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고난 속에서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기를 원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구름을 통해 우리가 배웠던 것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구름을 통한 하나님의 목적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정확하게 어린 아이처럼 될 때까지 우리의 믿음을 단순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직 중심은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요, 다른 사람들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림자가 될 때까지는 구름과 어둠은 언제나 나에게 임할 것이며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과연 나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점점 더 단순해지고 있습니까?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구원의 서정중에 부르심이 있다.
부르심에는 외적 부르심과 내적 부르심이 있는데
우리의 마음에 구멍이 하나 뚫린 것처럼 외롭고 허전할 때, 주님께서 나를 부르고 계시는 내적 부르심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 내적 부르심이 있을 때, 얼른 알아듣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면 삶은 망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주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완고한 인간인지라, 내적 부르심으로 부를 때 깨닫고 주님 앞으로 나오는 인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내적 부르심에도 우리가 반응하지 않고 주님을 찾지 않게 되면, 그때 주님의 외적 부르심이 있다.
외적 부름심에는 고난과 환난이 뒤따른다. 그 고난과 환난 가운데에서라도 주님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지만 자칫 삶이 파괴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내적 부르심에 순응하는 것이 좋다.
'주님께서는 모든 구름(환난과 고난)을 통해 우리가 배웠던 것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 버리기의 주된 것은 바로 인본주의 사상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 사상으로 자연스럽게 배우며 살아간다.
그래서 인본주의 사상을 뿌리 뽑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우리는 인본주의 사상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하며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구름을 통해 우리가 배웠던 것을 하나둘 버리게 만드신다.
그 지난한 여정이 바로 우리의 성화의 과정이다.
모든 사람은 각기 연약한 부분이 존재한다.
훗날, 연약함이 하나님 앞에서 다스려질 때, 우리에게 최고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렇다면 인본주의 사상을 어떻게 하면 버릴 수 있을까?
그것이 단지 환난과 고난이라는 구름을 만나면 버려질까?
사실, 인본주의 사상의 뿌리가 뽑아지는 방법은 딱 하나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이 우리 안에 들어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본주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깨어진다.
깨어짐으로 우리는 변화된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구름을 통해 하나님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이 버려지기를 기도하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