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기쁨
나는 등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만 올라가도 손이 퉁퉁 부어 주먹을 쥐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아래로 늘어뜨린 팔의 움직임이 줄어들어 생기는 가벼운 혈액 순환 장애라고 하는데 아무튼 유쾌한 느낌은 아니다.
나의 취향에 맞게 빠른 시간에 오를 수 있는 작은 산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응봉산이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게 낮지만 특이하게 봉우리가 한강변에 위치해 있어 정상에서 보이는 조망은 서울에서 1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아침부터 찌는 듯하게 더웠기에 여름철 한낮 산행은 자제하라는 등산로 입구 경고문이 내게 하는 말로 느껴졌지만 아직 오전이니 괜찮다고 우기는 마음이 이겼다. 산책로는 계단이 많고 좁은 데다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어서 혼자 걷기 좋고 경사지와 평지가 적당히 섞여 있어서 몸이 오르락내리락 자동으로 리듬을 타는 느낌이었다. 주변 나무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했고 중간중간 서울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라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는 롯데월드타워, 한국종합무역센터, 서울숲, 한강, 청계산, 관악산까지 서울의 남, 서쪽 전망이 거의 다 보였다. 이름난 관악산, 북한산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이 아니라서 뒷동산 같이 친근했다.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 앉아 좀 쉬려고 했더니 보수를 위해 폐쇄한 상태이고 주변에 의자가 있으나 마땅한 그늘도 없어 잠시 둘러보고 발길을 돌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벌레 날아다니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전철 소음이 배경 음악이 되어 완벽한 정적보다 오히려 자신과의 대화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준다. 넓지 않아 집중하기 좋고 높지 않지만 눈앞의 경치가 수려하다. 조용함 속에서 내 안의 소리는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다. 생각을 하든, 멍을 때리든, 숨만 쉬든 모두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분위기가 내 방과 닮았다.
우리 집에 있는 공간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장소는 내 방이다.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이사 올 때 인접해 있는 작은 방 2개 사이의 가벽을 제거하여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만 넓힌 상태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동네는 술집과 같은 유흥 시설 없이 아파트 단지와 학교, 근린 시설만 자리 잡은 철저한 주택가이다. 사방이 고층 아파트로 둘러 싸여 있지만 유일하게 내 방 창 쪽은 타운하우스 형태의 낮은 건물이 있어 멀리까지 시선 방해 없이 뻥 뚫려 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스카이라인과 함께 보이는 석양이 어지간한 해넘이 관광지를 무색하게 할 만큼 멋질 때도 있다. 황홀하다고 느껴 창을 열고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
한 여름밤에도 창문을 열어 놓으면 근처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열대야가 며칠씩 지속되지 않는 한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차도와는 90도 정도 방향을 틀고 있어서 자동차 굉음이 소음에 취약한 나를 괴롭히는 일은 드물다.
내 방 한편에는 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책꽂이가 있는데 오래된 책은 2~3년 전 헌책 방문 수거 업체를 통해 처분했다. 다른 쪽 벽에 배치한 레고 장식장이 모자라 레고 진열할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재택근무를 할 때는 사무실, 글을 쓸 때는 작업실, 레고 조립할 때는 공방, 책을 읽을 때는 도서관, 인터넷을 할 때는 PC방, 스캔이나 출력할 때는 프린트카페, 영화를 볼 때는 극장,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감상실, 커피를 마실 때는 카페, 잠을 잘 때는 침실이다. 이렇듯 내 방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니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의 비율)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널찍하고 값비싼 가구들로 꾸며진 공간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휴식도 취하고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나만의 놀이 공간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하며 몰입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다.
방구석에 있을 때 내가 몰입하는 대상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때로는 창밖을 바라보며 공상을 하기도 하는데 그 순간들이 놀이가 되어 빠져들게 된다. 심지어는 가계부 쓰기나 투자 분석도 놀이처럼 몰두해서 즐길 때가 있다.
요즘은 돈이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시대이다 보니 많은 이가 부를 축적하려고 애를 쓴다. 국민 주식, 서학 개미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투자 열풍도 불고 있다. 금융에 대해 다룬 신문 기사를 읽다 문득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성경에는 부에 대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열심히 찾아본 적이 있다.
성경에는 ‘부와 소유’에 대한 말씀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우선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구절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도서 5:19)’,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언 10:22)’
한편 재물에 집착하는 삶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언 11:28)’,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9~10)’
그런가 하면 부의 나눔과 올바른 사용에 대한 성경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문구도 보인다.
‘이 세대의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디모데전서 6:17~18)’,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언 19:17)’
앞서 인용된 구절에도 나타나듯이 성경에는 부와 소유에 대해 모순되게 느껴지는 표현이 적지 않다. 이는 수천 년에 걸쳐 여러 사람이 다른 대상에게 하는 말을 옮겼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성실한 노동의 대가이자 베푼 자선에 대한 축복이라는 긍정적인 얘기도 있지만 물질적 탐욕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혹하는 원천이 되므로 경계하라는 부정적인 언급도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상반된 문구들에 담긴 의미를 잘 살펴보면 자신이 누리는 풍요를 자기 노력의 결과로만 생각하는 오만을 버려라,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를 도우라는 내용이다. 부의 축적 자체를 죄악시하지는 않지만 집착하지 말고 허락받은 물질을 감사하며 사용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요지는 재물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한 도구이지 궁극적인 가치나 목적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부에 대한 성경 탐구 시간은 내게 재산의 축적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통찰하며 진리를 깨닫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삶에서 순간순간,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내 수준에 맞추어 목표를 정한 상태로 과제를 수행하면 몰입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삶의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만의 놀이 공간인 내 방에서 오래오래 몰입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