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허상을 제거하는 훈련

# 나는 사랑스러운 존재다.

by 글탐가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요 2:24~25)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한 내 생각에 따라 그들을 대할 뿐입니다. 내 생각에 따라 모든 것이 기쁘거나 좋을 수 있고 형편없거나 못날 수 있습니다.

인간 심층의 깊은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인간관계에 관해 그토록 분명하게 엄격하신 이유는 주님을 향한 충성에 서 있지 못한 모든 인간관계는 결국 비극으로 끝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의심하시도 않으셨고 결코 악감정으로 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주의 은혜, 사람의 한계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완벽하셔서 주님은 누구에게도 절망을 느끼신 적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신뢰가 사람에게 있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주님께서 인간을 신뢰하지 않으신다는 말이 자칫 서운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 진의를 보면

너무 은혜스럽고 감격스러운 말이다. 신뢰는 상대방을 믿고 기대한다는 의미인데, 최소한 상대방이 나에게 악의를 베풀지 않고, 나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의 기대와 상대방의 기대의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는 데 있다. 사람은 너무 변화무쌍한 존재여서, 실제로 사람에게 기준을 잡는다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그 기준은 생각, 혹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고, 그 생각과 마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주님께서 인간을 신뢰하지 않으신다는 말이 왜 은혜스럽고 감격스러운 말일까?

주님(나)의 기준에서 상대(인간) 방을 신뢰한다면 놀랍게 인간은 완벽해야 한다. 실수도 없어야 하고, 성실해야 하며, 모든 일은 전능한 힘으로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심지어 사랑도 백 프로, 공의도 백 프로 여야 한다.

주님의 기준으로 우리를 신뢰한다는 말은 사실, 엄청나게 두려운 말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고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

더불어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오랜 신앙생활로 성숙한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권사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잘못을 저지르면 하늘을 보고 웃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하죠! 아버지 아시죠? 제가 이래요. 어쩌겠어요? 저는 이 정도밖에 안되는데... 그러니까, 나머진 아버지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신앙의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라, 엄청은 의협심(나의 의)에 가득했던 나는 그 말이 엄청 나약하게 들려서

싫었다. '이거밖에 안 되는 거 말고 완벽하게 해서, 주님의 기쁨이 돼야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면서.


이제 내 나이가 그때 권사님보다 조금 못 미치지만 비슷해져 가는 요즈음.

나는 이제야 겨우 그 고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주님 아시죠? 이것이 저의 한계예요. 저는 연약해서 자꾸만 엎어지네요."

주님은 우리를 신뢰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정죄하시지 않는다.

그냥,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한 존재로 인정하시고, 존재 자체로 사랑하신다.

그분이 사랑하시는 그 기준이 완전한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가치가 된다. 이것은 불변의 법칙! 즉,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는 이유가 된다.


나의 가치 기준은 주님께로부터 온다.

그래서 나는 사랑받기 합당하며, 사랑스러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