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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Mar 05. 2021

10점 만점에 10점

여긴 학교인가, 회사인가

콜센터에도 시나리오 작가가 있다. 말하자면 콜센터에서 고객에게 이러이러한 요금제가 새로 나왔는데 TV, 인터넷 결합으로 하면 얼마가 할인되고... 이런 식의 안내전화를 할 때 필요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작가라고 했으니, 그저 잘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일단 일주일 간 콜센터의 신입들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했다. 백과사전과 맞먹는 두께의 교재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들만 가득했지만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 틈틈이 공부를 하는 수험생과 같은 일주일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사실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늘 그랬듯 문제는 시험이었다.


한 두 문제 틀린 것 같았다. 그래도 잘 본 거 아닌가, 살짝 뿌듯할 뻔했다. 웬걸. 사무실로 돌아와 제대로 깨졌다. 그 정도는 다 맞았어야 하는 거라며. 왜 틀렸는지, 어떤 부분을 잘못 알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브레인스토밍을 하여 다음 주 월요일 아침까지 제출하란다. 숙제라고. 금요일 퇴근 시간인데.



강사 아닌 강사 같은 나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일주일간 가만히 지켜보았는데 옷을 그렇게 입으면 안 된다, 머리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우린 그들에게 강사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니까. 네에? 제가요? 저도요?

콜센터의 신입들을 교육하는 강사와 같은 소속이라는 이유로 강사라는 호칭에 어울리도록 스튜어디스와 같은 스타일을 요구했다. 옆의 강사들과 다르지 않아야 한단다. 앞머리는 올백으로, 옷은 단정한 스커트 정장으로 입고 출근하라고. 일단 대답은 알았다고 했으나 눈 앞이 깜깜했다. 이 일을 어찌할꼬.


이 모든 것을 면접을 봤을 때부터, 아니면 월요일 첫 출근부터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으리라.

(새로운 분야이니) 공부는 당연하지만 달달 외울 필요까지 있을까. 강사가 아닌데 강사처럼 보일 필요가 있을까. 정장을 새로 사면서까지 이 회사를 다닐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 난...


올백을 맞을 자신도, 올백을 할 자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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