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사고처럼 마주친 우리의 우주들
몸을 떠나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최초로 생각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베란다에 선 채였다. 엄마는 죽은 화분도 살려내는 사람이었고 그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온갖 식물을 위탁해왔다. 맡긴 이도 기른 이도 주인을 잊은 사이 걔들은 우리집 베란다에서 쑥쑥 잘만 컸다. 세탁기에서 빨래 꺼내오란 소리가 미치도록 듣기 싫었다. 세탁기로 가는 길은 고작 다섯걸음이었지만 그 걸음 내내 낑낑대며 꽃게걸음을 걸어야 했기 때문에. 좁고 긴 정글 가득, 이름모를 식물들이 빽빽했고 그걸 헤쳐 걷다보면 매일 발가락을 찧거나 나뭇가지에 발등이 긁혔다. 잠시 잠깐 동안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매일이었다. 창 안쪽의 초록은 지긋지긋했고 그럴 땐 안에 선 채 바깥을 탐했다. 크고 작은 화분을 넘고 넘어 딱 하나 온전히 트여있는 샷시를 드르륵 열면 집 뒷산이 언제고 너른 품을 내놓은 채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옆에 선 식물들을 죄다 꺾어 창밖으로 던지고 싶을 때마다 그렇게 창문을 열었다. 13층 베란다에서 넘실대는 녹음을 보며 음, 저기에 묻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이곳에서 훅 떨어져서,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상처주지 않고, 그냥 저 산 어딘가에 안겨서 사라지고 싶었다. 승화라는 개념을 갓 배운 때였다.
'마음붙일 곳이 없으면 몸을 떠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일기장에 그런 말을 갈긴 뒤 조악한 자물쇠를 걸어놓곤 그마저 들킬까봐 엉덩이 밑에 깔고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그 문장을 갈기갈기 찢어 학교 화장실 변기에 버렸다. 변기물에 잉크가 채 다 번지기도 전에 문장은 물살을 타고 신나게 떠내려갔다. 사라지는 진심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니, 오늘이다.
고민많은 열한 살은 우울한 삼십대가 되었고 별 달라진 것없이 매일 나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슬금슬금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일 때면 바닥을 깨끗이 싹 비워 여행을 다녔다. 책상정리는 못해도 통장 청소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냈다. 그런 식으로, 일기를 갈기던 어린이는 잔고를 긁어내는 어른으로 컸다. 그런다고 탈출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 했고 일시적으로 도파민을 채우는 일에 불과했다. 즉각적인 충전과 순식간의 소진이 이어졌다. 점점 힘을 불린 낙차 덕에 갈수록 땅굴만 파고 들어갔다. 죽지는 않은 채 죽은 듯이 침대에만 있던 겨울 끝자락, 멈추지 않는 숨 앞에서 골똘해질 때쯤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행갈래? 엄마랑 셋이서.
부산의 겨울은 따뜻했다.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지 하는 조소가 소용없도록 바닷바람이 좋았다. 동생이 자주 묵는다는 호텔에 짐을 풀고 한참을 걸었다. 산과 바다가 한 눈에 걸리는 부산은 올 때마다 낯설었고 그래서 좋았다. 대도시 커피는 맛이 남다르다는 영양가없는 소리를 하면서 보다 높은 건물들과 없던 수평선, 얽힌 도로 끝에 눈을 한참 두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했다. 서로를 위로하거나 실은 많이 미워했다고 웃으며 털어놓았다. 수없이 반복된 대화였고 하면서도 지겨웠다. 그것말고 무슨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들러붙은 과거가 지겨운데 떼어낼 방법을 모르는 게 나 혼자는 아니었다. 엄마도 동생도 같은 마음인 것 같아 이상하게 위로받았다. 많이 걷고 떠들었더니 종아리도 아프고 목도 따끔거렸다. 흠.. 침대에 너무 오래 누워있었나봐, 그런 것치고는 걸을만한 것 같고. 엄마와 동생은 내 말에 깔깔 웃었다. 농담인 줄 알길래 그런 채로 두었다.
오랜만에 거하게 회를 먹고 부른 배를 동력삼아 빠른 걸음으로 호텔에 들어섰다. 로비에서 짙은 물냄새가 풍겼다.
“아, 여기 온천 호텔이야.”
그제야 동생이 말했다.
“막 멋진 건 아니고 그냥 좀 괜찮은 목욕탕 느낌?”
멋지지 않은 그냥 목욕탕을 가본 지 오래였다. 돌이켜보니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이후 15년 정도 가 본 기억이 없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등 좀 밀어달라며 신난 얼굴로 목욕도구를 챙겼다. 온 김에 뽕이나 뽑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향했다. 지하 2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물냄새와 훈기가 압도적인 기세로 숨을 메웠다. 순간 멍해진 채 문을 홱 열어젖혀 옅은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간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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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많은 몸. 그러니까…
너무 많은 몸.
어떤 가면도 위장도 없는,
그저 살아있는 형체로서의 몸.
크고, 작고, 봉긋하고, 납작하고, 축 저진, 형체가 불분명한, 눌린 채인, 자국이 난, 건조한,
많은 가슴과 많은 배와 많은 엉덩이.
