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가슴에 구멍이 생긴다면
홀로둥이로 태어난 고고, 그리고 기적처럼 함께 지내게 된 노노. 고고는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노노는 새가 되었다. 수많은 구멍을 가진 행성 ‘망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그리고 그 구멍으로부터 연결되어 흘러가는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그들의 연결성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자.
이야기 시작에서는 ‘켤레’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쌍둥이 혹은 세 쌍둥이나 네 쌍둥이도 가끔 있었지만, 홀로둥이는 없다고 한다. 그런 마을에서 고고는 홀로둥이로 태어났고, 그 해에 같이 홀로둥이로 태어난 노노와 함께 짝을 이루며 살아가게 되었다. 짝, 그러니까 둘은 켤레가 되었다. 서로를 보살피고 보듬어주며 유일한 가족으로서의 해야 할 몫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고고와 노노가 만난 것도 기적이고 희망이고 다행인 것이다. 그 해에 같은 홀로둥이가 태어나지 않으면 영영 가족을 이룰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홀로 살 수 없음을 이야기 시작부터 말하고 있었다. 난 혼자야, 나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살아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 공존했다. 도움을 받았고 보살핌을 받았으며 사실 죽을 때조차도 홀로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감이 가면서도 안쓰럽고 불안했던 것은 고고가 홀로 마을을 떠나야만 했던 순간이었다. 태어나서 쭉 살았던 곳을 떠나 정말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고고는 마을을 떠난 지 두 시간 뒤에 비로소 따뜻함이란 것을 처음 느끼게 되었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일이 마냥 힘들고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고에게는 알 수 없는 구멍이 생긴다. 구멍으로 인해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도 없다. 심지어 구멍을 통해 기억이 빠져나가기도 한다. 고고는 구멍을 치료하고자 한다. 구멍을 메꾸기 위해서 크레이터를 찾아간다. 크레이터는 구멍을 메우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곳에서 크레이터 비비낙안, 치료사 비비유지를 만나고 그들에게 치료받게 된다.
고고는 그들을 만나 구멍을 메우진 못했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는 했을 거다. 인물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함이 있다. 그 고유함은 모두에게 알려지는 것은 아니다. 고유함 안에는 아픔, 슬픔, 기쁨, 행복 등 다양한 것들이 내재하여 있었다. 결국 스스로 떠나기를 택한 고고.
협곡을 떠난 고고는 소인 금을 만나게 된다. 금은 고고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고고와 금은 서로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구멍으로 기억은 빠져나가고 서서히 많은 것을 잊게 되는 고고. 고고의 감정은 구멍 안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고가 슬프면 금이 알아차리고, 기뻐도 알아차리듯. 결국 금은 고고의 구멍 안에서 나오게 되고, 단 하나의 답은 노노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새가 되어 날아서 떠난 노노. 고고는 마을에 노노의 죽음을 알리고 마을을 떠났다. 사실 노노는 죽은 게 아니라 착실히 새가 되어 갔다. 얇은 다리, 길고 두꺼운 부리, 커다란 날개와 부푼 깃털들, 노노는 노노새가 되었다. 버려진 사람은 새가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노노새. 그리고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노노와의 만남이 적잖이 충격으로 다가온 고고까지.
누가 서로를 먼저 버린 것일까. 고고일까, 노노일까. 다시 만난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야 할지, 반갑다는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보고 싶다는 감정 하나만은 진실이다. 쌍둥이로서 서로를 위하며 함께 지내왔던 세월을 모두 저버릴 순 없을 거다. 구멍이 생긴 고고와 새가 된 노노새. 그리고 노노를 만나도 여전히 구멍이 메워지지는 않는 고고의 구멍까지도 나는 어쩌면 당연한 순리처럼 느껴졌다.
그들에게는 화해도 없었다. 둘은 자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잘못은 상대의 잘못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쌍둥이로서 망울에서 살아나갔으니까. 그러나 둘은 꼭 듣고 싶었던 말을 서로에게 해주며 미소를 지었다. 미안했어, 고고. 미안했어, 노노.
