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밖에 나가기만 해도, 호르몬 구급대원들이 달려온다
오늘도 운동을 하고 왔다. 엊그제 무리를 해서 무릎이 아팠지만, '20분이라도 걷자'는 마음으로 헬스장을 다녀왔다. 사실 나는 원래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만 유지하며 하루를 보내던 나였다. 저질체력의 집순이였던 내가 운동을 삼시세끼 밥 먹듯 하루의 필수 일과로 하게 된 데에는 올해 초 진단받은 우울증의 영향이 컸다.
무기력과 부정적인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운동'이었다. 그리고 오늘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동안 운동을 마칠 때마다 느꼈던 상쾌함과 뿌듯함, 성취감이 주관적인 느낌이 아닌, 과학적인 호르몬 분비와도 관련 있었다.
운동을 하면 도파민 외에도 집중력과 상상력을 높이는 아세틸콜린이 분비된다.
또 세로토닌도 활성화되고,
약간 힘든 운동을 하면 '뇌 내 마약'이라고 불리는 엔도르핀도 분비된다.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하면 지방분해를 촉진하는 성장호르몬도 분비된다.
- 가바사와 시온,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우울증의 가장 힘든 점이 '무기력증'이다. 나 역시 하루하루를 의욕 없이 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의식의 흐름은 더욱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다.
의욕이 없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고, 동기부여가 안 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운동부족일 가능성이 있다.
일에 대한 의욕을 높이는 의미에서도 적절한 운동은 필요하다.
- 가바사와 시온,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약물치료, 심리상담, 인지행동치료 등 다양하다. 분명한 건 어떤 치료방법을 택하든 운동을 병행하면 상당히 호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안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어려운 일임을. 나도 한때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방에서 누워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조금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집 밖을 나와라. 일단 햇볕을 쬐면 '뇌의 치유 물질'인 세로토닌이 활성화되어 기분전환이 된다. 실제 우울증은 장기적인 스트레스로 세로토닌 활성화가 낮은 상태로 고정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5분만 걸어보자. 막상 걷기 시작하면 의외로 10분, 20분을 걷게될 수도 있다. 걷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줄어든다. 부정적인 생각을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10개에서 9개로만 줄어도 머리가 덜 아플 것이다. 귓속을 맴도는 '망했어', '넌 어차피 안돼'라는 속삭임도 줄어든다. 잠깐이지만 '어쩌면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생산적인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기운이 난다. 체력이 생기면,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가 경험해서이기도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우리가 움직이면 몸 안에 있는 '호르몬' 응급구급대원들이 도와준다고 하니 한 번만 시도해보길 바란다.
솔직히 나도 지금 우울증이 얼마나 나아진 건지 모르겠다. 다시 회사에 갔는데 적응을 못한다거나, 공황발작 같은 증세를 일으키며 예전보다 더 상태가 악화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과 불안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오늘'을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몸을 움직이며 해볼 수 있는 것들을 하다보면, 인생을 뒤덮고 있는 우울증이라는 안개가 언젠가는 걷힐 것이라는 희망도 가지고 있다.
잘 극복한다면 우울증 감옥에 갇힌 다른 사람들을 탈출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있다.
*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