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펜을 든 까닭
서울에 철학자 칸트의 산책길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칸트가 매일 거닐며 몸과 마음을 치유한데 착안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 멀지 않은 양재천이라고 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양재천은 서초구와 강남구를 지나 탄천으로 흘러가는데 서초구 쪽 산책로는 경치가 뛰어나서 ‘아시아도시경관상’을 수상했다고 알려져 있다. 주민과 기업 등 지역사회가 힘을 합해 오랜 시간 가꾸었다고 한다.
양재천로에 도착했는데 8월 뙤약볕이 이른 아침부터 기승을 부렸다. 안전한 수돗물로 물안개를 만든다는 쿨링포그시스템의 냉각 효과를 기대했는데 작동 시간이 아닌 것 같았다. 주변의 나무와 풀들이 한 여름의 에너지를 모두 빨아들인 듯 온통 건강한 초록빛이었다. 땡볕을 받아 무성하게 훌쩍 자란 풀 때문에 하천 건너편 수변로를 걷고 있는 사람이 가리어질 정도였다.
영동 1교와 영동 2교 사이 산책로를 걷다 보니 하중도(河中島)로 들어가는 통로가 보였다. 사각형 모양의 철판에 동그랗게 뚫어 놓은 구멍을 통과해 짧은 목조 다리를 건너니 ‘칸트의 산책길’을 만날 수 있었다. 큰 바위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섬 안에는 칸트의 명언이 새겨진 철강 표지판이 있었다. ‘한 가지 뜻을 세우고 그 길로 가라. 잘못도 있으리라. 실패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라. 반드시 빛이 그대를 맞이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읽는 이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이 섬에 있던 책 읽는 모습의 칸트 동상은 2022년 8월 폭우 때 떠내려가고 지금은 수변 무대 앞 계단형 객석에 두 손을 포개고 앉아 있는 칸트를 볼 수 있다. 칸트는 ‘걸어 다니는 시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규칙적인 습관을 가진 사람으로 유명하다. 편두통을 앓으면서 산책에 집착했는데 시간도, 코스도, 걸음수도 항상 같았다고 한다. 산책 외에도 그가 철저하게 지켰던 바른생활 루틴에는 강의, 토론, 글쓰기가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글쓰기는 요즘 내 일과이기도 하기에 칸트의 형상을 바라보며 나의 글쓰기 습관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글을 쓰는 형식도, 글쓰기에 임하는 마음 가짐도 계절이 바뀌듯 변화되어 왔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말하기보다 글쓰기를 좋아한다. 말은 일단 뱉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고치고 다시 쓸 기회를 준다. 말은 하는 순간 흘러가 버리지만 글은 기록으로 남아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말로는 못 할 부끄럽고 아픈 이야기도 글로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불편한 감정은 말로 꺼내면 상대에게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글은 절제된 감정을 안전하게 전달하는 수단이 되곤 한다. 남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때도 있지만 좋은 글은 마음 깊이 울림을 주며 공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글쓰기에는 이처럼 다양하게 좋은 면이 있지만 그 본질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과의 대화이자 타인과의 대화이다. 톨스토이는 글쓰기가 내면의 진실을 찾는 과정이라고 했고 체호프는 내 마음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조지 오웰은 좋은 글쓰기가 자신과의 정직한 대화에서 시작되며 서로의 마음을 여는 열쇠라고 했다. 하나님도 모세의 돌판, 예레미아의 두루마리, 사도 바울의 편지에 기록된 글을 통해 후대에 말씀을 전하셨다.
글은 내 경험을 기록하고 생각과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최강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한다.
처음으로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한 작업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그림일기 쓰기였다. 매일 학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 숙제였고 시시한 일상에 무엇을 쓸지 고민스러운 날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맞벌이로 늘 바쁘셨던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드물었고 변변한 놀이터도 없던 시절이라 일기에 남길 만큼 특별한 장소를 방문하거나 글감이 될만한 사건은 흔치 않았다. 모래 더미에서 두꺼비집 짓기, 비탈길에서 미끄럼 타기, 붉은 벽돌을 갈아 고춧가루라며 소꿉장난 하기, 동요를 부르며 폴짝폴짝 고무줄넘기, ‘다방구’라고 부르던 술래잡기가 놀이의 전부였다.
일기장 공책은 한 페이지씩 구분되어 있었는데 위쪽 공란에 그날 일어난 일 중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아래쪽에 줄거리와 감정을 2~3 문장으로 짤막하게 요약했다. 내용은 아득하지만 한 글자씩 쓰도록 되어 있는 네모 칸에 맞추어 서툰 글씨체로 연필을 꾹꾹 눌러썼던 기억은 뚜렷하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 그림일기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뿐 아니라 문장 만들기 연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림은 빠졌지만 글로 쓴 일기를 여전히 학교에 제출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빨간색 펜으로 답글을 써주셨다. 타인과 글로 소통한 첫 번째 경험이 아닌가 싶다. 당시 일기장에는 날짜 옆에 날씨를 적는 칸이 있어서 방학에 일기가 밀리기라도 하면 며칠 전 날씨가 맑았는지 흐렸는지 여기저기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은 간간이 내 생각에 공감해 주셨고 착한 일을 한 날엔 칭찬글도 써주셨다. 단순히 숙제 검사가 아니라 내 글을 읽고 손글씨로 답장까지 해 주신 것이 신기했다.
