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대기업을 이기는 시대

10.

by 송영광

케빈 켈리는 딸에게 숙제를 시킨 적이 있다. 집 안에 있는 물건의 종류를 전부 세어보라고. 포크, 나이프, 스푼은 각각 다른 종류다. 볼펜과 연필도 다르다. 숟가락과 국자도 다르다. 딸이 세어본 결과는 약 6,000종이었다.


평범한 미국 가정에 6,000종의 물건이 있다. 다른 가정에서 같은 실험을 하면 1만 종이 넘기도 한다. 켈리는 이 숫자를 역사와 대조했다. 1547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죽었을 때 그의 궁에 있던 물건은 약 18,000점이었다. 당시에 영국 전체의 부가 그 궁에 모여 있었다.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아니 영국 그 자체가 소유한 물건이 18,000점. 그런데 오늘날 평범한 가정의 물건 종류가 6,000종이다. 종류만 따지면 왕의 3분의 1이지만, 헨리 8세의 18,000점에는 항생제가 없었다. 냉장고가 없었다. 천 킬로미터를 편안하게 이동할 방법이 없었다.


인도의 릭샤 운전사도 오늘날에는 몇 달치 급여를 모아 항생제를 사고, 냉장고를 장만하고, 기차를 탈 수 있다. 500년 전 영국 왕이 영국의 전 재산으로도 살 수 없던 것을 말이다. 물건의 이야기다. 이것이 지식으로 옮겨가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 10~30년 안에 한 개인이 삼성전자, 테슬라, 구글의 전체 엔지니어를 합한 것보다 더 높은 지적 수준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헨리 8세가 영국의 전 재산으로도 사지 못한 것을 릭샤 운전사가 사듯, 삼성의 1만 명이 만들어낸 지적 역량을 한 사람이 호출하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과장처럼 들리나요. 하지만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앤트로픽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2027년이면 AI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 예측했고, 샘 알트만은 2030년까지 초지능의 도래를 말한다.


2023년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일이 2024년에 가능해졌고, 2025년에는 당연해졌다. 이 속도가 멈출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물건에서 시작된 민주화가 지식으로, 그리고 실행으로 확장되고 있다. 헨리 8세와 릭샤 운전사의 거리가 500년이었다면, 대기업 엔지니어 팀과 AI를 쓰는 개인의 거리는 10년이면 충분할지 모른다.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한 고등학생이 방과 후에 하는 일이 있었다. 학원이 아니다. 로블록스에서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아이가 버는 돈은 월 삼사백만 원. 연봉으로 치면 사천만 원이 넘는다.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아이에게는 사무실도 없고, 팀원도 없고, 투자자도 없다. 있는 것은 노트북 한 대와 아이디어뿐이었다. 앞에서 만났던 그 아이다. 학원 셔틀을 타는 대신 디스코드 채팅방에서 새벽 2시까지 코딩하던 아이. 그 아이가 만든 게임에 접속하는 유저는 수십만 명이다.


면접관보다 인턴이 돈을 더 많이 버는 상황. 어느 쪽이 누구를 면접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시대다. 같은 해,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개발자들에게 지급된 총 수익은 9억 2,280만 달러. 원화로 약 1조 2천억 원이다.


이 개발자들의 75%가 24세 미만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이, 웬만한 중견기업의 매출을 혼자 만들어내고 있다.


로블록스만이 아니다. 유튜브에서 채널 하나로 연간 수십억을 버는 10대가 있고, 쇼피파이에서 자기가 디자인한 굿즈를 파는 중학생이 있고, 노션과 AI를 결합해 컨설팅 사업을 돌리는 대학 자퇴생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누구에게도 취업을 부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아이의 부모는 처음에 걱정했을 것이다. 게임만 한다고. 하지만 이 아이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였다. 성적표를 걱정할 때, 이 아이는 종합소득세를 걱정하고 있었다.


30년 전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임을 만들어 유통하려면 퍼블리셔와 계약하고, 개발팀을 꾸리고, 마케팅 예산을 확보해야 했다. 방송국을 세우려면 수백억이 필요했다.


