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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May 04. 2021

방송 후유증

며느리 체험판

신생 프로덕션은 요람과 같았다. PD의 집, 아니 PD의 방이 곧 사무실이었다. PD의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어도, 부모님이 꼬장꼬장해 보여도 닥치고 GO였다. 같이 일할 사람은 PD니까, PD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집과 회사의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부터 서서히 문제, 라는 게 발생했다.


PD는 바깥사람이었다. 종일 그의 부모님과 함께 있어야 할 사람은 나였다. 어머님이 장을 보고 오셨나? 아버님이 마실을 다녀오셨나? 나가서 인사를 해야 하나? 짐을 들어드려야 하나?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일단 여긴 사무실, 난 근무 중!이니 모른 척한 게 끝내 사달이 났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한마디 하셨단다. 쟤는 어른이 밖에 나갔다 왔는데 어떻게 한번 나와 보지도 않느냐고.


게다가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온전히 집밥을 먹어야 했다. 끼니마다 손 한번 가지 않은 반찬이 수십 가지였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야 성이 차는 걸까. 쌓이는 건 설거지일 뿐이고, 설거지는 내 몫일 뿐이고! 돌아서면 설거지, 돌아서면 설거지... 참다 참다 결국 크게 한 방 터뜨렸다. 내가 여기 시집왔냐고! 손 마디마디 짓무른 것 좀 보라고! 이후로 아침은 거르고 점심, 저녁은 PD가 밖으로 불러내 줘서 겨우 설거지옥에서는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설거지옥 다음 코스

역시 지옥이었다. PD는 술만 취했다 하면 헤드록을 걸고 머리통을 물었다. 처음에는 친근함의 표현이겠거니 웃어넘겼다. 성적인 농담을 하거나 어딘가를 더듬거나 하는 식의 일반적인 직장 내 성희롱은 아니었으니까. 꼭 함께이기를 바란 술자리에는 PD의 여자 친구도, fireball 친구도, 동료 PD와 작가도, 심지어 가족들도 있었다. 바라보는 그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으리라. 어쩌면 눈치도 요령도 없던  잘못일지도.


다큐멘터리 한 편,

홍보 영상 두 편! 그 와중에 일을 하기는 했다. 조연출 겸 자료조사로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작가, PD에게 칭찬이란 걸 받았다. 대표는 어깨가 으쓱했다지만 내가 듣기론 뒷맛이 영 찝찝했다.


메인 작가는 최소한의 전화와 이메일만으로 자신이 크게 손 볼 것 없이 일처리를 해줘서 고맙다는 의미의 칭찬인 반면, PD는 메인 작가가 메인 노릇을 하지 않아서, 고생한 나를 위로한답시고 한 뒷담화였다. 어쨌건 마무리는 지었고 박수도 받았으니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됐다.


나이 먹고 요람에 누우니 멀미를 하는구나.


다 그런 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프로덕션에서는 <VJ특공대>와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명절 즈음하여 관련된 아이템을 찾다가 팔도의 특색 있는 차례상을 소개하기로 하고 섭외를 시작했는데, 아뿔싸! 예전에는 그렇게 차렸지만 요즘에는 구하기 힘든 식재료이기도 하고 그렇게 안 한다고들 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만들면 된다고 했다. 방송은 원래 다 그런 거라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쪽 지방은 저렇게 지내는구나!" 신기할 거고, 아는 사람이 보면 "저쪽 집은 여전히 저렇게 하는구나!" 생각할 거니 괜찮다고 했다.


내가, 하나도, 안 괜찮아서 떠났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 있어서 거짓 방송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TV를 볼 때는 늘 뒤통수를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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