잘 쓴 글은 아니었을 텐데 꾸준히 일기를 썼다고 성실함을 격려하는 상도 받았고 내게 성의를 다해 자전거를 가르쳐 준 친구의 사연을 적었더니 그 친구에게 선행상이 수여되기도 했다. 내가 쓴 글로 받은 최초의 보상이었다.
철이 들어서는 누가 점검을 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기를 썼다. 구체적인 사연이 기억나지는 않으니 또래처럼 친구 얘기나 진로 고민이 주요 내용이었을 걸로 추정만 한다. 꿈이 원대하게 큰 당찬 아이도 아니었고 꿈이 없어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지도 않았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공부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아이였으니 책상머리에 앉아 혼자 공상하며 끄적거리는 시간을 즐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학 입시가 다가오자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일기를 쓰는 간격이 2~3일, 1주일로 점점 길어졌다. 대학 시절에는 캠퍼스 잔디밭에서 잡담하기, 카페에서 음악 듣기, 동아리 친구들과 어울리기 덕분에 일기뿐 아니라 모든 글쓰기에서 멀어졌다.
다시 글쓰기와 친해진 시점은 직장을 다니면서부터이다. 주로 객관적인 사실이나 근거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해서 상사나 경영진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보고 형태였다. 직장 생활 내내 훈련이 되었기에 어떤 형태의 보고서를 요청받더라도 작성할 수 있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나는 보고서 쓰기를 꽤 즐겼다. 주제에 맞춰 맥락을 잡고 읽고 또 읽으며 내용을 살피고 수정하는 작업에 빠져들었다. 같은 뜻을 지닌 다른 단어로 바꿔 보는 일도 흥미로웠다. 읽는 이를 설득할 수 있도록 문장을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의 일상은 지루할 때가 있었고 이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취미 부자가 되었다.
황금 같은 긴 연휴에는 여행을 다녔는데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선택하여 깃발만 졸졸 따라다니는 관광에 곧 흥미를 잃고 살짝 고생스럽긴 해도 직접 여정을 짜며 준비하는 과정을 더 즐기게 되었다.
사진 찍기는 휴대폰과 손가락만 있으면 가능했고 자투리 시간에도 충분히 할 수 있어 가성비가 뛰어났다. 좀 더 잘 찍어보겠다고 조명과 빛 반사 조절용 미니 포토박스까지 구매했다.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될 나이가 되자 체력 향상을 목적으로 친구들과 서울 근교 트래킹을 하기도 했는데 걷기보다는 수다를 떠는데 더 열심이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는 여행은 물론 가끔 즐기던 공연, 전시회, 영화 관람까지 제약이 따르다 보니 혼자서 가능하고 건설적이라고 느껴진 레고 조립에 입문했다. 아키텍처, 테크닉, 스피드챔피언 같은 시리즈별 세트도 조립하고 초보 수준이지만 설계도와 브릭을 별도로 구입해서 커스터마이징도 해봤다.
즐기는 일은 차츰 확장되어 방구석에서 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세계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른 사람이 올린 글이나 사진에 ‘좋아요’ 누르기, 영혼 없는 답글 쓰기, 이모티콘 날리기는 내게 맞지 않음을 알았다. 인사만 나누는 형식적인 관계를 벗어났다고 해도 정보나 의견을 교환하고 얕은 감정을 공유할 수는 있지만 마음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우니 공허감이 들었다. 의미를 찾기 힘들었고 수동적으로 느껴져서 내키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얘기를 진심을 담아 능동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보고서 이외의 글쓰기는 손을 놓은 지 오래되었지만 책, 영화, 음악으로부터 얻은 느낌을 깨알같이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보관 장소만 SNS로 옮기면 될 것 같았다. 읽은 책이 내게 준 지혜를, 관람한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청취한 음악의 가시지 않은 여운을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게시글로 남기게 되었다. 글로 조용한 소통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글은 내 생각을 정리하여 다른 이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는 소통 수단이라고 여겨진다. 글을 쓰다 보면 내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꺼내게 되는데 그러면서 나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또한 글로 내 생각과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 세상과 교류도 할 수 있다.
인간은 내게 맡겨진 소명, 즉 일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도 있고 좋아하진 않지만 잘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을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곰곰이 따져 보니 지금까지 나는 잘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다. 대단히 좋아하는 일은 아니어도 적성에 맞아 잘할 수 있었고 기업체, 금융기관, 공공기관의 정보시스템 구축에 참여해 왔으니 동시대를 함께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기여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까지 조직에서 정한 규칙 질 지키며 맡겨진 일 처리하고 설 자리가 없어질까 두려워하며 보내고 싶지는 않다. 내 인생의 남은 3분의 1은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로 했다. 직장과의 인연은 끝나가지만 글을 매개로 세상과의 연결은 지속하려고 한다.
모든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쓰인다고 한다. 일기조차도.
일기는 본래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은 아니지만 남을 완전히 의식하지 않고 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독자가 되어 다시 읽기도 하고 어쩌다 가까운 사람이 보기라도 할까 염려스러워 글을 다듬기도 한다. 세간에 알려진 인사라면 자신의 일기가 언젠가 세상에 공개될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안네의 일기》의 저자 안네 프랑크도 자신의 일기가 전쟁 기록물이 될 수 있다는 소식을 라디오에서 듣고 외부 공개를 위해 다시 작성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내가 쓰게 될 글도 나만의 기록을 넘어서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의 마음에 닿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