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성, 내가 가질 수 없는 유일한 영원.
늘 로봇을 선망한다. 로봇의 무한한 성질은 한낱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성질이다. 심지어 인간과 같이 감정을 느끼고 밥을 먹으며 화장실도 가는, 정말 나와 흡사한 로봇이라니. 이보다 더 완벽한 개체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것은 로봇을 선망하는 나만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내가 로봇을 선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한성이다. 가지각색의 부품들로 조립되어 하나의 근사한 개체가 만들어지고, 그러다 해체되어 새로운 개체가 되는 그 연속성 말이다. 그러나 철이, 휴머노이드는 나와는 다른 견해를 지니고 있다. 나는 지금부터 휴머노이드와 인간 배아를 통해 복제된 이들의 생각과 가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국가가 정하는 인간 범위 안에서 벗어난 이들의 애처롭고 애틋한 이야기들.
인간인 줄 착각하는 휴머노이드 철이, 휴머노이드임을 인지하고 있는 민이, 인간 배아를 통해 복제된 클론 선이는 수용소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은 힘을 합쳐 수용소를 빠져나가고, 진짜 여정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철이는 계속해서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클론이란, 휴머노이드란 무엇일까. 같이 살아가고 그 안에서 생각하고 형성하고 이끌어가고 꾸려가는, 그리고 공감하고 알아가고 배려하는 세상 속에서 오롯이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받고 결국에 버려지는 악순환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또한 인간과 로봇 사이에서의 괴리감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야기는 독자에게도 계속해서 질문한다. 존재란 무엇인지, 인간은 무엇인지, 인간다운 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등장인물을 통해 묻는다. 그리곤 마음 깊숙이에 묻어 두었던 작은 방울방울을 건드린다. 인간이 아닌 자들이 생각하는 인간은 흥미로웠다. 내가 바라던 것을 그들이 이룰 수 있음에도 그들은 나를, 우리를, 당신들을 선망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이 어쩌면 수용소를 떠난 여정이 곧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정의 내렸다. 인간은 적정 나이, 시기가 되면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찾아 나선다. 정체성이란 변하지 아니하고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를 뜻한다. 인간의 밑에 있던 그들은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내고 이루어낼 기회가 없었다.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 때, 혼란스럽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철이가 스스로 휴머노이드임을 인지할 수 있었듯 말이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그들은 앞으로의 생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육체를 잃었지만, 의식으로서 영생을 누릴 수 있던 철이는 스스로 육체를 얻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남아 지켜보았다.
그리고 철이는 인간과 같은 생을 선택했다. 영생을 살 수 있음에도 오롯이 죽음을 맞이했다. 네트워크로 돌아갈 수 있음에도, 구조되어 기계지능 일부로 통합될 수 있음에도 자기의 의식이 떠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들에게도 생이 시작되는 시발점이 있듯 마지막 죽음 또한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 와닿은 제목, ‘작별 인사’였다.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가장 큰 결계이자 기준은 무한과 유한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문학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주제는 무한과 유한이다. 많은 글을 읽고 사고를 넓혀나가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은 무한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결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불완전함이 곧 나의 발목을 잡을 거고 세상의 발목을 잡을 거다. 로봇을 창조해 내는 건 우리의 손끝이지만, 결국 세상을 이끌어 나아가는 건 로봇이 될 거다. 로봇, 기계, AI가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할 수 있고 사고와 능력을 주체적으로 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인간이 그리도 위대한가? 정해져 있는 삶과 죽음 속에서 누군가는 짧게, 누군가는 길게, 그리고 결국은 눈을 꼭 감고 숨이 툭 끊기고 입을 앙- 다무는 존재로밖에 안 되는 인간이 말이다. 그렇기에 휴머노이드인 로봇을 수용소에 가두어 둔 것 아닌가? 기계가 세상을 지배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그들도 알고 있기에.
