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구시가지 한양도성

여행을 떠나는 이유

by 글노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봄날 아침 친구들과 한양도성 성곽길을 거닐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비 예보가 있어 취소 얘기가 나왔으나 비 오는 날 걷기도 나름 운치 있다는 한 친구의 의견에 모두 설득당했다. 우리는 예고대로 떨어지는 비 속에서 서울의 낯선 모습을 목격했다.

한양도성 성곽길은 빌딩숲 주변을 성곽이 둘러싸고 있어 한쪽은 도시 경관, 다른 한쪽은 허름한 골목 풍경이 펼쳐져서 유럽 어느 도시의 구시가지, 신시가지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 이화동 안내지도 >

특히 낙산 구간은 ‘서울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불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대가 높아서 언덕을 따라 걸으니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였는데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몽마르트르와 느낌이 아주 비슷했다. 몽마르트르가 프랑스의 예술가들이 모여 그림 그리고 글 쓰던 공간이었듯 낙산 아래 이화동도 실제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곳이고 지금도 창작 스튜디오나 공방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좁고 구부러진 길이 많아 계단이나 담장을 따라 걷는 느낌이 유럽의 오래된 마을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도중에 만난 건물의 담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부부, 혀를 내민 강아지와 파란 눈의 고양이, 푸른 하늘에 펼쳐진 천사의 흰 날개 같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 담벼락 그림 >

우산을 쓰고 있으니 두 손이 자유롭지 못했고 은근히 추워서 주머니에 넣지 못한 손이 시렸다. 그 와중에도 우린 잠깐씩 벽에 그려진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궂은 날씨로 인해 미처 촬영하지 못한 구석구석의 모습은 뇌세포를 필름 삼아 기억 속에 찍어두기로 했다. 이화동에서는 비좁은 사잇길에서 마주친 아기자기한 풍경이나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담벼락 낙서까지 보이는 모든 것이 화젯거리가 될 만해서 산책만으로도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여느 사람들처럼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각자 여행의 이유가 다르겠지만 단지 재미 때문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인간은 오래전 수렵과 채집을 위해 계속 이동하고 움직이던 존재였기 때문에 유전자 속에 탐험의 본능이 남아 있다고 한다. 나도 본능에 대한 기억으로 여행을 좋아하는가 보다.

여행을 하면 처음 가보는 장소, 낯선 사람, 다른 언어, 독특한 음식을 경험하게 되는데 우리의 뇌는 이런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설렘과 기대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내가 여행을 계획할 때 늘 들뜬 마음이었던 건 호르몬의 작용이었다는 말이 된다.

여행은 일상에서 접하는 집안일, 회사 업무를 내려놓고 그냥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분리시켜 주니 모든 압박으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다. 때로는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느끼는 이질감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온 방식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고정관념을 버리도록 하는 장점도 있다.

사람은 대부분 이야기를 좋아하고 나만의 에피소드를 만들고 싶어 한다. 아마도 자기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질 사건을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기려는 마음, 나의 흔적을 누군가의 기억 속에 공유하고자 하는 감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행은 그 자체로 이야깃거리가 되다 보니 마치 소중한 자산처럼 간직하기를 원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터넷이나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 여행의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혹자들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코로나 시기 몇 년을 제외하면 여행은 오히려 활발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IT 기술이 발달하면 구글 스트리트뷰, 유튜브, 가상현실 콘텐츠를 통해 실제 여행을 하지 않아도 세상을 구경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메타버스 열풍이 불었을 때는 향후 여행 산업이 대체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VR(Virtual Reality)이나 AR(Augmented Reality)이 오감으로 느끼는 경험을 대신하진 못했다. 디지털 콘텐츠가 오히려 진짜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의지를 더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시대에는 원격 근무, 온라인 쇼핑, 화상 교육 등 모든 걸 집에서 할 수 있게 되니 굳이 장소를 옮길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펼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디지털화가 인간을 제한된 공간에 가두게 되면서 일상을 단조롭게 만들었고 탈출 욕구를 더 자극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발달하면 사람은 직접 체험하기 대신 정보를 활용한 간접 체험만으로 만족하리라는 의견도 있었다. 예상과 달리 인간은 데이터로 요약된 정보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느끼면서 타인이 쓴 여행지 리뷰 100개 보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현지 길거리 하나가 더 기억에 남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IT 기술은 여행할 이유를 줄였지만 인간의 감정은 여행에 대한 욕망을 더욱 키운 듯하다. 인터넷으로 많은 온라인 활동이 가능해졌지만 실제로 낯선 공간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더 간절하게 여행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해외여행이 일반적인 여가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요즘은 따로 휴가철이라고 할 것도 없이 공휴일이 길게 이어지면 인천 공항이 출국자로 북적댄다. 1980년대 이전에는 기업의 업무용 출장이나 학생의 유학 등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여권조차 발급되지 않았다. 1983년부터 나이와 재산에 제한을 둔 상태로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을 일부 자유화 했고 해마다 여행 가능한 연령대를 조금씩 낮추다가 1989년에 전면 자유화가 이루어졌다.

나도 1989년에 처음 미국으로 여행을 갔다. 사실 여행이라기보다 가족 방문을 위해 국제선 비행기를 처음 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유학 간 언니가 잘 지내고 있는지 바쁜 아버지 대신 보고 오라는 특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출입국 시 온 가족이 배웅을 하고 마중을 나오던 때라 아버지가 동생과 함께 김포 공항까지 데려다주신 기억이 있다. 경유지를 거쳐 보스턴까지 가야 했는데 사건의 전말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내가 연결 항공편을 놓쳤던 것 같다. 짐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가 아닌 공항 건물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걸 겨우 찾았던 생각이 난다.

여행이 자유화되었다고 모든 게 자유롭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당시 여권을 신청하면 ‘소양교육’이라는 명칭으로 하루 동안 반공 교육을 받는 게 필수 절차였다. 미국 관광 비자를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몇 분내로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학생이었던 나는 재학증명서, 성적증명서까지 각종 서류를 준비했고 미대사관 앞에 길게 줄을 서서 비자 인터뷰를 하려고 몇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1988년 올림픽 이후 불어온 세계화 바람이 해외여행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부추겼고 유명 관광지 들르기식 여행이 주를 이루던 시기를 거쳐 개인의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자유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는 일에 비하면 여행은 피곤하고 위험하며 비용까지 드는 활동이니 사서 하는 고생이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전하지만 재미없는 일상생활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온갖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 다른 세상을 느끼고 경험하며 다시 일상을 지속할 에너지를 얻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예상치 못하게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고 해도 여행의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누리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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