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참으로 바쁜 한 주였다.
지난 연휴기간에 갑자기 떠난 제주도 여행의 후유증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이 몰릴 때는 유난히 몰린다.
거기에 평소보다 다채로운 문의와 상담, 요청건으로 가득한 민원 선물세트 같은 한 주였다.
사실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한 터였기에 괜찮았다.
예정되어 있던 계약과 보고자료를 무사히 제출했고,
중간중간 깜짝 선물로 등장하는 민원인들의 요구도 잘 끝냈다.
목요일 오후 다섯 시, 문제의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00 담당자분이시죠? 그거 처리해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왜 안된다고 하는 겁니까?"
아침에 급하게 계약을 해지해달라고 했던 전화였다.
"네 선생님, 그 계약은 오전에 법무사님과 통화를 했는데요~ 00 때문에 오늘은 어렵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주에 바로 처리해 드릴게요."
내부 규정상 당일 계약해지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처리가 안 되는 이유와 언제 처리 가능한지까지 충분히 설명했으나,
상대는 당일 해지가 안된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과 함께 어떻게든 당장 해달라고 말했다.
"아니 왜 안 되는 거예요? 그럼 규정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진짜 짜증이 나네. 이거 오늘 해지 안되면 내 손해가 막심한데, 그 책임은 누가 진답니까?"
속으로 수백 번은 말했다.
'그렇게 급한 일이면 진작에 연락하시지. 왜 이제 와서 이러세요'라고 말이다.
하지만 민원인 응대는 최대한 일을 키우지 않고 담당자 선에서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통화를 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예외적인 경우까지 찾아서 본사와 타 부서 협조까지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주변에서는 악성 민원인들이 가끔 있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다독였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와 눈물이 흘렀다.
일을 마무리하고 여섯 시가 되자마자 도망치듯 짐을 정리하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심리상담이 있는 날이라, 센터로 운전하는데 여전히 눈물이 쏟아졌다.
선생님을 보자 참았던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퇴근 전 받았던 전화를 비롯해 이번주 일들을 담담히 얘기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들으시고 다시 물었다.
"꿈배르니씨는 응대를 잘하신 것 같아요. 왜 안 되는 지도 차분히 설명하셨고, 방법도 찾아서 그분이 원하는 것도 해결해 주셨고요. 민원이 안 생기도록 친절하게 설명하신 것 같은데요?"
"네.."
"직장인으로서는 민원인 응대를 잘하셨는데, 왜 눈물이 났을까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송하다고 말해서 자존심이 상한 거예요? 아니면, 강압적이고 무례한 말 때문에 그런 건가요?"
상담을 하면서야 알게 됐다.
내가 왜 눈물이 났는지.
선생님 말처럼 직장인으로서는 일을 잘 처리했다.
강압적이고 다소 무례한 말투에도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다.
잘못한 게 없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했고, 가능한 방법까지 찾아 민원인이 원하는 대로 처리했다.
그러나 인간 꿈배르니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마음을 돌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의 강압적이고 다소 무례한 말에도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말했다.
"꿈배르니씨가 힘든 이유는 솔직하지 못해서 같아요."
"전화를 끊고 나서, 사무실에서 눈물을 흘린 거는 솔직한 거지만, 강압적이고 무례한 상대망의 말을 들을 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서 억울한 마음이 든 게 아닐까요?"
그렇다.
예전의 나라면, 사무실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힘들면 화장실로 뛰어가 울고 올 수는 있지만,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작년 휴직 이후, 나는 달라졌다.
힘들면 그냥 힘들다고 한다. 눈물이 날 것 같으면 그냥 눈물을 흘린다.
힘들 때마다 매번 펑펑 울며 감정조절을 못하면 안 되겠지만,
나는 힘든 내색을 전혀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표현을 해야 사람들이 알고, 때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감정을 그때그때 풀어야 쌓이지 않는다.
하지만 민원인과의 전화통화에서는 솔직하지 못했다.
물론 악성 민원인과의 통화에서 100% 솔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강압적이고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최소한 '나'를 지킬 수는 있어야 한다.
예의를 갖춰서 딱한 상황을 이야기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을 나였다.
하지만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뜸 화부터 내며 무조건 해달라는 식의 말을 듣고도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라는 말을 하지 못한 나 자신은 통화가 끝나고, 퇴근을 해서도 내 마음에 계속 남아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쌓이고 쌓여 나를 좀먹게 된다.
상담을 하면서 내가 작년에 휴직을 하도록 기폭제가 되었던 부장님이 생각났다.
그 부장님은 새롭게 지사에 발령을 받아, 새 업무를 맡은 나에게 본인 스타일대로 자꾸 다시 해오라고 지시했었다.
그때도 처음엔 어떻게든 맞추려고 노력했다.
야근을 하고, 주말근무를 하며 일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부장님께 나는 말하지 못했다.
"일이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자꾸 다시 하라고 하시니 일이 쌓입니다."
평소 거절이나, 상대가 불편해하는 말을 못 하는 기질과
인정욕구가 더해진 환장의 조합은
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는 순간까지 나를 몰아세우게 만든다.
작년에 그런 일을 겪고, 많이 변했다 생각했는데 아직 여전히 깨닫고 연습해야 할게 많구나 생각했다.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다음날 출근 후 어제의 민원인에게 전화했다.
"선생님, 어제 말씀하신 해지건은 오늘 중으로 처리될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 원래는 이런 경우, 당일 해지가 안됩니다. 저희도 규정과 시스템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어제 꼭 해지해야 한다고 하셔서 제가 본사와 타 부서 협조를 받아서 처리해 드린 거예요. 다음부터는 이렇게 급한 경우이시면 미리 연락을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어제 저에게 강압적인 말투로 말씀하셨는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사정을 말씀하셨으면 저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드렸을 텐데, 그렇게 말씀하셔서 저는 어제 잠도 못 잤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말투가 눈에 띄게 누그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어제는 죄송했다는 사과의 말이었다.
통화를 끊고 나자, 옆자리의 동료가 말했다.
"꿈배르니씨가 오늘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저 어제 밤새 연습했거든요!"
이번 일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사건만으로는 나 자신을 바꿀 수 없다.
변화는 나를 알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충분한 연습을 통해 행동으로 옮길 때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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