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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업 Jul 24. 2024

4kg대 아기를 병원도착 1시간 20분 만에 출산했어요

초산모 출산이야기


"카톡" "카톡" "카톡"

출산일이 가까워오면서 전화와 카톡이 빗발친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의 출산을 궁금해한다.


"아직 출산 안 했어.... 출산하고 나면 연락 줄게!"

초조한 나는 언제 진통이 올지 불안한 마음을 부여잡고

연락 오는 지인들에게 답을 한다.


'고통이 어느 정도일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통증을 겪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출산일이 한참 남았을 때부터 가진통이 심했었다.

 계속되는 자궁 수축의 느낌 때문에,

 진진통은 어느 정도라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계속 가진통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출산일이 다가왔을 때는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출산은 개인차가 심해서, 아무리 엄마와 딸이라고 해도

진행과정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진통 시간이나 분만 시간 또한 그렇죠."


내 출산을 앞두고 엄마 출산 시간을 의사 선생님께 여쭤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는 초산 2시간 30분.

경산 30분. 기록의 소유자.


나도 저 시간에 끝낼 수만 있다면...

불안함이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숙연해졌다.

그렇게 나는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출산의 신호를 기다리게 되었다.




출산만을 기다리며 짐볼 운동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산부인과에서 받은 예정일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출산 관련 유튜브를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출산할 때 당이 떨어지면 안 되니

초콜릿을 챙겨가라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나의 출산 선배는 33시간 진통하다가 자궁문 10센티가 열렸는데

줄 힘이 없어서 제왕절개를 한 케이스도 있었다.

"초콜릿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연분만 성공해야지!"

굳건한 의지가 생겼다.


더욱이 평소에 '당'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이기에,

저녁을 먹고 초콜릿을 사러 동네 슈퍼에 나갔다.


저녁 메뉴는 출산하면 못 먹는다고 하는 매운 음식!

해물찜을 선택했다.

그것이 나의 최후의 만찬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초콜릿을 사고 산책을 하는데,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늘 가진통이 있어왔던 나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남편과 카페에 가서 달달한 케이크를 또 샀다.

날씨가 좋아서 산책을 이어가는데, 자궁수축이 계속 있었다.

가진통처럼 수축하는 것 외에는 출산 전조증상으로 이슬이 비쳤다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


진통 체크 앱을 켰다.

내가 사용한 진통 체크 어플은 진통측정기!

직관적으로 눈에 잘 띄어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놓치지 않고 체크할 수 있었다.

밤 10시 30분이 넘어서 산책을 하며 체크를 하는데,

진통 주기가 10분이었다.

입원 준비를 하란다.


"장난하나... 가진통이랑 똑같은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병원에 전화도 안 했다.

이 정도 진통으로 입원을 하면 애 낳는 거 껌이겠네 싶었다.


그런데 계속 주기적으로 잡히는 출산 신호에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출산 선배들한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1번 타깃: 엄마

자려고 준비하던 엄마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얘기했다.

"너 나한테 웃으면서 전화할 힘 있으면 진진통 아니야~"

"진진통 오면 말이 안 나올걸?"


후... 그렇구나.

진진통은 이보다 더 세겠지.

그렇고 말고.


그래도 마음은 심란하기에 다른 타깃을 선정했다.

2번 타깃: 가장 최근에 출산한 선배

"내 느낌으론 내일 새벽이나 아침. 어쨌든 내일 출산할 것 같은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출산이라니.

어떤 이야기가 맞을지는 몰라도, 예정일이 임박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다.


남편을 불렀다.

"우리 케이크에 차 마시자!"

(이 와중에 포기할 수 없는 당 채우기)

(진통하며 당 채우기가 시작되었당!)

그렇게 진통과 함께 디저트 타임이 시작됐다.


혹시 모를 분만 상황에 대비해서 남편에게 분만실에서 지켜야 할 행동 강령을 설파했다.

왜냐하면 나의 등본메이트(남편)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 반복만이 살 길이기에.


"알겠나?"

설명을 마친 내가 묻는다.


그리고 남편이 믿음직스럽게 대답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계속 웃으면서 얘기를 하다, 진통이 오면 멈췄다가, 다시 웃고를 반복하자

진진통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진진통이 뭔지 모르기에 일단은 내일 출근할 남편을 먼저 재웠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혹시나 오늘 새벽에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혼자 거실에 남은 나는 출산 관련해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다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통증이 점점 세지는 것 같았다.


다시 진통 어플을 켰다.

여전히 진통 주기 7~10분.


"뭐지?"

혼자 웃긴 생각을 하고 웃어본다.

"웃을 수 있네.... 진진통이 아닌가?"


그러다 새벽 1시가 넘었다.