말라서 비틀어진 나무같았다가, 껍질을 발라둔 닭의 살같았다가, 혹은 화면 속의 것과 꼭 같은,
많은 허벅지와 많은 종아리와 많은 팔.
미끄럽고 묵은 내나는 목욕탕 바닥, 조심히 닿는 수많은 발바닥.
휘적대는 팔 끝에 달린, 자아없는 수많은 손가락.
빠르거나 느리거나 혹은 박자가 다르거나 때로는 없는, 수많은 어떤 것들.
살아있음이 의식없이 한 데 모여 활개치는, 몸의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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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비구름이 떠난 뒤 갑자기 자란 잡초를 본 것처럼 놀란 나는, 수많은 몸을 보며 나도 모르게 옷입은 내 몸을 가렸다. 이 몸들 사이에서 아직 감춰진 나의 몸은 이방의 것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황급히 라커앞으로 가 키를 꽂고 문을 열었다. 천천히 옷을 벗어 라커에 쑤셔넣은 뒤 돌아섰다. 너무 많은 몸 사이로 이제 다 내놓은 내 몸도 걸어들어갔다. 옷을 벗고도 몸을 가렸다. 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달린 거울과 눈이 마주쳤다. 몸. 내 몸이 거기에 있었다. 당황스런 얼굴 아래 기다란 목, 안으로 휜 어깨, 납작한 가슴, 봉긋한 배, 가느다란 다리. 서둘러 샤워를 하고 탕으로 들어가는 동안 내 몸이 왜 이리 당혹스러운지 고민했다. 당혹스러운 내내 앞뒤양옆에서 다 다른 몸이 공기를 가르고 나를 지나쳤다. 천천히 두 팔을 내리고 고개를 바로 세우고 어깨를 폈다. 누군가 뒤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자 찬바람이 오소소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해. 너무 나야. 이건 너무.. 그냥 몸이야. 몸과 공기의 만남이 태어나 처음인 것처럼 새로웠다.
미온탕에 슬그머니 들어가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목욕탕이 너무 낯설어.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왜 이렇게 다들 다른 몸이지. 그러면서 탕에 앉아 엄마의 어깨를 매만졌다. 엄마의 몸도.. 달랐다. 이 몸으로부터 내가 왔다. 어느 날 속을 가르고 자리를 잡았다 배를 가르고 세상에 나왔다. 아주 하나였다 아주 둘이 된 둘이 나란히 앉아 서로를 보았다. 나보다 작아진지 한참인 엄마의 어깨가 한 손에 잡혔다. 엄마는 얼떨떨한 내 얼굴을 보고 활짝 웃으며 가만히 내 어깨에 물을 끼얹어주었다. 물이 몸을 타고 내려가자 온천탕의 맑은 물이 넘실댔고 그 아래, 내 허벅지도 함께 넘실댔다. 무릎에서 허벅지까지 가만히 쓸어만지자 부드러운 온천수도 함께 나를 쓸었다. 허벅지에서 배꼽으로, 다시 가슴으로, 이어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어째서일까. 옷을 벗고 비누칠을 하고 헹궈내는 매일의 샤워 속 내 몸과 이 곳에서의 내 몸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기능적으로 움직여 씻기고 씻겨지던 내 몸이 전생의 것 같았다. 나와 모두 다른 몸들 사이에서 내 몸은 홀로 있을 때와는 다른 것이 되었다. 탕 안팎으로 나드는 수많은 몸들을 나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머리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내 시선은 매 몸들 위로 찰싹 달라붙었다. 그 몸의 시선도 내 위로 빠르게 도착했다.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그 엉덩이에서 이 엉덩이로, 저 다리에서 이 발바닥으로. 아니 그러니까.. 서로가 너무나 살아있었다. 이 박자로 출렁이고 저 박자로 축 처지며 공간을 활개하는 몸들. 너무나 몸인 몸들. 아니 그러니까, 너무나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생생했다. 이 많은 몸들이 너무나 생이고 또 생이었다.
다른 이들에겐 당연한가? 몸이 생생한 것이. 살아있는 이 몸들이. 예상의 세계에서 저멀리 떠난 이 수많은 움직임들이. 벗은 채 움직이는 몸들을 바쁘게 쫓아가던 내 몸이 어느새 따뜻한 온천수에 온도를 맞춰갔다. 슬그머니 느슨해진 목구멍으로 아까 먹은 매운탕 냄새가 트림이 되어 올라왔다. 고개를 돌려 후 숨을 내뱉고 다시 몸들을 마주했다. 눈을 감고, 차가운 수건을 머리에 올리고, 옆 사람과 크게 떠들고, 몰래 엿들으며 슬쩍 웃고, 물 한줌을 어깨에 끼얹고, 조용히 탕을 들고 나는 많은 몸들. 그들과 같은 물에 잠긴 채로 나도 여기 있었다. 불어오르는 손끝으로 모두의 하루가 온천탕에 녹아들었다. 서로의 각질이 부대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 온기를 탐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 섞여 눈을 굴리는 나. 탕에 잠긴 두 엄지발가락을 비비니 나만 아는 때가 밀려나왔다.
