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서하 May 11. 2022

나 그리고 D


    수년 간 갖은 변명과 웃음으로 요리조리 피해왔지만 아아,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나는 소비를 좋아한다. 소유가 아니라 소비의 감각을 좋아한다. 비슷한 취향의 비슷한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쌓여있다는 걸 깨닫는 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지만, 카드를 긁는 대가로 묵직한 쇼핑백을 건네받는 일이라던가 자고 일어나니 현관 앞에 배달되어버린(?) 물건을 집안으로 들이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또 뭘 샀냐는 질문에는 뻔뻔하게 정말 필요해서 산 거라고 대답한다. 결제할 당시에는 진심으로 절박했으니까! 물병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건 차 거름망이 없어서 작두콩차를 우려먹기엔 불편했단 말이지. 그러니까 거름망이 딸린 ‘티 보틀’을 사는 건 진짜 꼭 필요해서 산 거거든! 하고 대차게 대답하는 식이다. 그런데 뻔뻔한 것치고는 솔직한 편이어서 애매한 태도로 곧장 슬쩍 인정해버리고 만다. 알아, 나도 비슷한 거 이미 있는 거. 아, 는, 데! 근데 다 쓸모가 있어!-하고. 자존심이 약간 상하지만 정말 약간이어서 금세 잊는다. (그게 문제다.)


    제일 포기가 더딘 건 옷이다. 하얀 반팔 티셔츠만 대여섯장이 있는 것 같다. 추측인 이유는 정확히 세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간 한두장은 아닌 게 분명하다. 왜 안 세어보았냐고? 과거의 내가 저질러놓은 미련을 구태여 확인하고 싶지 않은 회피의 결과라고나 할까… 길이가 짧은 것, 적당한 것, 길어서 레이어드하기 편한 것, 소재가 탄탄한 것, 후들후들해서 목이 늘어나지만 나름대로 멋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가슴팍에 레터링이 있는 것, 무지인 것 등등. 대충 기억나는 것만 벌써 일곱장이다. 티셔츠만 예로 들었는데 이 모양이다. 그런데 티셔츠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 즐겨입고 좋아하는 건 바지와 셔츠다. 계절별로 소재별로 색깔별로 핏별로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일곱장보다는 더 많을 것 같긴 하다.


    자주 입지 않는 옷은 플리마켓에 내놔야지-하고 구석에 모아 두었다가도 막상 정말 플리마켓이 열리면 슬금슬금 한두장씩 다시 옷장으로 돌려보낸다. 그 덕에 옷장은 늘 포화상태고,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놀랍게도 나름대로 비우고 버려서 그나마 비슷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누가 나몰래 내 옷장에 화수분이라도 심어놨나요? 네, 누구겠어요, 그건 바로 나지 뭐… 과거의 나는 저지르고 오늘의 나는 미련하고 미래의 나는 후회할 것이다. 그리고 그 셋은 놀랍게도 저글링처럼 돌고 돌며 상태를 바톤터치할 가능성이 높다. 아아, 골치아파.


    나를 구성하거나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이런 식으로 내 곁에 왔다. 뭐든 여럿이고 많아서 복잡한데 다 필요하다. 그건 티셔츠였다가 바지였다가 모자였다가 컵이었다가 의자이기도 하다. 무엇 하나 놓을 수 없는 욕심의 굴레. 이런 내가 정말 싫지만, 제정신인 나는 대체로 순간의 불편에 지고 만다. 이미 가진 것들을 잘 관리하지도 못하지만 또 무언가 필요해진(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D를 등장시켜 본다. D는 나와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다. D는 내 동거인인데, 그가 가진 옷과 속옷을 모두 모아도 커다란 캐리어 하나 정도를 겨우 채울 것이다. 채우는 것이 ‘겨우’에 그친다는 소리다. 캐리어를 꺼내 직접 넣어본 적은 없다. 공간이 남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내 자괴감이 하늘을 찌를 것이기 때문에. 그는 놀랍게도, 정말로 필요한 것만 소비한다. 충동구매라고 해봐야 제로콜라 500ml 1+1 상품을 사서 냉장고에 늘 여분의 한 병을 구비해두는 것 정도다. 여기에도 나름의 계산이 있으니 충동구매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아무튼 그는 기모 바지 하나와 내복과 니트 하나, 외투 하나면 겨울을 나는 데 문제가 없는 사람이다. 여름은 반바지 하나에 티셔츠 두세벌이면 된다. 셔츠가 몇 벌 있긴 한데 그 중 과반수는 체형의 변화로 더이상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것이어서 사실상 내 것이나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면 내 옷장 일부를 그에게 하청 준 셈이다. 가진 가방은 딱 두 개, 백팩 하나 메신저백 하나. 그나마도 백팩은 끈이 거의 다 닳은 10년 넘게 멘 것이고 메신저백은 내가 맘대로 선물해버린 것이다. 분량의 균형을 위해 더 많은 예시를 들고 싶지만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가 가진 물건 중 더 이상 설명할 만한 게… 없다. 소유한 것이 적으니 관리가 용이하고, 그러다보니 필요한 것이 점점 더 적어진다는 사람이다. 내겐 그 말이, 있지도 않고 닿을 수도 없는 파라다이스에 땅투기를 하자는 말처럼 들리고… 아아, 들리나요… 아니요 안 들려요… 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성실하다. 나는 채우고 들이는 일에 쭉 성실해왔고, 그는 비우고 내보내는 방식으로 늘 성실했다. 내가 갖은 조미료와 식재료를 있는 대로 사들이고 휘뚜루마뚜루 음식을 해서 내놓으면 D는 그걸 완식한 뒤 나와 식재료와 조리도구가 만들어낸 반지옥의 폐허를 말끔히 치운다. 그러면 나는 그 과정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수세미를 종류별로 사놓는다. 뿌듯해하는 나를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D의 얼굴이 익숙하다. 같이 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균형이 맞춰지는 거라면? 극과 극은 통하는 게 이런 거라면? 이게 우리가 같이 사는 이유 중 하나라면? 그러니까 내가 이러는 게 그리 유별난 건 아니라면? 이 생각을 들은 D는 말했다. 그것 참 간편하고 게으른 합리화네 이 사람아.


