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하는 삶
얼마 전 손목 부상을 입었다. 치료를 위해 여름 한 철을 내내 집에서 지내다 보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무거운 짐 끌고 가는 여행은 다음을 기약해야겠지만 기분이라도 내고자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경춘선 기찻길을 방문하기로 했다.
우선 내가 당분간 여행을 하기 어렵게 된 사정을 하소연하자면 이렇다. 출근 중이었는데 회사 건물 옆 화단에서 온 건지 회전문 앞에 말벌이 날아다녔다. 몸을 뒤로 젖히며 피하다 중심을 잃고 손으로 바닥을 짚었는데 손목이 심하게 아팠다. 여느 때처럼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구매하려고 지하로 계단을 내려갔으나 통증이 예사롭지 않았다. 커피 사기를 포기하고 사무실로 가기 위해 다시 계단을 올랐고 출입문을 통과한 후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기까지만 기억난다.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쓰러져 있다 발견되었고 두 사람이 나를 부축해 사내 의원에 데려다 놓았다는 게 나중에 들은 얘기이다. 시스템에 찍힌 나의 출입 시간을 보니 5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니 병원이었고 쇼크로 쓰러지며 기둥에 부딪혔는지 머리가 찢겨 어깨에는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X-Ray, MRI 등 검사를 하고 바로 수술 시간이 잡혔다. 다행히 머리는 꿰매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고 손목은 골절이라 금속 내고정술을 받았다. 전치 7주 진단에 운동까지 가능하려면 3개월 넘게 소요된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각설하고, 오늘 다녀온 경춘선 철길은 나를 포함한 지금의 중년 세대들이 20대 시절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대성리나 청평으로 MT(Membership Training)나 여행을 떠나던 길이다. 전철이 개통되면서 기차 운행이 중단되자 방치되었던 철로 주변을 공원으로 꾸미기 시작했고 현재의 ‘경춘선 숲길’이 되었다. 전체 길이가 6km 정도인데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세 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1구간은 월계동 녹천중학교에서 서울과학기술대 입구 철교까지, 2구간은 행복주택공릉지구에서 육사삼거리까지, 3구간은 예전 화랑대역에서 담터마을까지 이다.
오늘은 1구간을 걸었다. 월계역에서 경춘철교를 건너 경춘선 숲길에 이르렀다. 녹슨 철길, 철로 사이에 깔려 있는 자갈들 때문에 예전 경춘선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느낌이 들었다. 철로를 따라 조성한 산책로에 소나무 숲이 그늘이 되어 주어 햇빛 때문에 부신 눈을 찡그릴 필요도 없었다. 가을날 걷기에는 단연코 서울에서 최고 아닌가 싶다.
1구간이 끝날 즈음되니 ‘경춘스테이션 북&커피’라는 카페가 보였다. 경춘선을 달리던 무궁화호 열차를 개조하여 만들었는데 예전에는 방문자 센터로 이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카페 옆에는 작은 도서관도 있는데 책 읽는 사람들로 꽉 차 빈자리가 없었다. 주문을 하고 잠시 앉아 시원한 카페 라테를 마시니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기찻길만 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는데 <부산행>이다. 미지의 좀비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뒤덮은 재난 상황이 배경이다. 유일하게 안전한 도시 부산으로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KTX 기차를 탑승한 사람들이 겪은 일을 담았다.
열차라는 제한된 공간에 퍼지기 시작한 바이러스로 인해 대부분의 탑승객이 좀비가 되어 인간성을 잃는다. 점점 줄어드는 생존자가 열차칸을 이동하며 감염된 무리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대강의 줄거리를 이룬다.
등장인물 각자의 개인적인 사연은 길게 나오지 않는데 사실 이 영화는 스토리가 크게 의미 없어 보인다. 빠르게 달리는 좁은 열차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좀비와 싸우는 과정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끝까지 폐만 끼치는 사람, 언제나 방관하는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인간상을 볼 수 있다. 액션에 집중하고 관람객에게 공포를 유발하는 좀비 영화와는 차별화되게 공포에 질린 사람이 드러낼 수 있는 갖가지 심리 상태를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부산행>은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156개국에 판매되면서 전 세계를 사로잡은 K-좀비 영화가 되었다. 자신만 살겠다고 타인을 해치는 이기심, 절체절명의 순간에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심 등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였기에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세계 각국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았나 생각된다.
얼핏 단순한 좀비 영화로 볼 수 있지만 내겐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독의 시선이 있었다. 내가 읽어낸 메시지는 “방관자는 가해자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방관자 얘기를 하다 보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럽 각지의 유대인을 모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열차 수송의 최종 책임자였다.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적극 가담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후 체포되어 법정에 섰을 때 그의 죄목은 한마디로 무사유(無思惟, 아무 생각 없이 방관한 죄)였다. 그는 재판 내내 결백을 주장했다고 한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나는 월급을 받는 관리 중 한 사람으로서 상부의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죄가 있다면 명령에 따른 것이겠지요.” 그러나 검사는 “명령이 잘못되고 불법적인 경우에는 명령을 마지못해 따른 것 또한 불법적인 행위로 성립된다.”며 아이히만의 주장을 무력화시켰고 그는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다.
유대인 출신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저서에서 아이히만의 재판을 취재하고 분석한 내용을 다루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가 가진 근면성 자체는 죄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무사유’ 곧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의 사건에서 밝혀졌듯이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비판적인 사고 없이 행하는 일은 악이 될 가능성이 있고 이런 ‘악의 평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예는 무수히 많다. 학교 집단 따돌림의 경우 학급 분위기가 특정 학생을 괴롭히는 방향으로 조성되면 대다수의 평범한 아이들이 분위기에 맞춰 괴롭힘에 동조하기도 한다. 군대에서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이 도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악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980년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군인이 상명 하복의 규칙을 지켰다고 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방관하는 것도 죄,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죄,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을 위해 살아가지 않도록, 자신의 의미 없는 욕망만 채우다 끝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늘 깨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