그 벽이 증발했다. 인터넷이 첫 번째 균열을 냈고, 스마트폰이 벽을 흔들었고, AI가 나머지를 날려버렸다. TV 광고로 100만 명에게 도달하려면 2만~3만 달러가 든다. 유튜브에서는? 콘텐츠 하나가 기발하면 광고비 0원으로 100만 명에게 닿는다.


30년 전 방송국 하나를 세워야 할 수 있던 일을, 고등학생이 스마트폰 하나로 한다.


비용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능력의 격차도 줄어들었다. 앞에서 본 트리니트론의 교훈을 기억하나요. 소니가 30년간 쌓은 아날로그 노하우의 벽을, 삼성이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단숨에 넘었다.


같은 일이 지금, 조직과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이 수십 년간 쌓은 전문 인력의 벽을, AI라는 새로운 도구가 개인에게도 넘을 수 있게 만들고 있다.


2026년 1월, 앤트로픽의 AI 코딩 도구 책임자 보리스 체르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두 달 넘게 코드를 직접 쓰지 않았다. 우리 코드의 100%를 AI가 작성한다."


앤트로픽만이 아니다. 오픈AI의 연구원도 같은 고백을 했다.

"나는 더 이상 코드를 쓰지 않는다. 100%다."



앤트로픽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한 발 더 나갔다. "6~12개월 내에 AI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대부분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타트업 개발자들이 코드를 손으로 치는 대신 AI에게 시키고 결과를 검수하는 방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코딩 능력의 민주화가 예측이 아니라 현실이 된 것이다.


스탠퍼드대학교 교수인 앤드류 응은 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PM과 개발자의 비율이 1:8에서 1:1을 거쳐 2:1로 바뀌고 있다고. 개발자가 88% 줄고, 기획자가 800% 늘어나는 구조. 코드를 치는 손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머리가 값비싸지는 시대.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AI를 실제로 써본 사람은 안다. AI에게 일을 시키는 과정이 어떤 일과 닮았는지.


목표를 세운다. 지시를 내린다. 결과물을 확인한다. "이건 아닌데" 하고 피드백을 준다. 방향을 수정한다. 다시 시킨다. 이 과정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한다.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것은 코딩이 아니다. 관리자의 일이다. PM의 일이다. 대표의 일이다.


회사에서 대표가 하는 일이 정확히 이것이다. 비전을 세우고, 팀원에게 일을 맡기고, 결과를 평가하고, 방향을 조정한다. 삼성에서 팀장이 팀원에게 하던 일, 구글에서 PM이 엔지니어에게 하던 일을, 이제 모든 AI 사용자가 하고 있다.


AI가 팀원을 대신하는 순간, AI를 쓰는 모든 사람이 사실상 대표가 된다. 모든 사람이 대표가 되는 시대.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구조의 변화다.


과거에는 대표가 되려면 조건이 필요했다. 자본, 인맥, 경험, 팀.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AI가 이 네 가지 중 셋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자본? AI 기반 1인 기업의 기술 스택 비용은 연간 3,000~12,000달러다. 전통적 방식으로 직원을 고용하면 수십만 달러가 든다.


인맥? AI가 코드를 쓰고, 디자인을 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고객에게 응대한다. 글쓰기, 영상 제작, 법률 문서 검토까지. 전문가 집단이 독점하던 영역이 하나씩 열리고 있다.


경험? 40대의 삶의 경험과 50대의 업계 지식이 20대의 코딩 속도보다 값비싸지는 시대가 됐다.



남은 것은 비전 하나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 그것만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앞에서 본 영감이 여기서 다시 등장한다. 살아낸 서사에서 나오는 방향 감각. 그것이 이 시대의 대표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자격이다.


숫자로 보면 이미 벌어지고 있다. 2019년, 미국에서 혼자 창업한 기업의 비율은 전체 신규 기업의 23.7%였다. 2025년 중반, 36.3%로 뛰었다. 6년 만에 50% 이상 증가. 연매출 100만 달러(약 13억 원) 이상인 기업 중 38%가 직원 없이 혼자 운영하는 1인 기업이다.