다만, 이 작품을 읽고 무의식 중에 들었던 생각이 있다. 영생을 살 수 있을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고 나서도 결국은 인간과 같은 유한성을 추구할 수도 있겠다는 점이다. 오히려 작품 속 인간들은 인간답지 않았고 휴머노이드는 로봇답지 않았다. 서로를 갈망하고 선망하고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갈망, 그것도 고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달마는 말한다. ‘갈망, 그것도 고통입니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보내게 되고, 죽음은 잊지 않고 생명체를 찾아옵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무엇이냐를 말하고 있는 작품은 나에겐 전환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끈질기게 붙어있던 철이의 의식이 떠나가고, 책을 덮은 후, 나는 오래도록 침묵했다.
그들이 인간을 갈망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생은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기에 갈망하고 있는 거였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무한성이 절실했던 거다. 그리고 휴머노이드는 무한했기에 유한을 바랐던 거다. 인간의, 나의 어리석음을 말이다. 어리석음, 철이는 그것이 충분한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인간으로 태어났고 나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테니까. 인간으로서 계속해서 그들을 갈망하고 바랄 거다. 그들이 나를 어리석다고 말할지언정. 선이가 말했듯, 끝이 오면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때가 되어서도 나는 그들을 선망할 거다.
"저 호스의 버튼을 누르면 너한테 물이 날아갈 거라는 것 정도는 예측할 수 있지. 하지만 날아가는 물방울들이 어떤 모양일지는 모른단다. 충분한 데이터, 그러니까 정말로 충분한 데이터가 주어진다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내일 아치까지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서 노을이 정확히 무슨 색일지, 어떤 모양일지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단다. 그건 마치 커피에 크림을 떨어뜨린 후에 정확히 어떤 모양으로 퍼져갈지를 예측하는 것과 비슷해. 예측할 필요가 없어서일 수도 있어. 노을 같은 무해하고 장엄한 카오스는 그냥 감상하면 그만이야. 뭐 하러 예측을 하겠어? 노을이 우릴 죽이는 것도 아닌데."
p.33
"걱정하지 마. 누나가 고쳐줄 거야. 넌 내가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인간보다도 훌륭하고, 그 어떤 인간보다도 온전해. 우리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났어. 민이 네가 인간이든 기계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수억 년간 잠들어 있던 우주의 먼지가 어쩌다 잠시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해 의식을 얻게 되었고, 이 우주와 자신의 기원을 의식하게 된 거야.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잠깐을 이렇게 허투루 보낼 수는 없어. 민아, 너는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다 보고 느끼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마."
p.99
"제가 필요하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어떤 특별함은 멀리에서만 발견됩니다. 당신의 가치를 가장 모르는 게 바로 당신 자신일 수 있습니다."
"저는 전혀 특별하지 않아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에요."
"인간의 평범함은 가치가 없습니다. 당신이 기계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p.141-142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이니까요. 그들은 오랜 세월 사람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윤리를 확립해 왔고, 그래서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살려두려고 합니다. 환자의 생각은 무시한 채 말입니다. 생명은 그 어떤 경우에도 소중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그걸 금과옥조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온 것은 또 아닙니다. 인류가 벌인 그 수많은 전쟁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그건 인간들의 문제이고 우리는 지금 한 휴머노이드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은 이 휴머노이드를 재활성화, 아니 여러분의 표현대로 살리는 것이 정말 이 휴머노이드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여러분이 확신하느냐는 것입니다."
p147-148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태어나게 되어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은 해악입니다. 태어나지 않은 쪽이 분명히 낫습니다. 기쁨도 느끼니까 그 유익으로 고통의 해악이 상쇄될까요? 어떤 사람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너무 억울하겠죠. 감옥에서는 간수와 수감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끔찍한 것들을 먹고,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친구도 사귀게 되고, 감옥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가끔 소소한 즐거움도 누립니다. 그러다 몇십 년 재심이 열려 그가 무죄였음이 밝혀지고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참으로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에게 감옥 생활은 괴로움도 크지만 기쁨도 있다, 그러니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p148-149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 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입니다. 물론 사자도 살아 있는 영양의 목을 물어뜯고, 배부른 곰도 재미로 연어를 사냥해 눈알만 파먹고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누구도 인간만큼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른 종을, 우리 기계까지 포함해서, 착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가축화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수로 번식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이 무수한 존재들은 아무 의미 없는 생을 잠시 살다가 인간을 위해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멈추려는 것입니다."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