모두 벗은 곳에서 내 시선이 점차 무용해졌다. 뻔뻔한 눈들이 서로 교차하는 동안 시선의 존재감은 상쇄되어 이내 흐려졌다. 너 하나 나 하나 주고 받은 시선이 당연하다는 듯 이내 뻔해졌다. 수증기 아래 낭자하던 시선과 목소리가 서로 부딪히더니 급기야 출처가 희미해졌다. 그 공기를 무심히 헤치고 휘젓는 수많은 가슴과 엉덩이와 팔 그리고 모두를 보면서, 지문처럼 각자의 것인 살결과 주름을 목도했다.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무엇 하나 같은 것 없는 이 곳에서 모두는 각자 우주일 수밖에 없었다. 우주들 사이에 또 다른 우주가 있었다. 온 우주가 인간의 몸을 빌어 들키고 있었다. 피부를 벽삼아, 옷가지를 가면삼아 두른 채 웃고 울거나 걷고 뛰던 모든 이들이, 그래, 살아있었구나. 당신은 살아있는 우주였구나. 우리의 여백을 가득 메운 이 수많은 힐난과 사랑과 질투와 슬픔 혹은 이 밖의 모든 것들조차 그래 우주였구나. 거대한, 수많은 우주들이 겨우 옷가지따위로 가려졌던 거구나. 감춘 것들 아래에서 당신도 나도 그러니 우리도-너무나 살아있구나. 어떤 몸에 어떤 삶이 남긴 엉치뼈 자국을, 휜 어깨를, 굽은 목을, 처진 가슴을, 봉긋한 엉덩이를, 굳은 살을, 없는 엄지를 보며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삶 뿐이었다. 왜 여태 그 사실이 나를 강타하지 못했을까. 온 몸 구석구석 매 켜마다 잦아든 시간과 이야기가 눈 앞에 즐비하게 널려 소리없이 시끄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탕 속에 담긴 손을 꺼내 목에 가만히 얹었다.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쥐었다 놓았다. 작은 가슴 두 개 위 젖꼭지가 나란했다. 누군가 움직일 때마다 물이 출렁했고 내 젖꼭지는 공기와 물의 경계를 오갔다. 몸의 움직임이 물로 이어지고 다시 나의 몸에 닿았다. 배와 움푹한 배꼽, 온천수에 풀어진 허벅지를 매만졌다. 같은 척하고 모인, 어처구니없이 다른 몸들 사이를 비집고 앉아 조용히 나의 구석구석을 매만졌다. 나의 몸. 너무나 낯선 나의 몸. 여러 몸 사이에서 그제야 내 것임이 분명해진 나의 몸. 그러는 동안 어렵게 내 몸에 다정해졌다. 이렇게 살아있었구나. 다름없이. 여지없이. 때로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음을 느낄 때면 난 산송장처럼 눕기 싫어’라던 어느 래퍼의 노래가 갑자기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파하하 하고 웃었다. 하필 이런 순간에 그 노래가. 옆에 앉은 할머니가 탕에 들어오이끼네 시언하고 조은가배 하고 함께 웃어주었다. 다 다른 주름을 한 사람들이 같은 물에 몸을 담근 채 저마다의 박자로 실없이 웃었다. 사는 이도 살아내는 이도 여기선 모두 살아있었다. 옷 뒤로 숨겨뒀던 몸을 내놓고 때를 불려 벗기려다, 그게 다 삶의 편에 있는 일이었다는 걸 알아채버렸다. 떠밀려 살아온 모든 날도 어쨌든 살아버린 일이었다. 눅눅하고 습한 삶의 냄새가 몸의 모든 구멍으로 들어차고 있었다.
아, 살아있다. 당신들이. 그리고 그 틈에서 나도. 깨닫게 되는 날까지 살아와버렸다. 여태 몸을 떠나지 못했고 어쩌면 더 먼 일이 될 것이다. 이렇게씩이나 다른 각자가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미워하고 부딪히고 때로 사랑하는구나. 이 성가신 생이 무수히 널려있는 곳이 세상이구나. 여기까지 밀리듯 살아온 데에는 그러니, 어쩌면 이유가 있겠구나. 수많은 여자들의 몸이 살아 움직이는 곳에서 목도하고서야 깨닫는 미련함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왔다. 베란다 화분을 내던지고 싶을 때 넘실대는 뒷산을 보던 열한 살의 나는 그대로다. 다만 죽고 싶은 마음도 살아있기에 드는 것이라고, 이렇게 낯선 채로 사는 것이 삶이라면 오늘 하루만큼은 더 해보겠다고, 오만한 자기 위로가 들이닥친 겨울날이 있었다. 온 몸을 드러낸 여자들 사이에서 나도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탕에서 나와 이태리 타올로 팔꿈치를 문지르니 젠장, 그곳에야말로 내 생의 흔적이 자욱했다. 선명히 눈에 보이는 삶의 흔적. 연민같은 고독과 엉킨 시간이 때와 함께 들러붙은 채였다. 그 위로 미지근한 생을 담뿍 끼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