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이 새롭게 보인 날

끄트머리

by 글노리

한 동네에서 오래 살다 보면 익숙함 때문인지 그곳이 제일 살기 좋은 지역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우리 동네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안전한 지형이라고 여긴다. 아차산을 병풍처럼 뒤에 두르고 한강을 앞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 번잡하지도 않고 조용하기까지 하니 강남 3구처럼 아파트 값이 치솟지 않아도 크게 불만이 없다.

동네 자랑 거리 아차산은 해발 300m도 안되니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오르며 한강을 조망할 수 있어 서울에서 보기 드문 경관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였다는데 고구려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남아 있어서인지 사람들에게 적잖이 인기가 있다.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산행을 나선 등산객으로 붐빌 때가 많다.

조선 명종 때 홍계관이라는 점쟁이가 왕을 노하게 한 죄로 죽게 생겼는데 진실을 알게 된 왕이 사형을 멈추도록 하였으나 집행관이 착각하고 처형해 버린 후 ‘아차’ 했고 그때부터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야사가 전해진다.

내게는 지도나 사전 준비 없이도 바로 갈 수 있는 만만한 뒷동산이다. 바위가 많은 아차산에 등산화 아닌 편한 신발을 신은 채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 미끄러워 오도 가도 못했던 일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내가 아차산에 다니는 경로는 대부분 비슷했다. 아파트 뒤로 나있는 샛길을 이용해 산 입구에 닿으면 생태공원 내 습지원을 산책하거나 둘레길의 일부 구간을 걷는 정도였다.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아는 길만 습관적으로 다녔는데 좀 지루하다 싶어 안내 사이트에서 다른 길을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내가 몰랐던 길과 장소가 의외로 많았고 그에 얽힌 숨은 사연도 더러 있었다.


아차산에는 아차산정상길, 아차산성길, 고구려정길, 해맞이길, 광장동코스, 구의동코스, 중곡동코스 등 여러 방향으로 난 등산로가 있다. 사람이 많이 다니면 길이 되고 그러다 보면 이름이 지어지게 되니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나는 등산로를 택하지 않고 가끔 다니던 둘레길을 다른 경로로 걷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일기 예보는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맑았다. 6월인데 낮기온이 31~32도까지 올랐다. 다행히 한여름 무더위는 아니어서 바람이 불면 시원하고 끈적임 없이 뽀송한 느낌이 들어 산행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돌아와서 보니 배낭을 멘 등과 어깨는 가방과 끈 모양대로 옷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찬물에 세수를 할 때 입으로 들어오는 물맛이 짤 지경이었다.

아차산 입구에 도착하니 수목 정비 기간이라 일부 진입로에 우회하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고 공사용 가림막이 쳐져 있는 구역도 있었다. 산 입구 부근 ‘어울림정원’에는 향기, 장미, 모란, 와당 등 계단식으로 예쁘게 꾸며진 테마 정원이 모여 있는데 제철이 아니어서 꽃이 만발한 상태는 아니었다.

어울림정원 위쪽에는 ‘숲속도서관’이 있는데 관찰력이 떨어지는 나는 근처를 드나들면서도 본 기억이 없다. 위치를 고려하면 지나가며 봤을 게 분명한데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다녀왔는데 책, 신문, 잡지가 비치되어 있고 대출과 반납이 가능했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 열람석에 빈 좌석이 없을 정도였다. 에어컨이 켜져 있는지 시원했고 출입문 쪽에는 책 소독기도 구비되어 있었다. 2층 귀퉁이에는 커피를 뽑을 수 있는 자동판매기가 있는데 무인 카페라고 소개글을 읽은 터라 그럴듯한 휴게 공간을 기대했으나 과대광고였다.

< 아차산 숲속도서관 >

둘레길 입구를 지나자 작은 무대에서 누군가 마이크를 대고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분위기에 어울리지도 않았고 멀리까지 계속 들리면 어쩌나 싶게 시끄러웠다. 물론 그 앞에 앉아 듣고 계신 분도 있었으나 나처럼 반기지 않는 부류는 조용하게 쉬려고 산에 왔는데 방해가 된다며 투덜거렸다.

