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한강공원이 초대한 공연

홀로 떠난 첫 여행

by 글노리

여의도는 업무차 금융 기관에, 봄나들이차 벚꽃 구경하러, 친구와의 약속차 맛집 방문을 위해 적지 않게 가던 곳이다. 입법부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이 있고 기업체가 금융 거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증권사가 모여 있을 뿐 아니라 불꽃축제, 마라톤대회, 공연 등 각종 행사가 일 년 내내 열린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 소녀시대 숲 >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혼자 여의도 한강 공원을 걸어볼 기회는 없었기에 안 해 본 것을 하기로 작정하고 돌아다녔다. 국회의사당역에서 시작해서 서울마리나를 거쳐 한강변 산책로를 걸었다. 도심에 위치해 있지만 K-Pop 스타들의 이름을 붙인 샤이니 숲, 동방신기 숲, 소녀시대 숲 등 자연을 잘 보존한 구역이 많다. 한강이 보일 법한 위치인데 나무가 빽빽해서 인지 조용한 산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근처 어디선가 공연을 하는지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이와 함께 물놀이를 하러 온 것 같은 가족도 지나간다. 혼자 걷다 보니 처음으로 홀로 떠난 여행 생각에 웃음이 났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도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대부분의 경우 가족이나 친구와 동행한다. 어쩌다 일정 조율이 쉽지 않거나 일행의 주머니 사정이 문제가 되면 모든 여정을 홀로 하기가 부담스러워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곤 했다.

이런 내가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혼자 감당한 적이 있다.


나는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서 클래식, 크로스오버, 재즈, 록, K-팝 등 장르에 상관없이 현장 관람은 연중행사처럼 1년에 한두 번 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어떤 록 밴드의 팬이 되었는데 그들의 공연을 가능한 한 많이 관람하러 다닐 때였다.

일본 동경에 있는 클럽에서 공연 예정이라는 공지가 떴다. 대형 공연장보다는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소극장 공연을 기다렸는데 마침 소규모 클럽 공연이었다. 공연일이 6월 초 징검다리 휴일 사이에 낀 월요일이라서 휴가를 내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못 갈 이유가 없었다. 티켓팅 사이트는 트래픽 폭주로 접속이 잘 안 되었고 어렵사리 거의 끝자리 티켓을 구했다.

공연 관람이 주목적이었기에 1박 2일로 일정을 잡았다. 왕복 비행기표와 숙박을 위한 호텔도 예약했다. 호텔은 공연 후 늦은 밤 돌아올 때 택시를 타기 싫어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를 알아봤는데 예약이 이미 꽉 찬 상태였다. 할 수 없이 차로 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입국 시 여행 목적을 묻길래 콘서트에 간다니까 누구 공연인지 다시 물었다. 밴드명을 얘기했더니 세계적인 가수나 K-팝 아이돌이 아니어서인지 모르겠다고 하길래 한국 가수라며 설명을 좀 했다.

무사히 호텔까지 도착했는데 체크인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호텔에 짐만 맡기고 점심을 먹으려고 근처 맛집을 소개받았다. 길치인 나는 호텔을 나오자 얼마 못 가 방향을 잃었고 소개받은 라멘 가게는 Google 지도로 검색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행인들에게 묻기 시작했는데 몇 번 만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 2명이 아는 곳이라고 했다. 내 일본어는 설명을 알아들을 실력이 안 되었고 그들은 영어가 안 됐다. 여학생들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결국 그들은 나의 목적지까지 동행해 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라멘을 사겠다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떠났다. 나는 키오스크에서 이것저것 선택 메뉴를 담았다. 고르기 안목이 부족한 편이라 나만의 레시피로 조리된 일본 라멘의 맛은 기대에 못 미쳤다.

