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가시니라 (마 11:1)
당신이 어디서 논쟁하게 되는지 주시하십시오. 특히 나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십시오.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말씀을 알지만 내 책임이 남아 있어서..." 이 말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믿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주께서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하신 그곳에서 일하십니다. "...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 24:49).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분이 일하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러나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영적으로 화난 상태에서 기다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릴 만큼 영적 긴장감에서 자유하고 있습니까? 기다림이란 가만히 손을 접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의 상태에서 우리는 보통 때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주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헷갈릴 때가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할지,
아니면 잠잠히 기다리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잠잠히 기다리고 있자니 답답하고,
하나님이 하실 때가 언제인지 모르니 기다림이 힘들고,
뭐 이런 때가 있다.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지혜다.
훈련받을 때인가?
아니면 준비해야 할 때인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인가?
이것이 뒤섞여 혼란을 줄 때, 그때가 바로 헷갈릴 때다.
주님이 인도하실 때는 기다린다며 아무것도 안 하고 기도만 했던 때도 있었다.
잠잠히 가만히 있으라 해서 삶의 모든 영역을 다 내려놓아야 하나 헷갈릴 때도 있었다.
오늘 묵상글에서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하신 그곳에서 일하신다'
그분이 일하실 때까지 기다리면서,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야 하는가?
감사하게도 아주 명쾌해진 것은 주님께서 일하실 때를 기다리면서 나는 나의 할 일을 묵묵히
하며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는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 오듯, 주님께서도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 역사하신다.
그 역사하심은 바로 인도하심을 통해 나타나신다.
오늘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참, 급한 성정으로 기다리지 못하는 나다.
지금도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기다리라고 하신 그곳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오는 첫 번째 난관이 바로 헷갈림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버킹검이듯, 이렇게 헷갈릴 때 결론은 기도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이 명확하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것은 겨우 1단계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을 통해 얻은 하나님을 뜻을 이제 내가 할 바를 열심히 하며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준비한 것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하나님께서 그 다음을
어떻게 인도하실 지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기다림이다.
난, 이 글을 쓰면서도 참 자각하게 된다.
'난, 기다림에 정말 취약한 사람이구나! 어쩌면... 하나님의 의도는 나의 이 취약한 부분을 고쳐나가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