노노새는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날아다닐 거다. 고고는 구멍을 메우기 위해 계속하여 모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망울이란 마을에서 쌍둥이로서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지켰으니, 이제는 스스로가 자신을 지키는 힘이 생기기를 바랐다. 바라고 바랐다.
노노새는 자유자재로 허공을 활보하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듯, 고고는 새로운 모험에서 크레이터를 만나고 소인을 만나고, 또 다른 존재를 만나듯. 그럼에도 여전히 서로를 완전히 그리고 또 완벽히 잊지는 않으며 살아가지 않을까 예측도 해보았다. 완연한 행복이 세상에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행복만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노는 새가 되어 행복할까? 과연 고고는 구멍을 메운다고 해서 행복해질까? 나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겠다. 시련과 고통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니까. 상처는 아물지 않고 흉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순간이 와도 무너지지만은 않기를 소망한다.
노노가 새가 되어 마음 편히 하늘을 날았으면 좋겠다고, 망울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새를 주식으로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멍 안에 물을 채우든, 돌을 채우든, 쓰레기를 채우든, 어떤 식으로든 구멍이 메워지기를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는 꼭 그렇게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느꼈다. 구멍을 통해 기억이 빠져나가고, 그리고 다른 것이 채워질 수도 있으니, 구멍이 구멍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그 또한 괜찮았다.
우리는 모두 제각기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을 겁니다. 메우려 노력도 해보고 온 힘을 다해 애써도 보세요. 구멍 안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넣어도 보시고요. 그러다 문득, 정말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겠지요. 구멍은 구멍으로서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리고 우린 고고에게 노노가 있었듯, 노노에게는 고고가 있었듯, 우리에게도 누군가가 존재할 겁니다.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이겠지요. 그 생각은 그 순간일 뿐일 겁니다. 그 존재가 없으면 살 수 없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또 살아가게 될 겁니다. 구멍과 구멍을 통해 연결되는 삶을 살아보아요. 그러니 여러분, 부디 조급해하지 마세요.
'어쩌면 이렇게 음식을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고고의 얼굴이 검붉어졌다. 존엄하지 않은 생존. 연명에 관해 늘 불에 덴 듯 분노하던 노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대수야?' 고고는 평소처럼 노노의 편에서 함께 화내는 대신 노노에 맞서 화내곤 했다. '네가 내 옆에 좀 더 살아 있을 수 있는데, 망신이나 창피가 지금 대수야?' 그때 노노는 어떤 소리로 울었던가. 고고는 젖은 천을 조용히 다시 동여매 구멍을 가렸다.
p. 48-49
"당신이 비비낙안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서는 비비낙안의 귀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겁니다. 물론 그러려면 비비낙안이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꿇어 자기 귀를 당신 가까이 가져다 대야 할 테고요. 한마디로 비비낙안은 자신이 내킬 때 듣습니다."
p. 54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 어떤 상처도 남의 도움으로만 아물지는 않거든. 모든 상처는 안팎으로 아문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아무는 거야.”
p. 84
“구멍이 있었던 시절이나 없었던 시절은 잘 기억도 안 나.”
고고가 바닷물 위에 누워 풍뎅이를 터트려 먹으며 말했다.
“이대로 전부 잊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p. 121
그 조그만 살덩어리가 빈 배 속에 씨앗처럼 툭 떨어지는 순간 노노는 자신이 이 감각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혹은,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p. 179
“고고, 버려진 사람은 새가 되어야만 해. 다른 둥지까지 날아갈 수 있어야 하니까.”
p. 180
"노노, 미안하다는 건 앞으로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행복해지지 않겠다는 다짐이랬어. 너는 어땠어? 나를 떠나서 미안해? 지금 너는 행복하니?"
"미안했어, 고고."
"미안했어, 노노."
둘은 꼭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은 듯 미소 지었다.
p. 194-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