불안함에 소파에서 새우잠을 청했다.

잠을 잤다가 깨다가 반복을 하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해물찜이 잘못된 건지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거리며 속을 비워내기를 몇 번 반복했다.

변기에 앉아있는데 이러다 변기에 애 낳을 것 같다는 통증이 시작됐다.

다급하게 분만실에 전화를 걸었다.

시계는 새벽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저.... 배가 너무 아파요...."

"진통 어플로는 10분 근처인데, 5분도 찍히는 것 같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ㅠㅠ"


분만실 간호사가 평온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혹시 초산모세요?"


초산모라는 나의 말에 그녀가 답한다.

"아~ 그럼 집에서 버틸 만큼 버티다 오세요.

초산모는 시간 오래 걸리거든요.

진통이 10분도 찍힐 정도면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요.

서너 시간 지켜보다가 진통시간이 5분 정도 됐을 때 천천히 준비하고 오세요."


야속한 전화를 내려놨다.

근데 정말 버티려고 악을 썼지만,

그 통화를 마치고 20분을 변기 위에서 진통을 하면서 머리털을 다 뽑고 싶었다.

이 상태로 3시간? 4시간?

상상이 안 됐다.


남편을 깨웠다.

자다 일어난 그는 저승사자라도 본듯한 표정을 하고 출산이냐며 소스라치게 놀라서 일어났다.


바로 현관문 앞에 챙겨둔 출산 가방을 끌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3시 30분이 되었다.

기어가듯 병원 분만실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나와서 내진을 해보겠단다.

"자궁문 7센티 열렸어요. 미안한데 너무 늦게 와서 무통주사 못 놔줘요."


심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서너 시간 버티다 오라고 한건 병원이었는데.

무통주사를 못 맞는다니.


당황한 내가 다시 물었다.

"무통주사 못 맞아요?"

"그럼 이대로 버티다 출산해요?"


몇 번을 되물었지만 대답은 동일했다.

남편은 입원실 처리와 여러 가지 서류 처리 때문에 나 홀로 조선시대급 진통을 견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분만실로 옮겨졌다.


나에게 간호사가 한마디 덧붙인다.

"제모도 관장도 못합니다.

똥이 나오면 그냥 싸세요.

우리가 치울게요."


여기 무슨 체험 삶의 현장인가?

어이가 없는데 웃을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파서.


출산 3대 굴욕내진, 제모, 관장인데,

결론적으로는 난 내진 1번 하고 분만실로 옮겨진 게 전부였다.

심지어 첫 내진이 엄청 아프다는데, 난 이미 진통이 너무 세서 내진을 하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좋은 거라 해야 하나?)


4시 10분이 되어서야 남편은 분만실로 합류했다.

미리 외워간 호흡법을 남편과 같이 하면서

빨리 나와라 나와라 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가져간 초콜릿 생각도 안 났다.


엄마는 하늘이 노래졌다고 표현했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간호사들이 대화했던 내용까지 다 기억날정도로 내 정신은 멀쩡했다.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간호사가 말했다.

"너무 아파하셔서 양수 터트려 드릴게요."


양수가 터지고 나니 진통은 더 세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수많은 출산 후기에서 봤다.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면 출산임박인 거라고.


"아기 머리 많이 내려왔네요.

밀어내기 잘하고 아기 만납시다!"

남자 의사가 분만할 때 오는 거 싫다고 남편한테 말했는데,

당직의사는 남자였다.

그런데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냥 빨리 나왔으면 하는 생각뿐.


그렇게 힘주기가 시작되었다.

힘주기를 10번 정도 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이 분만실 들어온 지 40분 만의 일이었다.

"4.15kg! 아주 묵직한 아기네요! 축하드려요!"


47킬로였던 내가 4킬로대의 아기를 품느라

70킬로 몸무게를 찍었구나....

그랬구나아....


아기가 나오기까지 폭풍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막상 출산하고 나니 모든 게 평온해졌다.


그런데 그 평온함이 무색하게 의사가 다시 들어와 한마디 한다.

"출혈량이 많아서 1시간 정도 상태 지켜보다가 입원실로 올라갈게요."


정말 폭풍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것 같아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때, 남편의 전화가 울린다.

시어머니다.

분명 축하의 말을 전하셨는데,

통화를 마치고 심한 말이 나올 뻔했다.


남편 전화가 또 울린다.

이번엔 시이모다.

또 축하의 메시지를 들려주신다.


분만실에서 나는 그렇게 시댁 전화를 두 통이나 받았다.

(아이고 두통이야....)


"아.... 엄마 보고 싶다."

그렇게 나의 출산 스토리는 끝이 났다.


출산으로 인한 또 다른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은 깨닫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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