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으로부터 어느 수필 공모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원래부터 공모전이란 제도를 좋아하지 않아 들을 당시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계속 머릿속을 뱅뱅 도는 게 싱숭생숭했다.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는 거니 한 번쯤은 써볼 만하지 않을까, 이렇게 고민할 시간에 써볼까? 싶어 도전했다. 처음에는 되도록 빨리 쓰고 얼른 손을 털 요량이었다. 너무 공을 들이면 되지 않았을 때의 상심이 더 클 것 같아서. 그럼에도 쓰는 데에 한 달, 탈고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마감 날짜는 세 달이 남아 있었다. 발표까지는 네 달. 말하자면 120일을 기대한 셈이다. 최종 출품작이 200개가 채 되지 않자 기대감은 더욱 치솟았다. 이 정도 경쟁률이면 되지 않을까? 됐으면 좋겠다, 란 마음이 상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까, 까지 번져갔다. 물론 주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발표가 나면 이처럼 멋진 서프라이즈가 어디 있을까, 생각만으로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 몹쓸 기대감이란...!
수상자 발표자 목록에 내 이름은 없었다. 대상은 물론이거니와 입선에도 들지 못할 수준이었던 것이다. 침울해있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무슨 일 있냐고. 공모전에 출품을 했었고 오늘이 수상자 발표날이었고, 그곳에 내 이름은 없었다고. 그러자 남편이 내게 말했다.
"수상작 제목을 봐. 3대가 함께 사는 이야기, 장애를 가진 부모 혹은 아이 이야기, 아빠나할머니가 쓰는육아 일기, 싱글맘, 워킹맘처럼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뽑히는 거야. 그에 반해 우린 너무 평범하잖아. 애환이 없어서 그래. 여기서는 글을 잘 쓰는 게 중요하지 않아." 어허! 이 사람 보시게? 위로하는 방법을 아네?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내 글에는 특별함이 없었다. 보통의 평범한 날에서 찾은 행복만 가득했다. 이를테면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만 출연한 셈이다. 아무래도 글을 쓸 당시의 내가 그랬던 것 같다.
그날 밤, 머릿속으로 남편의 말을 몇 번이고 리플레이하다가 큰 문제점을 알게 됐다.
난 어지간히도 공부 머리가 없었다. 전교 1등처럼 공부를 해야, 그나마 반 석차 20등 안에 골인할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자본 역사가 없다. 학기 초에는 선생님들도 착각할 정도였다.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는 그야말로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중간(기말) 고사 일정이 나오면 스케줄을 짜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했다. 문제는 요점을 알지 못한다는 것! 그냥 무작정 많이, 열심히만 했다. 밤을 새 가며.
공모전도 비슷한 논리가 아닐까. 며칠 전 이런 뉴스를 봤다. 한 남자가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전부 표절이었다고. 이 남자는 어떤 공모전에 어떤 글을 내야 수상을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출제자의 의도는 물론, 작품을 보는 안목까지 갖추고 있었다. 여기브런치도 어떤 글이 다음 메인에 오를지, 어떤 글이 뉴스레터에 실릴지 아는 사람만이 조회수 폭발을 체험하는 것처럼. 공모전 다수 입상자는 그 목록만으로도 A4용지 한 장을 꽉 채울 정도라지?
단 한 번도 그런 영광을 누려본 적 없는 난,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쓴다. 공모전에 당선되지 않아도 브런치에 글을 쓸 수는 있으니까. 작은 불꽃만 있으면 된다. 글을 쓰는 데에는.
어쨌거나당분간 공모전을 위한 글은 못 쓸 것 같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지원해서 눈곱만큼의 기대도 걸 수 없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같은 공모전이라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