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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믿음의 인내

# 믿음의 인내는 결국 주님을 아는 것에서 이룰 수 있다.

by 글탐가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계 3:10)
주님의 손에 당신을 맡기십시오. 지금 인내해야 하는 상황입니까? 믿음의 인내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믿음은 연약한 동정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은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이라는 사실 위에 힘차고 담대하게 서 있는 확신입니다. 비록 당신이 지금 그분을 볼 수 없고 그분이 무엇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도 당신은 주님을 압니다. 믿음의 파선은,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이라는 영원한 진리를 지적으로 붙들지 못할 때 찾아옵니다. 믿음은 당신의 삶의 최상의 노력으로서 하나님만 철저하게 신뢰하는 가운데 당신 자신을 과감히 던지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느끼고 알아지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믿음 싸움'이라는 것이다.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

불안한가?

염려 근심 걱정이 있는가?

충성할 수 있는가?

순종할 수 있는가?


그 외 수많은 질문들이 결국 깊이 파고 들어가 답을 찾아가다 보면 믿음 문제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것은 생명 전쟁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죽는 것이다.

이때, 살고 죽고는 단순히 육체의 죽음이 아니다.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의 문제다.


놀랍게도 성경은 영생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왜 아는 것이라 했는가?

알면 믿어진다.

알면 친밀해지고 신뢰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말미암는다고,

알면 믿어지지 않을 수 없다.


영원한 생명은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했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원천이자, 하나님께서 나신분, 즉 창조의 시작이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생명 그 차제, 그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명 자체인데?!


믿음에는 반드시 인내가 따라온다.

인내는 그분을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

그분은 변궤치않는 진리로, 믿음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그분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의 문제가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선택의 기준이 변화무쌍하다면 우리는 혼란을 겪을 것이다.

선택의 기준은 변치 않아야 한다.

그래서 진리가 기준이 돼야 한다.


진리, 예수 그리스도. 말씀.

그 기준이 우리 삶을 결정하고 우리 삶을 주장하게 해야 한다.


믿는다는 것,

그 믿음을 인내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그분을 얼마만큼 아느냐의 문제에 달려있다.

오늘도 전심을 다해 그분을 알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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