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강요하지 않으시는 주님 # 주먹쥔 손을 펴라!
아래로 "네가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눅 18:22) 주님께서는 주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속에 한 번이라도 들려지면 그 말씀은 조만간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중 몇몇은 주의 말씀이 우리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자 청년의 경우처럼 어떤 특별한 지점에서 주님께 헌신하기로 다짐할 때 주께서 진정으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365 묵상집 중에서 발췌- 한 사람의 손이 들어갈 만한 입구의 항아리에 구슬이 담겨 있었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구슬을 본 아이가 그 항아리에 손을 넣었다. 항아리에 담긴 구슬을 잔뜩 움켜쥔 채로 손을 꺼내는데 문제는 손이 빠져나오지 않았다. 있는 힘껏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주먹을 쥔 상태에서는 손이 빠지지 않았다. 아이는 큰 소리로 울었다. 그때, 아버지가 다가왔다. "아가, 손을 펴봐. 이렇게." 아빠는 자신의 손을 펴 보이는 시범을 보이면서까지 아이에게 설명을 해줬지만 구슬을 갖고 싶은 아이는 절대 손을 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이는 주먹을 꼭 쥔 채로 그저 대성통곡을 하며 울 뿐이었다. 끝내 아이는 주먹을 펴지 않았고, 아버지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항아리를 깨트려야 했다. 오늘 묵상글을 잃으면서 예전에 들었던 설교 예화가 떠올랐다.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결국엔 항아리까지 깨야 하는 경우가 많 지 않은가? 나의 욕심이 항아리에 들어가게 된다면 아무리 주위에서 권고나 권면을 해줘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구슬을 움켜쥔 손만 펴면 다시 항아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그 일이 만만치 않게 힘들다. 그 이유는 그것이 욕심이 모른다는 데 있다. 그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생각보다 쉽게 주먹 쥔 손을 풀 수도 있는데 항아리에 손을 짚어넣은 이유가 구슬을 갖고 나오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그 목표를 내려놓기가 어렵다. "끝까지 가볼게요." 카페를 하면서 내가 나의 멘토, 목사님께 했던 말이다. '끝을 알면서, 왜 끝까지 간다고 선포했을까?' 참 어리석은 선포였다. 난, 정말 끝까지 갔다. 망할 줄 알고 있었고, 결국 망했다. 그럼에도 내가 끝까지 가 보고자 했던 이유는 그래야 정말 포기할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결국 나는 끝까지 가보고서야 이 모든 시간들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데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어찌해보려 했던 욕심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항아리를 깨트려서야 주먹 쥔 손을 펼 수 있었다. 손에 쥔 구슬보다 더 가치 있는 항아리가 깨지는 결과를 얻고서야 나는 내가 어리석었음을 알게 됐다. 내가 쥔 욕심의 주먹을 잘 펼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면, 굳이 항아리를 깨지 않아도 됐으리라. 난, 요즘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애를 쓴다. 그것은 바로 부감 샷, 하나님의 시선이다. 하나님의 시선을 바라볼 때, 나의 욕심이 눈에 보인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그것이 욕심인 줄 모르고 끝까지 가보는 무모함을 겪는다. 그리고 급기야 항아리를 깨트린다. 가급적이면 항아리를 깨트리지 말고,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지혜가 나의 삶 가운데,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