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해 Mar 25. 2021

해고의 다른 말

스타 작가를 섭외하라

책 제목을 말하면 누구나 아는, 한 권의 베스트셀러를 가진 출판사였다. 토요일 오후 편집장과의 1:1 단출한 면접이 살짝 의아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자리에서 합격이 되어 주말 내내 축포를 터뜨렸다.

그리고 월요일, 출근을 했는데 아무도 편집장과 말을 섞지 않았다. 첫 출근의 긴장감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아주 숨이 턱, 턱, 막혔다. 사람들은 편집장은 물론 내게도 일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쳐다보지도, 말을 걸지도 않으니 섣불리 말을 붙일 수도 없었다. 나, 혹시, 투명인간? 

점심시간,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은 건 편집장과 나뿐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편집장은 내 손을 잡으며 조곤조곤 말을 이어나갔다. 말인즉슨 자신은 비록 회사를 그만두지만, (나를 선택한)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내가 꼭 증명해주기를 바란다고. 하, 이런, 부담감은, 뭐지...?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퇴근 무렵, 사장(놈)의 호출이 있었다. 그는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했다.

편집장이 왜 너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과 넌 수준이 맞지 않다.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여기는 다들 배운 사람들만 있어서 말을 섞기도 힘들 거다. 레벨이 정말 다르니까. 오늘 누구와 한 번이라도 이야기해봤냐.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거다. 그래도 여기 있을래?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니 네가 아는 작가 중에 가장 유명한 작가를 섭외해오면 인정해주겠단다. 그때까지 자르지는 않을 테니 투명인간 취급을 당해도 버텨보라고.

아무래도 좋았다.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치욕, 까짓것 꾹꾹 눌러 담아보려 했는데 그게 아니라 좀 더 빨리 문을 나섰어야 했다. 분위기를 감지했을 때? 투명인간 취급할 때? 점심시간, 편집장이 내 손을 잡았을 때? 어쨌든 너무 늦었고 그날 이후 꽤 오랫동안 몸살을 앓았다.


합격을 취소했으면 좋겠다는 말로도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데. 좋게 말하면 못 알아먹을까 봐 그랬나. 너희만큼 배우지 못해서, 수준이 달라서 이해력도 판단력도 부족할 거라 생각했나.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사람을 내몰 일인가 싶다. 지금 생각해봐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지 말고 더 배워서 더 좋은 곳으로 가겠습니다! 하고 나올걸.



매거진의 이전글 인턴의 후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