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

by 글탐가


오랜만에 떠난 가족여행.

남편과 시부모님과 동행한 여행길이었다.


더 나이드시기 전에,

아프시기 전에,

맛있는 것도 먹고 콧바람도 쐴겸 떠난 여행길이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남편과 내가 선택한 곳은 시아버님과 남편이 태어나고

어머니가 시집살이 했다는 고향,

그 고향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 했다.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버지 어머니가 기뻐하실 거 같았다.

그렇게 떠난 여행길은 참으로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많은 시간들이었다.


우리는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판교에 먼저 방문했다.

98세의 연로하신 시외할머니가 돌아가시전에 다 함께 찾아뵈면 좋을 거 같았다.


우리에게 느껴지는 어머니도 노인이셨는데

시외할머니를 뵙고 나니 어머니는 청년처럼 젊게 느껴졌다.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나이의 무게가 참 재미있고 신기했다.


어머니도 엄마 앞에서는 어린 아이처럼 보이니

참으로 모든 엄마들 앞에서 딸들은

그냥 어린 것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방문한 시외할머니 댁에서 우리는

도다리 쑥국과 된장으로 무친 명이나물과 새콤달콤 초고추장에 버무린 돗나물등,

시골밥상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훗날, 시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보고 싶을 때 찾아보면

참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놀랍게도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모두 즐겁게 촬영에 임해주셨다.

귀찮아 하실 줄 알았는데 선뜻 촬영에 응하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고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찾아왔다.


다리가 불편하신 시외할머니에게 배웅하지 말고 방에 들어가 계시라고 말했더니

많이 아쉬워하시고 서운해 하셨다. 우리가 방문할때마다 차가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시던 시외할머니셨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우리를 배웅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 서운함이 더 크셨던 거 같다.

"또 올게유!"


어머니가 엄마의 손을 잡자,

평소 잘 울지 않으시던 시외할머니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왔다.

어머니 역시 참고 있던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내기 바쁘셨다.

그렇게 아쉬운 이별을 뒤로 한 채 우리는 하룻밤 묶을 콘도로 향해갔다.


콘도로 향하는 차안에서 우리는 연신 외할머니 얘기를 멈추지 않고 했다.


"그 연세에도 아주 정신이 말짱하신게 얼마나 다행인 줄 몰라."


"그러니까, 아까 헤어질 때 우시는 거 보고 나도 눈물나서 죽는 줄 알았다."


"젊으셨을때는 참 고우셨는데..."


"뭔소리예요? 나이가 드셨어도 참 곱지."


투닥투닥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어머니 아버지의 정감어린 대화를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나왔다. 그렇게 시작된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혼인 이야기와 아버지가 군대 간 사이에 남편을 임신한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우리는 굽이굽이 따라가는 길처럼 과거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했다.


콘도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우리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아버지의 고향집을 방문했다.

고향집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부터 지난 추억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아버지, 어머니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목소리는 젊은 시절마냥 경쾌해졌고, 또 표정은 발그레하니 행복해 보이셨다.


'정말 이 여행을 잘 왔구나'


뿌듯해지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고향집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남편이 다섯살때 신발을 던졌다는 우물이 그대로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신기한 듯 우물가를 열어보시며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그 시절로 돌아가 남편의 다섯살 개구장이 시절을 영화보듯 말씀하셨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을 맛갈나게 잘 하시는 분들이었구나!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의 반응은 아버지 어머니에 비해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든 생각,


'노인에게 추억은 젊은이에게보다 더 남다른 의미가 있구나!'


이번 여행길을 통해 노인들이 추억을 먹고 살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추억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훗날, 우리가 노인이 됐을 때 우리부부는 이 여행길을 추억삼아 살거 같다.


팔순이 넘어선 어머니 아버지와의 여행길!

그 여행길을 함께하며 나의 노년의 때를 생각해본다.


그 노년의 때, 난 어떤 추억들을 먹고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