이들의 영업이익률은 60~80%. 대기업이 10~20%의 이익률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동안, 혼자 일하는 사람이 네 배의 이익률을 올린다. 규모의 경제가 뒤집혔다.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 강한 시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힘이 아니라 도구 때문이었다. 지금 AI가 그 물맷돌이다.


클로드 코드 해커톤이 이것을 증명했다. 금상을 받은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건축업자 마이크 브라운이었다. 전문 개발자가 아니다. 건축 허가 과정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를 AI로 만들었다. 은상은 12살짜리 딸을 위해 말 관리 앱을 만든 아빠에게 돌아갔다.


코딩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현장의 문제를 AI와 함께 해결했다. 비결은 기술이 아니었다. 현장을 아는 것, 문제를 피부로 느끼는 것. 그래서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이들은 개발자가 된 것이 아니다. 대표가 된 것이다. 비전을 세우고, AI라는 팀원에게 일을 시키고, 결과를 평가하고,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건축업자 브라운이 해커톤에서 한 일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CEO가 매일 하는 일과 구조적으로 같다. 차이가 있다면 브라운에게는 투자금도, 공동창업자도, 개발팀도 필요 없었다는 것뿐이다.


3년 전만 해도 40, 50대가 코딩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 나는 솔직히 말렸다. 배우는 데만 몇 년, 20대와 경쟁이 안 된다. 하지만 이제는 배우라고 말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코딩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대표가 되라는 것이다. 20대에게는 속도가 있지만, 50대에게는 방향이 있다. AI 시대에 속도는 기계가 주지만, 방향은 사람만이 줄 수 있다.


이 현상에는 역사적 선례가 있다. 인쇄술이 등장하기 전, 지식은 기관의 것이었다. 수도원의 필사실에서 한 글자씩 베끼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책 한 권의 가격이 집 한 채와 맞먹었다. 지식은 대화와 구전으로만 전달됐다.


인쇄술이 그 벽을 허물었다. 책이 생기면서 생각이 고정됐다. 고정된 생각에 대한 반박을 또 고정할 수 있게 됐다. 비로소 "이 주장은 틀렸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가 가능해진 것이다.


창의성, 즉 오리지널리티라는 개념 자체가 인쇄술의 산물이었다. 마르틴 루터가 95개 논제를 인쇄해서 수만 부를 뿌릴 수 있었던 것도, 교황의 고정된 텍스트에 자신의 고정된 반박을 맞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쇄술은 개인의 사고를 가능케 했다. AI는 개인의 실행을 가능케 한다.


500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구조의 혁명이 반복되고 있다. 구텐베르크가 쳐 놓은 글판을 AI가 실행판으로 확장하는 셈이다. 인쇄술은 읽고 생각하고 비판하는 것을 개인화했다. 하지만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려면 여전히 조직이 필요했다.


생각은 개인의 것이 됐지만, 실행은 기관의 것이었다. AI가 그 마지막 벽을 허문다. 코드를 쓰는 것, 디자인을 하는 것,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 고객에게 응대하는 것. 이 모든 실행의 단계를 AI가 보조하면서, 한 사람이 생각에서 실행까지 전 과정을 관통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모두를 사진가로 만들었듯, AI는 모두를 실행자로, 그리고 대표로 만들고 있다.


케빈 켈리는 이 흐름의 끝을 예측한 바 있다. 그의 저서 《인에비터블》(2016)에서 켈리는 기술이 개인을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필연적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사람 수만큼의 기업이 생길 것이다."



70억 인류, 70억 기업. 황당하게 들리지만, 켈리의 논리는 단순하다. 헨리 8세 시대에 왕만이 가질 수 있던 물건을 이제 모든 사람이 갖듯, 대기업만이 가질 수 있던 실행 능력을 이제 모든 사람이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물건의 민주화에 500년이 걸렸다. 지식의 민주화에 50년이 걸렸다. 실행의 민주화는 지금, 5년 안에 벌어지고 있다.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그리고 가속도는 멈추지 않는다.