다음 목적지는 타워레코드 시부야점이었다. 사려고 했던 해당 밴드의 한정 판매 앨범은 이미 'Sold Out'이라고 적혀 있었다. 목적을 상실했기에 의욕은 좀 떨어졌지만 건물 전층이 다양한 음악 장르의 CD로 채워져 있었고 K-팝 섹션과 기념품도 있었기에 아이쇼핑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공연장으로 갈 시간이었다. 필요한 짐들을 챙겨 출발했다. 택시에서 내려 이른 저녁 식사를 하려고 공연장 부근 레스토랑으로 걸어가는데 주머니에 있어야 할 휴대폰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방도 구석구석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택시에 떨어뜨렸나? 부딪힌 사람도 없었는데 어디서 소매치기를 당한 거지? 분실 신고를 해야 하나? 항공기 모바일 탑승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머릿속에서 질문이 이어졌다.

비행기 타고 멀리까지 왔는데 잃어버린 물건 때문에 기분을 망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불길한 생각을 접고 저녁을 먹었다. 공연장 입장 시간을 확인해야 하는데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는 나는 시간도 알 수 없었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분들도 관람객인 것 같아 시간을 물어보며 사정을 털어놓았다.

내 얘기를 들은 한 분이 일본인 성향을 봤을 때 내가 휴대폰을 떨어뜨렸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고 동경 중심지에 소매치기가 흔하진 않으니 도난도 아닐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혹시 누군가 손에 넣었다고 해도 금융인증서가 저장되어 있지 않다니 괜찮다고 거듭 안심시켜 주셨다.

지정석이 아닌 스탠딩 공연이라 대기줄에 서지 않으면 입장 순서를 놓칠 수도 있었다. 당연히 티켓 번호순으로 줄을 서서 입장까지 한참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비가 오고 천둥까지 쳤다. 가방에 365일 우산을 넣고 다니는 나는 다행히 비를 맞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공연 관람이 시작됐다. 관람객이 수용 인원을 훨씬 초과했는지 주변 사람과의 간격이 좁아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되는 14곡을 모두 감상했다. 휴대폰이 없어 무대 사진 한 장 못 찍은 게 조금 아쉽긴 했다. 나는 마지막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택시를 잡으려고 전력 질주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 빨리 숙소로 돌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텔에 도착하자 곧장 프런트데스크로 갔다. 휴대폰 잃어버린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청했다. 평상시 영수증을 안 챙기는 내가 이 날은 여행 기록지에 붙이려고 택시 요금을 현금으로 내고 영수증을 받았다. 호텔리어가 거기 적힌 택시 회사 전화번호로 연락을 취했다. 늦은 밤이라 기사와는 바로 연락이 닿지 않았으나 내일 오전에 확인해서 알려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내일 아침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더니 집 주소를 적어놓고 가면 휴대폰을 찾은 경우 우편으로 보내 주겠다고 했다.

다음은 한국행 비행기 티켓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모바일 탑승권이 휴대폰에 있는데 이미 체크인을 해놓은 상태로 잃어버렸으니 다시 발권을 할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호텔리어는 또다시 친절하게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주었고 한국어로 안내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다. 공항에 와서 종이 탑승권으로 발권하면 되니 걱정 말라는 답을 들었다.

이제 급한 불은 껐으니 방으로 돌아왔다. 한숨 돌리려고 침대에 걸터앉는 순간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소지품 챙긴다고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내려놓고 그냥 나갔던 모양이다. 나는 프런트데스크로 전화를 걸었다. 방에서 휴대폰을 찾았으니 후속 확인은 필요 없고 도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호텔리어는 찾아서 다행이라며 끝까지 친절한 인사말을 남겼다. 전화기에 얽힌 해프닝은 이렇게 끝이 났다.


겁 많은 길치가 혼자서 말도 안 통하는 나라로 여행을 떠난 것은 도전이었다.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관람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내 동생은 이에 대해 가끔 나를 놀리듯 농담을 한다. 그건 ‘사랑의 힘’이라고. 나는 다소 목표 지향적인 성향이 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여전히 내 분석이 맞다고 판단한다.

큰 사고 없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대단한 업적을 이룬 건 아니지만 혼자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껴지고 자신감도 커졌다. 좌충우돌하며 일어난 사건들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길 때는 위험과 대가가 따르지만 생각하고 머뭇거리기보다는 실천하는 게 낫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이 글을 시작할 때는 여행 준비부터 귀가까지 나 혼자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겪은 일을 기록하다 보니 결정적인 순간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홀로 떠난 첫 여행에서 놓치기 쉬운 진리를 깨달았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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