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강의 추억
“서울에서 가장 긴 하천이 어디지?”라고 질문을 받으면 “한강 아니야?”라고 대답하기 쉬운데 한강은 서울을 관통하는 강이지 서울 내에서만 흐르는 하천은 아니다. 위 질문에 대한 정답은 ‘중랑천’이다.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동대문구, 성동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길이가 자그마치 36.4km에 이른다. 지류도 10여 개나 되는데 청계천도 중랑천에서 갈라져 나온 물줄기라고 한다.
여러 지역에 걸쳐 흐르다 보니 강변 길의 표면도 흙, 우레탄, 아스팔트로 다양하고 가로수도 버드나무, 은행나무, 플라타너스로 각양각색이다. 봄이면 벚꽃과 유채꽃, 여름이면 장미와 창포가 하양, 노랑, 빨강, 보랏빛으로 울긋불긋 장관을 이룬다. 가을에는 억새, 갈대, 코스모스, 해바라기가 다채로운 꽃길을 연출한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시기는 여름의 끝, 가을의 초입쯤이다. 햇빛이 너무 강하지도 않고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끼지도 않아 정확하게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나는 도봉산역에서 내려 창포원부터 들렀다. 숲속쉼터, 억새원, 소나무언덕, 습지원, 넓은 입목원, 생태관찰원, 맨발건강길 등 테마별로 조성되어 있는데 진정 초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청포원을 나와 노원교까지 중랑천 탐방로를 걸었다.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나란히 있는데 걷는 사람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서울에서 가장 길다는 하천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세계에서 긴 강으로 꼽히는 갠지스가 떠올랐고 나무와 꽃이 변화무쌍한 창포원과 중랑천변의 모습을 보니 좌충우돌 사건이 끊이지 않았던 인도 여행이 생각났다.
인도는 내 기준으로 치안을 걱정해야 하는 오지이기 때문에 자유 여행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인도 전문 여행사를 통해 나와 동생만을 위한 9일간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인도인 현지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동행했다. 가이드는 한국과 헤나 사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다. 대학 때 룸메이트가 한국 사람이어서 한국을 알게 됐고 그 친구를 통해 말까지 배운 지 8년이나 되었다고 했다.
갠지스강을 관광하기로 한 날은 새벽에 일정이 시작되었다.
일출 즈음에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해돋이를 보는 코스였다. 배는 2~3명이 탈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삐걱거려서 앉으면 물이 들어올 것 같았다. 어쨌든 사공이 있었고 동생과 나는 경치를 구경했다. 우리처럼 배에 탄 관광객이 더러 있었지만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만 날 뿐 주변은 조용하고 강은 고요했다. 해가 빨간색 작은 동그라미 모양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배에서 내릴 때쯤 날이 밝았고 강 주변의 여러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는 머리를 감고 누구는 빨래를 하고 있다. 어떤 이는 목욕재계 중이고 바로 옆 사람은 그 물을 떠서 마시고 있다. 그 주변 멀지 않은 곳에서는 화장한 시신을 뿌리고 있다. 강변 어딘가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데 알고 보니 화장터였다.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인생의 각 장면이 이 강 가운데 모두 모여있는 걸 보니 신기했다.
타지마할을 방문했을 때는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가이드가 설명하길 입장 시 소지품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니 짐가방, 휴대폰, 여권까지 차에 두고 가라고 했다. 신분증을 두고 가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람 많은 관광지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나와 동생은 손바닥만 한 가방에 카메라와 약간의 비상금만 챙겼다. 가이드는 늘 오는 곳이라 지루했는지 동행하지 않고 자신과 만날 위치와 시간만 알려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타지마할 궁전의 안팎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싫다는데도 과잉 친절을 베풀어 사진을 찍어 준 사람이 결국은 팁을 요구했지만 그 덕분에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잘 찍힌 사진 한 장은 건졌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출구 쪽을 향했는데 만나기로 한 지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동생도 만만치 않은 길치라 이런 순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들어왔던 입구로 가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완벽하게 좌우대칭으로 똑같이 생긴 타지마할에서 좌우까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두 곳 모두 가보기로 했다.
한쪽 입구로 가서 바깥쪽 주변을 살피려고 기웃기웃했더니 무단 입장객 취급을 했다. 구경하고 나오는 길인데 가이드를 찾고 있다고 말했더니 주변에 서 있던 분이 고맙게도 우리가 저 안쪽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거들어 주었다. 입장 티켓도 가이드가 갖고 있어서 밖으로 나가면 다른 쪽 입구로 가기 위해 재 입장도 못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나가지 않고 반대 방향의 다른 쪽 입구로 갔다. 들어올 때 봤던 가게들이며 거기가 맞는 듯했다.
