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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았던 기록 #1

by 서희수

저번 주에는 할 일이 많다는 중압감에 눌려 갑갑했는데, 이번 주는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가슴이 벅차오르는 한 주였다. 지금은 저번에 출시했던 게임의 추가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후속작에 대한 기획을 하고 있는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기획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이런 게 있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저런 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의 조각들을 모아 이어 붙이고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점점 더 구체화되는데, 초기의 두리뭉실했던 아이디어가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에는 신나고 감격스러운 순간이 많다. 아이를 키우면 이런 기분일까.


새로운 형태의 게임/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방향으로 결정하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느낌은 고등학생 때 소설을 쓸 때,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첫 창업을 했을 때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아 그렇지, 살아 있다는 느낌은 이런 거지’ 하면서. 그러한 감정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웬만해서는 지치지도 않는다. 그동안 난 이런 감정을 그리워했다.


b2b SaaS를 만들자고 데려와 놓고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해서 코파운더들이 나간 지 2주 정도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팀원들이 나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힘들겠다고 위로를 하는데, 난 솔직히 신나는 감정이 훨씬 앞선다. 물론 1년동안 합을 맞춘 팀원들이 나간다는 것은 아쉽긴 하지만, 이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원없이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 갑자기 내가 하고 싶은거 하겠다고 방향을 바꾼 게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일부 있긴 한데, 앞으로 할 것들을 상상하면 그런 건 어느새 저 멀리 날아가 있고 신나는 감정만 남는다. 팀원들이 들으면 섭섭해하려나.


그동안 “나 b2b SaaS로 돈도 벌어봤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요” 하면서 사람들 모으고 투자받고 했던 것도 생각해 보면, 스스로 계속 속여왔던 것 같다. 난 b2b 사업 같은 거 좋아할 리가 없다. 돈을 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걸 만드는 거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고객들 요구사항 수집하면서 어떻게 하면 최적의 효율로 고객을 만족시키고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일은 아니다.


초등학생 때 용돈 받으면 그걸로 매일 만화방에 출석 도장 찍고, 남들 축구하면서 놀 때 하교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 도라에몽 보고, 항상 공상에 빠져있는 것을 즐기던 나는, 영락없이 지금도 그 모습이다. 어릴 때 좋아했던 월레스와 그로밋이 16년 만에 넷플릭스로 돌아온 것을 보고 한껏 설렘을 담아 재생 버튼을 누르고는, 아직도 어릴 때처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나는, 50살쯤 돼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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