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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Feb 03. 2021

영업이 꽃이라면

82는 거름에 가까웠다

면접 대기장소에는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리에 빼곡하게 앉아있었다. 관계자는 입구에서 서류를 나눠주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형식에 맞게 다시 쓰라고 했다. 모두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면서도 꾸준히 서로를 견제했다.

누구 하나 튀지 않는 검은색의 무난한 정장 차림에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허락하지 않는 단정함, 완벽한 무리였다. 당시의 나는 FM이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그저 튀지 않을 정도로만 입었는데 그게 검은색 무리에 있으니 엄청 튀었다.


일단 열댓 명이 한꺼번에 면접을 봤는데 워낙 사람이 많으니 그마저도 시간이 꽤 걸렸다. 질문은 하나, 희망 부서는 제각각이겠지만 시작은 영업이라는 것! 각자의 의견이 당락을 결정했다. 일단 붙고 보자는 심정으로 영업이 꽃이지 않냐며 말문을 열었다. 쥐뿔도 모르면서.

영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차게 NO를 외친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합격이었다. 무려 합격증까지도 줬다. 그리고 다음 날, 한 강당에서 회사 설명회가 있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도 족히 200명은 넘었다. 처음에는 면접을 그 날 하루만 진행한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 소개만 해도 반나절이 훌쩍 흘렀고 기업의 비전, 미션, 인재상 등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은 다 있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찝찝함에 각자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강당으로 모이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짐을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컴퓨터를 켜고 회사를 검색했다. 예상했던 대로 어떤 정보도 없었다. 아X, X아 이렇게 검색을 해서 겨우겨우 글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거기에는 면접, 그 후의 이야기가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설명회는 오전으로 끝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조를 나누어 팀장의 지휘 아래 승합차를 타고 각지로 흩어졌다. 그리고 지방의 작은 여관을 통으로 빌려 합숙 생활을 이어갔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였다. 모든 비용은 팀장 주머니에서 나왔기에. 판매를 위한 교육이 끝나면 2인 1조로 팀을 짜 배정된 학교로 이동했다.

(맞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을 이용해 교재를 판매하던 잡상인이었다.)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 한 명까지 실적을 달성해야 서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입고 있는 정장 한 벌은 다시 입을 수 없을 정도로 꼬질꼬질해졌지만 꿈 하나로 모두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서울로 돌아가면 원하는 부서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NO였다. 결코 달성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높은 실적의 벽 앞에 Go를 할 것인지, stop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돌아섰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그곳은 열정 페이보다 염전 노예에 가까웠고, 영업보다 팔이에 가까웠다. 영업이 꽃이라면 팔이는 거름에 가까웠다.


가시는 거름 거름 놓인 그 똥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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