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생각 #6
면접은 오전과 오후 두 타임으로 진행된다. 오전 면접이 끝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오후면접 준비를 해야 했었으나 너무 피곤해서 삼십분 정도를 낮잠을 잤다.
전날 잠을 많이 못 잔 탓이었다. 2차 시험 전날에도 잠을 설친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면접 별거 아니잖아.'라고 되뇌여보려해도 콩닥 거리는 가슴이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두뇌 방향으로 끊임없이 피를 펌핑해댔고, 덕분에 나는 말똥한 정신으로 새벽 4시까지 밤을 지새웠다.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은 면접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겠다. 그보다 근본적인 두려움 때문이겠지. 막연하게나마 남아있었던 두려움은 한 밤 침대 머리맡 말똥한 정신 아래에서 구체적인 공포로 떠올랐다. 그 동안 면접 준비한다면서 억지로 꾹꾹 눌러대고 외면했던 면탈에 대한 두려움이 고통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 6시즘 눈이 떠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기는 했나보다. 2시간 조금 넘게 잠을 잤다. 짐을 챙기고 과천 인재개발원으로 향했다.
출근하는 차로 꽉 막히던 과천정부청사역을 살짝 벗어나 인재개발원으로 향하는 언덕 밑자락에 다다랐다. 답답한 도로에서 벗어나니 먼저 보이는 것은 탁 트인 하늘이다. 인재개발원 올라가는 언덕길 좌우로는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줄지어 정문까지 늘어서있다. 작년보다 2주 정도 늦어진 면접 일정 탓에 언덕길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올라가는 기분이 헛헛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음 고생이 많았던 일년이었지만 막상 또 일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고생들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말았다.
고생 자체는 정말로 말이지 즐거운 것이 아니지만, 고생의 기억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튀려는 순간에 겸손하게 나를 붙잡아주고, 사소한 복에도 감사함을 느끼게끔 해주고, 타인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을 해줄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은 고생의 기억이었다. 과거에 대한 미화가 아니라 고통 그 자체가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고통에 직면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직면하는 것은 부정과 분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고통을 수용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고 한다. 신은 인간을 너무 취약하게 설계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자기합리화라는 강력한 방어기제를 선물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찾는 행위를 통해 그간 고생이 버린 시간이 아니었음을 말하며 일년을 다시 버틸 수 있었다. 득도의 다른 말은 자기합리화일수도 있다.
어제부로 내가 할 수 있는 고생은 다했다. 섣부르게 기대하지 않을 것이며, 벌써부터 불안에 떨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바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조금만 욕심을 부려보자면. 더 이상은 고생하지 않았으면. 적어도 이 시험에 대해서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