켈리는 체스의 역사를 즐겨 인용하기도 한다. 1997년, IBM의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겼을 때, 사람들은 체스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세계 최고의 체스 플레이어는 AI도, 인간도 아닌, AI와 인간이 한 팀이 된 존재가 되었다.


개인이 강해지는 것은 AI가 인간을 대체해서가 아니다. AI와 인간이 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팀의 최소 단위는 한 사람이다.


물론 모든 개인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1인 기업의 90%는 여전히 3년 안에 문을 닫는다. 하지만 시도의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본질이다. 30년 전에는 실패하면 수억을 잃었다. 지금은 실패해도 잃는 것이 시간뿐이고, 그 시간조차 AI가 줄여주고 있다.


이 수치를 학부모의 눈으로 다시 보자. 아이에게 코딩을 가르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느냐가 문제다. 내가 무엇을 불편해하는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가.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고, 무엇이 나를 분노하게 하는가. 이 질문들이 비전의 재료다. 문제를 발견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자신의 삶을 관찰하는 메타인지에서 나온다. 내 불편함, 내 고통, 내 기쁨 속에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가 숨어 있다.


클로드 해커톤의 건축업자 브라운도 그랬다. 건축 허가 절차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매일 겪었기 때문에, AI를 만나자마자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았다. 12살 딸의 아빠도 마찬가지다. 말을 키우는 딸의 일상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필요한 앱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었다.


비전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삶에서 올라온다.


그런데 한국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시간이 없다. 수능을 풀고, 남이 정의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자기 자신의 진짜 문제를 발견할 틈이 없다. 하루 열다섯 시간을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문제에 쏟고, 정작 "나는 무엇이 불편한가"를 묻는 시간은 제로다.


남의 문제만 풀다가 정작 자기 문제는 모르는 사람. 이것이 지금 교육이 만들어내는 인간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아이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자신의 감정을 살펴보고, 그것을 말로 꺼내고, 그 말에 박수쳐 주고, 그것을 키워 주는 환경. 아이덴티티를 발견하고 디벨롭할 구조. 실은 이것이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교육학자들이 수십 년째 해온 이야기다. 다만 실행할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AI가 그 방법을 가져왔다. 한 명의 교사가 서른 명의 아이에게 일일이 "너는 무엇이 좋아?"라고 물을 수 없었다. AI는 물을 수 있다. 기다려줄 수 있다. 아이의 대답에 맞춰 다음 질문을 바꿀 수 있다.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부모 세대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은퇴 후 30~4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 — 뒤에서 다시 깊이 다루겠지만 — 그 답의 일부가 여기에 있다.


AI와 함께라면, 50대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삶의 경험이라는 자산 위에, AI라는 실행 도구를 얹으면, 젊은이가 따라올 수 없는 깊이의 사업이 가능하다. 속도는 기계가 주지만, 방향은 사람만이 줄 수 있다. 그 방향은 살아온 세월에서 나온다.


삼성에서 휴대폰을 개발하던 시절, 나는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 대기업의 힘은 규모에서 나온다고 배웠다. 수백 명의 엔지니어가 한 방향으로 달려야 스마트폰 하나가 만들어졌고, 그 뒤에는 수천 명 규모의 조직이 돌아가고 있었다. 개인이 대기업과 경쟁한다는 것은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한 사람이 AI를 팀원 삼아 제품을 설계하고, 코딩하고, 마케팅하고, 고객 서비스까지 운영한다. 회의도 없고, 결재도 없고, "이건 윗선에 보고해야 합니다"도 없다. 물론 스마트폰을 혼자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콘텐츠, 서비스의 영역에서는 이미 개인이 조직을 이기고 있다. 그리고 그 영역은 매일 넓어지고 있다.


개인이 대기업을 이기는 시대. 그렇다면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답은 새로운 곳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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