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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광 Jun 03. 2024

혁명적인 시간에 하교하기

대안학교가 대안이 되려면.


"자기 선의만 믿고 게을러지면 선의도 부서집니다. 정말 선의가 있는 사람들은 OO처럼 부지런하도록 노력하십시요. 그것밖에는 선의를 지킬 길이 없어요."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대안학교의 학생들은 대치동 학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지배적인 흐름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


위 사진은 Max라는 중3학생이 새벽 5시쯤 하교하면서 교내 소통 사이트(discoard)에 올린 사진입니다.


Way Maker School을 1년 이상 다닌 팀프들은 수업의 일환으로 외부 공모전에 참가해야 합니다. 서류 제출 마감일이어서 이를 맞추느라 지원하는 모든 학생들이 문서와 동영상 작업을 새벽까지 했습니다.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공모전에 출전시키는 이유는, 한국 10대들에게 입시외에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문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를 하자고 하면, 한국의 아이들은 '그거 내신에 나와요? 입시에 도움되나요?'라고 되묻습니다. '문화'가 있어야 동기 유발이 가능한데, 한국의 학생들에게는 입시외에는 다른 문화가 없습니다. 


그나마 공모전이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는 가장 좋은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


대견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합니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이 혹사하고 있는데 '우리 학교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그러나 안쓰러움보다는 코치와 팀프들이 '우리가 가야 할 길로 잘 가고 있구나'라는 대견함과 자랑스러움이 제 마음속에 훨씬 더 큰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제 자신과 그리고 학부모님들과 소통하기 위해 몇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우리 아이들이 밤을 새우며 작업하고 공부한 것은 입시에만 도움이 되는 것을 넘어, 인생 전체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8년 전 서초동의 한 학부모를 통해 그곳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정석을 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공부는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덜 틀리는가?'를 평가하는 것에 맞춰진 공부입니다.


이것이 과연 아이들이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20년 뒤에도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회의가 듭니다.


그러나 WMS 팀프들이 이번 공모전 프로젝트를 하며 창조한 경험과 배움은 AI시대에도 퇴색되지 않을 값진 경험입니다.


*


팀프들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현장에 찾아가 문제를 확인하고 당사자들과 인터뷰했습니다.


사람과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것이죠. 사람을 만나야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해야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나온 해결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영상과 디지털 도구를 통해 구체화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우리 WMS 학생들이 해내고 있는 것이죠.


5~10년 사이에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나온다고 합니다.


실은 '인간 수준의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가 학자마다 달라 AGI(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의 출현 시기에 대한 의견은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능'이란 무엇일까요?' 한 사회 또는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일반적 지능의 정의입니다.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인공지능과 협업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을 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목표와 목적 그리고 가치를 정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정해준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결하는 것은 AI가 매우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고, 우리가 인공지능과 함께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를 정의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WMS 팀프들은 바로 그 일을 밤을 새워가며 한 것입니다.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Design Thinking'이라는 미래 지향적인 방법론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혔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자녀들이 입시에만 올인하는 대치동 학생들은 할 수 없는 기여를 세상에 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


두 번째, WMS 학생들의 밤샘이 안스럽기보다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밤샘의 목적과 방향 때문입니다.이들이 하는 프로젝트는 사람과 사회를 좀 더 살기 좋게 만들어 줍니다. 


아이들이 학습을 하며 만들고 있는 프로젝트는 


1. 농인과 청인이 전화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앱

2. 10대 청소년이 핸드폰 중독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앱

3. 쉽고 효율적인(주자장을 효율적을 활용할 수 있는) 전기차 충전 시스템

4. 시니어 노인 분들이 키오스크를 편리하게 사용도록 돕는 UI/UX설계등입니다. 


인생의 의미와 행복은 의미와 행복을 쫓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큰 뜻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을 좇을 때 온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공부의 즐거움은 즐거움을 쫓을 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뉴진스 노래를 틀어놓고 공부한다고 공부의 재미가 생기지 않습니다. 공부의 즐거움은 어떤 주제에 대한 몰입을 경험할 때 따라오는 것입니다.


만약, 밤새워 공부하는 이유가 내신 등급이 떨어질 것에 대한 불안이라면 이는 안쓰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밤새워 공부하는 이유가 특정한 사람과 공동체가 더 편리하고 행복하게 하는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Way Maker School은 학교의 이름이 이야기 하듯, 한국 사회에 새로운 교육의 방향성과 길을 보여주는 사명을 가진 학교입니다. 그래서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자기 선의만 믿고 게을러지면 선의도 부서집니다. 정말 선의가 있는 사람들은 OO처럼 부지런하도록 노력하십시요. 그것밖에는 선의를 지킬 길이 없어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님의 이야기 입니다. 좋은 뜻을 가진 대안학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올해 가치 창조 프로젝트의 1차 결과는 기존 프로젝트 수준을 두 단계 정도 올린 것 같습니다. 아마, 한국의 가장 우수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지원 서류와 비교해도 탁월합니다. 


한국 사회에 좀 더 좋은 교육의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선의를 가진 대안학교의 학생들은 어떤 면에서 대치동의 학생들 보다 더 부지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그 선의'가 제대로 빛을 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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