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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해 Oct 05. 2021

하나님의 회사

강요하지 않습니다


IT 계열의 회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많은 수의 직원들이 파견을 나가다 보니 정작 회사 내에는 몇 사람 없었다. 내가 소속될(?) 새로 만들어진 커뮤니케이션 팀은 바로 그 파견 직원들의 고충을 해결함과 동시에 각종 문화행사들을 통해 소속감을 심어주는 것이 주요 업무라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기독교 회사라는 것. 처음이었다. 출근 후 본격적인 업무 전에 모두 함께 기도를 하고 주말에는 함께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강요는 아니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종교는 없지만 불교와 친숙했고 천주교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었다. 대학에서는 채플을 들었고 이후로도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를 몇 번 나갔다. 목사님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CCM을 따라 부르며 율동을 하는 건 꽤 재미있었다. 찬송가를 부르며 가사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기독교에 대한 반감 또한 없었다. 단순히 그런 이유로 괜찮지 않을까? 하여 입사를 결정했다. 사실 그보다 커뮤니케이션 팀의 업무가 너무 마음에 들어 기독교 회사라는 가장 큰 이슈를 놓쳤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어쨌든 출근을 했고 그곳은 매일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모두, 기도합시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는 동석하지 않아도 됐다. 진심으로 믿음이 차오를 때 들어오면 된다고, 기다리겠노라고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그 정도는 정말 괜찮았다. 점심시간, 밥이 나와서 먹으려는 순간 모두가 기도를 할 때가 세상 뻘쭘했다. 같이 눈을 감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멀뚱멀뚱 그들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지,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내 눈은 꽤 오랫동안 방황을 했다.

이후에도 기도는 계속되었다. 회의 전후에도, 퇴근시간 전에도 기도를 했다. 모두 기도합시다! 소리와 함께 다들 눈을 감았다. 분명 강요는 하지 않는데 압박이 왔다. 이렇게 조금씩 스며들게 하는 게 목적인가? 의심의 불꽃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고통받는 고막

9시부터 6시까지 꼬박, 내 고막은 소음과 맞닥뜨려야 했다. 기도도 기도지만 쉼 없이 누군가의 컴퓨터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들릴 듯 말 듯 잔잔하게 깔렸으면 고막이 덜 수고로웠겠지만. 사무실 어디에 있든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정도의 음량이었다. 옆자리의 직원은 리듬에 맞춰 연신 다리를 떨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들렸다. 사무실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일을 보는데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사무실의 흔한 키보드 소리며 프린터기 소리, 통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찬송가가 다 먹어버려서.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이어폰을 끼고 있을 수도 없고. 이쯤 되자 가사에 감동해 울컥했던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커피숍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진짜. 난 집중을 할 수 없으니 쓴 걸 계속 읽어보고, 기껏 지워놓고 또 비슷하게 쓰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흘렀는데 커서는 여전히 그 자리였다. 업무 시간 내에 일을 한 날보다 못 한 날이 더 많았다. 모두가 퇴근한 후 찬송가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는 시간이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참석, 못하겠습니다

전에 없던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끝이었다. 대개 회사가 원하는 문화행사는 답습이었다. 이를테면 체육대회, 등산, 야유회 정도? 이 회사에서는 더 나아가 여러 교회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들을 함께 참여하는 쪽을 강력 추천했다. 우리가 따로 돈을 들일 것도, 준비할 것도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교회에서 어떤 행사들을 하는지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중 몇 가지를 추리면 결정은 CEO의 몫! 결정이 나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직원들에게 문자로 참석 여부를 물었다. 10이면 9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참석 못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답이었다. 굳이? 주말에? 이게 단합이라고?

파견 직원들의 불만은 (파견 나가 있는)그쪽에 있지 않았다. 그들이 속해 있는 이 회사! 이곳에 불만이 가장 많았다. 제발 주말에 좀 불러내지 말라는 얘기뿐이었다. 그런데 또 회사에서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오고 싶지 않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오는 사람들끼리만 다지는 단합이었다.



강요는 없었다

회사에서 자꾸 쓸데없이 무언가를 제시하고 권유한다. 물론 거절을 해도 무방하지만 계속 거절을 하는 입장에서는 뒤가 켕기는 것도 사실이다. 회사는 주말 예배도 꼭 모든 직원에게 문자를 보내 참석 여부를 물었다. 차라리 일을 하고 말지, 핑계를 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말들이 참 많았다. 회사는 우리가 뭐라 하디? 의 입장이라 직원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도도 마찬가지. 강요하지는 않지만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쭉 다닐 거면 믿는 게 차라리 속 편할 것 같았다. 애초에 독실한 크리스천이 입사를 하는 편이 제일 좋지 않을까. 그들이라면 이 회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종교에 반감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떤 종교를 콕 짚어 믿을 만한 사람도 아닌 나는, 어쩌면 나와 같을(?) 파견 직원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줄 수 있는 깜냥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더는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에도 한 줌 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것. 그 의견 그대로 존중해주었다. 다시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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