 찬장에서 건포도 봉지를 꺼내서 아내에게 주었다.
"이것도 좀 넣어서 같이 먹어. 당 떨어져서 그럴 수 있어. 그리고 너무 무리하지 마."
아내는 자신이 생각해도 스스로가 웃겼는지 민망해하면서도 계속 웃는다.
"아. 진짜. 이게 뭐냐고. 내가 진짜 베이글을 이렇게 허겁지겁 먹다니. 아. 스타일 완전 구기네."
음.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허겁지겁'이라니. 아내는 동화작가다. 나도 설교를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상황에 맞는 올바른 단어를 씀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비록 아내가 다이어트에 몹시 힘들어했고, 음식물 미섭취로 다소간 어려움이 있었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허겁지겁'이라는 표현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력하게.
"어. 자기야. 이 경우에 자기의 모습은 '허겁지겁'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우물우물) 뭔데?"
"음. '임작갑은 빵을 허천 거리면서 먹었다' 정도가 맞는 표현 같아."
허천나게 맞을 뻔했다. 탄수화물 섭취로 힘이 돌아온 아내에게 그러는 거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