둘레길에는 나무 데크가 깔린 무장애 숲길이 준비되어 힘들여 산을 오르지 않아도 맑은 공기를 한껏 마실 수 있었다. 적당한 간격으로 벤치가 놓여 있으니 걷다 쉴 수도 있고 난간 쪽으로 가면 주변을 가로막는 지형지물이 없어서 탁 트인 서울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고구려정으로 가는 길 표지판이 보였다. 예전 팔각정이 노후로 인해 기울어지자 철거하고 고구려 유적과 유물이 산재한 이 터에 고구려 건축 양식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왜 팔각정이 고구려정으로 명칭이 바뀌었는지 의아했는데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이곳의 일출과 야경이 볼만하다는데 새벽 등반이나 야간 산행을 피하는 내가 해돋이나 밤풍경을 눈에 담을 기회는 없었다. 오늘 목적지도 고구려정이 아니었으므로 도중에 발길을 돌렸다.

갈래길에 아차산성 알림판도 있었다. 이곳에서 온달이 전사했다고 전해지는데 성벽이 1km 넘게 둘러져 있다.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쌓은 성이라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사실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줄지어 늘어선 나무가 충분히 그늘이 되었고 보냉병에 담아 간 냉수를 마셨음에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 얼음 생각이 간절했다. 올라갈 때 봐두었던 카페에 들러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아차산 내 유일한 카페인데 역시 새롭게 발견한 장소이다. 찬 음료로 잠시 땀을 식히고 다시 둘레길 곳곳을 둘러보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게 되었다. 숲이 아름답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히 산림욕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었다. 숲길을 걷는데 갑자기 흰색 꽃잎이 위에서 아래로 후드득 떨어지는 것 같아서 보니 흰나비 몇 마리가 무리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비가 꽃잎과 닮아 보인 건 처음이었다.

< 소나무숲길 >


아차산은 내게 추억도 많은 곳이다.

산중에 위치한 사찰 영화사는 초등학교 시절 ‘또 여기야!’ 하며 지겨울 정도로 많이 간 소풍지였다. 어린 마음에 새로운 구경거리가 없이 경사진 바위와 나무, 풀만 있는 소풍 장소는 재미없었다.

새내기 대학생 때로 기억하는데 새벽 운동을 하자는 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동생과 함께 끌려 나가 아차산 능선 달리기를 한 적이 있다. 갑자기 찬 공기를 마시며 달려서 인지 장이 뒤틀리는 듯 복통이 왔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응급 상황이 되었다. 동생은 어머니께 알린다고 달려 내려가고 내가 잘 걷지 못해 주저앉아 있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 몇 명이 지나갔다. 언니가 사정을 얘기하니 흔쾌히 도움을 주었다. 한 학생이 나를 둘러업고 달리듯이 산길을 내려왔다.

나는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어서 집에서 빠르게 10분만 걸으면 갈 수 있는 산인데도 자주 가지는 않았다. 그러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체육 시설의 운영이 제한되면서 점심시간에 잠시 사무실 근처를 산책하거나 집에서 스트레칭하는 게 운동의 전부가 되다 보니 몸이 비비 꼬일 때가 있었다. 실내에 주로 있으니 숨도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답답함을 해소하겠다고 혼자 가끔 찾던 곳이기도 하다. 가볍게 산 중턱까지만 가도 공기가 상쾌하고 좋았다. 등산 예찬론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


국어에서 맨 끝부분을 지칭하는 ‘끄트머리’는 끝과 머리가 결합된 단어로 끝을 종결이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보았음을 눈치챌 수 있다. 영어에서도 ‘졸업식’을 의미하는 ‘commencement’에는 ‘시작’이라는 다른 뜻이 있고 중학교 시절 ‘마지막’이라고 외웠던 ‘last’에는 ‘계속하다’는 뜻도 있지 않은가. 끝이 새로운 시작이며 마무리가 아니라 계속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듯이 모든 현상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아차산 해맞이 광장에서 뜨는 해나 내 방 창에서 지는 해는 같은 해다. 솟아오르는 해는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니 기대감을 주고 넘어가는 해는 그날이 곧 끝나감을 알리니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리라. 결국 해는 항상 똑같이 떠오르고 지지만 어떤 시간에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고 하겠다.

마찬가지로 새롭지 않은 세상 만물도 새롭게 보아야 새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다니던 길을 살짝 바꿔서 옆으로 난 길로 갔을 뿐인데 우리 동네에 늘 있던 아차산의 경관은 오늘 내게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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