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아내의 작품 아이디어에 대처하는 평범한 남편의 자세

100개의 글쓰기 74

by 김민성
190212.png


누가 작가 아니랄까, 지형씨가 눈이 가장 반짝일 때는 새로운 동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다.

보통 아내는 자신이 떠올린 기가 막힌 생각을 두서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더 정확히는 맥락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시작한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우리 일상 대화였는데, 느닷없이 자기가 쓸 동화이야기로 튀는 거다.

대화라는 것이 당연히 전후 맥락이 있기 마련이고, 흐름이 있으니 거기에 따라감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내는 그런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갑자기 떠오른 어떤 영감에 따라 대화를 진행해버린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그렇게 자신만의 내면의 흐름에 따른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고 나서는 '어때?'라고 나에게 묻는다.


처음에는 아내의 맥락을 따라잡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나름 정리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지 않아? 그리고 비슷한 만화책이 있으니까 설정은 좀 바꿔야 할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거의 매번 아내의 빈정을 상하게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럼, 니가 쓰면 되겠네!'였다. 그리고 그게 풀릴 때까지는 좀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눈치를 상당히 보아야 했다.


남녀의 대화에서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야 책에서 부지기수로 읽었다. 그러나 실전에서야 그 '공감'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다. 그래도 노력해야지 어쩌겠나?


일단은 아내를 관찰한 바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아내는 나와 대화하면서 내가 자신의 생각을 다 알 것이라고 여기더라. 너무 당연하게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는 '맥락'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내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그걸 꼭 말해야 알아?'라는 당당한 아내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지만 말이다.

그걸 깨닫고 난 뒤에는 아내와의 대화가 좀 편해지기는 했다.


일단 아내가 저렇게 맥락을 건너뛰어서 뜬금없이 자기 아이디어를 꺼내고 있을 때, 이제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너 지금 아무 맥락 없이 이야기하는 거 알지?"
그러면 아내는 배시시 웃는다.
"내가 맥락 없는 것이 한두 번이야? 그냥 니가 이해해!"


그 후로는 아내가 맥락 없이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그러려니 하며 듣는다.
그리고 일단 뭔지 모르겠으면 아내 편을 든다.
특히 동화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에는 굉장하다고, 재밌다고, 써보라고 칭찬부터 한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야! 너 내 말 제대로 안 들었지?"라며 등짝 스매싱이 날아온다.

이게 그렇다.

아내의 신경실을 몇 시간 감당하느니, 깔끔하게 헛소리하고 등짝 맞는 것이 편하달까.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는 법이다. 때린 분이야 더 편하게 주무시지만... 그건 그거고.

매거진의 이전글공감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