    이렇듯 그의 성실함은 나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항상성을 그리는데, 그걸 보고 있자면 사실 좀… 약이 오른다. 대체로 그가 내게 하는 잔소리는, 잔소리라는 이름이 미천해보일만큼 꼭 필요한 소리이고 맞는 말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먹었으면 치워야지? 썼으면 제자리에 두는 게 좋지 않을까? 바디샤워가 왜 세 개씩이나 필요해? 이 많은 화장품을 다 써? 머리끈이 색깔별로 있어야 해? 언뜻 보면 물음표 살인마같지만 그는 정말 친절하고 다정하고 나를 진심으로 염려한다. 그렇다. 다정하기 때문에 더더욱 맞는 말이 되어버린다. 맞지만 분해. 분하지만 맞아. 쒸익쒸익. 내가 할 수 있는 대꾸라곤 알겠어. 미안해. 필요해! 다 써!!!! 뿐이고 그닥 어른스러워 보이지 않는 대답이라 그도 나도 둘 다 만족할 수 없다. 쒸익쒸익.







    이토록 다른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아주 결정적인 면에서 꼭 닮았기 때문이다. D와 나는 예민하다. 정도를 말하자면… 환장할 정도로. 지나치게 예민해서 어쩔 수 없이 눈치가 빠르다. 상대뿐만 아니라 본인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미래까지 짐작해서 이런 저런 의도까지 계산한 뒤 모든 상황에 대비하려고 든다. 잘 풀리면 지나친 다정, 꼬이면 지나친 걱정이 된다. 그리고 그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자기 객관화가 되면 지나친 상황에서 금세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환장의 규모는 더 커진다. 대비를 대비하고 싶어지는 게 진짜 예민함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같은 예민함을 가지고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삶을 꾸려왔다는 점이다.


    나는 예민한 나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일상의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가급적 최소의 최소이길 바란다. 그래서 컵 하나를 사도 아주 고민이 많다. 이 컵은 믹스커피 마실 때 쓰기 좋고, 저 컵은 물 마실 때 편하고, 요 컵은 드립커피 마실 때 쓰고… 제라늄 바디워시는 아침 샤워 때 쓰고 장미 스크럽 바디워시는 밤 샤워 때 쓰는 게 좋겠고… 하는 식이다. 가장 이상적인 모양새와 쓰임새를 구현해서 뭐든 적절과 완벽 사이의 편안함을 취하려고 한다. D의 경우는 좀 다르다. D는 필요 이상의 자원을 쓰지 않는 자기 자신을 구현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 다소 혹은 매우 불편하더라도 잠깐 참아 넘기면서, 지구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수행하는 스스로를 인식하고 거기에서 오는 편안함을 만끽한다. 또, 여백의 확보를 통해 시야의 안정감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예민함을 낮춘다.


    각자의 편안함은 서로를 만나면서 보완과 상쇄를 거듭하고 있다. 나는 ‘견딜 수 있는 불편함’의 레벨을 점차 낮추고 있고 D는 무작정 견디는 동안 느끼는 불편이 다른 측면의 예민함을 키운다는 것을 인지한다. 나는 믹스커피 잔과 물잔 정도는 용도를 공유하고 D는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를 통해 꼭 필요한 것을 찾아 구매한다. 나는 약간의 불편을 감내하면서 그게 알고 보면 별 거 아니라는 걸 매일 실감하고, 그간 늘 마음 한 켠 가지고 있던 환경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어설프게나마 행동한다. D는 어떤 옷이나 신발은 사회 생활에 있어 최소한의 구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동시에 함께 사는 이의 불편이 자신의 불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예민함이 만들어낸 다른 행동양식이 한 집안에서 쉴 새없이 교차한다. 우리는 서로의 것을 곁눈질하고 듣고 배우며 적절히 섞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너나 나나 예민해서 고생이 많지. 서로를 보며 약간의 애처로움과 거대한 동지애를 느낀다. 그러다보면 아주 다른 채로 사는 것도 아주 나쁘지 않구나, 서로 배울 점이 있으니 오히려 좋아,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가끔 그가 너무 빡빡하다 싶고 그는 내가 참 정신없다 싶지만, 다행히 우리는 예민하다. 함께 예민하다. 그러니 이해할 수 있고 그러니 괜찮다. 정중앙은 아니더라도 서로의 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채 팽팽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 물론, 거름망 있는 티 보틀은 여전히 양보 못 하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