이제 가이드와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행 일정표에 비상 연락처와 숙소, 통신사, 카드사, 항공사 전화번호를 빼곡히 적어서 소지하고 다니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전화기가 있는 곳만 찾으면 됐다. 떠나기 전 안내 책자에서 읽은 인도 여행 기본 정보가 생각났다. 현지 및 국제 전화를 하려면 STD/ISD(Subscriber Trunk Dialing, 국내전화/International Subscriber Dialing, 국제전화)라고 쓰인 간판이 있는 곳에서 걸면 된다고 했다. 둘러보니 해당 간판을 건 가게가 보였다.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마자 주인의 도움을 받아 가이드에게 전화를 했다. 몇 번을 걸어도 받지 않았다. 다음은 한국 여행사로 국제 전화를 걸었다. 가이드와 연락을 취해 보겠다고 했다. 잠시 후 여행사도 가이드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다. 인도에서는 상식 밖의 일도 많다는데 가이드가 짐과 여권을 갖고 도망간 거 아니냐는 말까지 하게 됐다. 여행사 직원이 함께 일한 지 10여 년 되었는데 그럴 사람이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했다. 별 소득 없이 통화를 끝내고 가게를 나왔다. 가게 주인은 내 표정을 보고 긴급한 상황임을 눈치챘는지 통화료도 지불하지 않고 나간 나를 따라 나와 "Calm down"을 반복하며 안심시켜 주었다. 그 한 마디가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고 나는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전화비를 계산했다.
비상 상황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주차장에 있는 차에 짐과 여권이 있는데 무작정 찾으러 가야 하나, 차 번호도 모르는데, 오늘 밤 숙소는 알고 있으니 택시 타고 거기로 가야 하나, 여권이 없으니 한국에는 어떻게 돌아가나, 한국 대사관으로 가야 하나 등등 잡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허둥대는 우리가 눈에 띄었는지 어떤 할아버지가 접근했다. 흰색 제복을 입고 가이드 신분증처럼 보이는 표지판을 목에 걸고 있었다. 자신이 우리 가이드를 잘 아는데 아까 이곳을 떠났다고 하면서 자신을 따라오면 잘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인도 가면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많이 소개되는 사기 수법이었다. 이런 사람 따라가면 낭패를 보는 것을 떠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절대 믿으면 안 된다고 한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 사람 말에 대응하지 않았다.
이런 소동이 30분쯤 계속되고 있는데 가이드가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우리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타지마할 구경을 하는구나 생각하며 기다렸는데 너무 늦어지니 이상해서 입구로 나와 봤다는 것이다. 왜 전화를 안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전화기를 들고 타지마할에 들어갈 수 없어 차에 두었다고 했다. 이렇게 오해를 풀고 남은 여행을 별일 없이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뉴델리 간디 공항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지막 환송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출국 수속이 끝나고 비행기 탑승장에 대기 중이었다. 탑승을 위해 Gate 앞에 줄을 서려고 하는데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타려던 항공기에 인도의 VIP가 탑승 예정이었는데 수하물에 폭탄이 실렸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항공사 직원에게 문의해도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왔다 갔다 했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항공사에서 식사 대용으로 샌드위치를 제공해 주었다. 공평하게 나눠주는 게 아니라 바구니에 담아 놓고 알아서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이럴 때는 꼭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 남 생각 안 하고 몇 개씩 챙기는 사람이 있었다. 전투력 없는 사람은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는 식량도 빼앗기겠구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밤이 되자 다시 안내 방송이 나왔다. 항공기에 실었던 수하물을 비행장 바닥에 내려놓았으니 모든 탑승객은 내려가서 자기 짐 옆에 서란다. 폭탄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가방과 범인 색출 작전이 시작된 것 같았다. 그 제보가 사실인지 장난인지 범인이 잡힌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6시간을 잡혀 있었다. 겨우 6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한을 모르고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엄청 길게 느껴진다.
결국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갈아타야 할 연결 항공편을 놓치고 항공사에서 제공해 준 호텔에 묵은 뒤 다음 날에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나는 여독도 풀지 못한 채 한국 도착 당일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해야 했다.
인도 여행은 열흘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다녀왔고 이후 20년가량 흘렀지만 얘깃거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고생 안 하려고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베테랑 현지 가이드의 지원을 받았지만 완벽한 안전함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듯 이 여행 역시 계획을 벗어났다. ‘곤란은 많다, 방법은 더 많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예측 불가한 사건들은 나를 곤혹스럽고 피곤하게 만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해결되었고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계획은 일종의 안전장치일 뿐 계획 달성 자체가 여행의 목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계획이 틀어질 때 인생의 다른 페이지가 써지는 것 같다. 여행의 진정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