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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비메이어 Sep 26. 2024

기다릴 자신 III

공부 생각 #5

2024년 9월 25일

오후2시

지하철역에서 꽃을 샀다. 만원짜리 카밀레 꽃 다발. 나를 위한 꽃 선물이다. 자기연민만큼 한심한게 없다지만, 그런 의미 부여 없이 그냥 스스로에게 꽃 한 다발 선물해주고 싶었다. 몇 송이 없이 소박하니 맹랑한 기분에 적절하다.

신촌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전에 있는 그림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귀국하자마자 바로 신촌으로 간건데, 막상 교실 문을 마주서서는 들어가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도저히 수업을 들을 몸의 컨디션이 아니었을 뿐더러, 마음의 여유 없이 그림을 그리기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야할 곳을 잃은 발걸음이 얼마전 졸업한 학교 주변을 멤돌다가 근처 한적한 카페로 들어갔다. 손님이 아무도 없길래 눈치 보지도 않고 소파에 고개를 뒤로 젖혀서 두 시간 정도를 퍼질러 잤다. 사실 기절했다는 표현에 가깝겠다. 거의 30시간째 한숨도 자지 않았으므로.

눈을 떠보니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나 있었다. 물론 입맛이 없으니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 퇴근 시간 겹치기 전에 집 근처 동네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쓸한 곳에서 문자를 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한 공간에서 반경 수킬로 내로 발산되는 안정감이랄게 있는데, 고시를 시작하면서 오래전부터 떠난 학교는 내게 안정감을 주기에 이미 너무 낯선 공간이 되어있었다.



오후 3시

 

동네 지하철 역사 내에 만남의 장소 같은 넓은 공간이 있다. 마치 누군가를 설레게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까 구매한 꽃다발을 옆에 놓아 둔채로 벤치에 앉았다.

다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얼굴이 쓸쓸해보이던 남자 한 분은 30분 넘게 혼자 앉아있더니 이내 찾아온 애인을 만나고는 다른 사람이 된 것마냥 눈 주름이 활짝 핀다. 혼자 다리 꼬고 앉아 셀카를 열심히 찍던 젊은 여성 분은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을 만나 손깍지를 끼더니 수더분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모두에게서 기다림과 기다림 이후의 면면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기다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건너편과 좌우 구석 쪽 벤치에 앉아있던 노인 둘 셋은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눈 앞의 빈공간 어디즘을 주시하는 공허한 눈빛으로 내가 앉아있던 두 시간 남짓 동안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아까의 젊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기다림의 맺고 끊음이 없으므로 표정의 변화도 없다.

어쩌면 나도 그런 모습이었겠다. 왕래 많은 북적한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 없이, 하는 것도 없이 그냥 멍을 때리는 일.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오후 6시 발표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듯이 그들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기다림이 끝나지 않았을 뿐이지. 나이가 들 수록 고민이 끊이질 않는 법이니까.


오후 5시 55분

역 근처에 공원이 있다. 넓직한 정자가 하나 있고 그 앞에 작은 꽃뜰이 있다. 가을이라 꽃은 없지만 대신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다. 꽃뜰을 한 바퀴 도는데 약 1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다섯 바퀴를 돌기로 했다. 핸드폰은 꺼두고. 다른 짐과 함께 정자 위에 올려놓은 채로.

다섯 바퀴를 다 돌고 나서 폰으로 직접 사이버국가고시센터에 접속했다. 손이 막 떨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분하다. 이미 혼자 시간을 보내며 많이 마음을 비워낸 덕이겠지. 숨을 한번 크게 들이키고 합격자 명단 pdf 파일을 다운 받았다.

내 수험번호가 적혀있다.



오후 6시 1분

들이킨 숨을 후 하고 크게 내쉬면서 동시에 주저 앉았다. 머리에 쌓여있던 무게들이 한꺼번에 방출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눈이 가려지는 짧은 순간에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붙었다는 안도감. 한 시름 덜 수 있게 되었다. 고시 시험의 가장 어려운 관문이기에 2차 합격의 의미가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뻐야할 일이고 감사해야할 일이다.

 

엄습하는 불안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작년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낀 점이다. 스스로를 하늘 높이 올려보낼 수록 떨어졌을 때의 아픔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가증스러운 연민. 명단을 확인하던 짧은 순간에 수험 번호가 몇 군데 비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고생을 같이 나눈 사람들이 생기면서 합격이 더 이상 나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합불이 내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갈 연민할 처지가 아니기에, 그러할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기에 연민의 감정이 드는 내가 가증스러웠다.

기쁘다 슬프다 좋다 나쁘다 정의 내릴 수 없이 감정이 복잡했다.

이제 최종합격을 하려면 다시 11월 중순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아까 그 지하철 노인들의 면면처럼, 기다림의 맺고 끊음이 알고보니 없었다는 사실에 합격 통보에도 내 얼굴이 완전히 피지 않았다.  


2024년 9월 26일

오전 2시

합격 발표 이후 가족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새벽이었고 핸드폰 알림창에는 읽지 못한 톡이 쌓여있었다.

밀린 톡을 답장하고 뒤늦게 씻으러 화장실을 들어갔다. 거울 속의 표정이 밝지 않다. 반복되는 기다림과 그 끝에서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던 불합격에 지쳐 나는 어느새 너무 나약해져 있었다. 기뻐해야할 합격 통보에도 한번을 웃지 않은 지금의 내 모습이 그 증거였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최종합격을 한다 해도 또 다른 걱정거리를 끄집어 내어 나 스스로를 끝나지 않는 기다림의 굴레로 밀어 넣을게 뻔했다. 결국 기다림을 끝내는건 결과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세안을 마치고 남은 여행 짐을 정리하다가 낮에 샀던 카밀레 꽃다발을 뒤늦게 발견하고 화병에 꽂아 넣었다. 벌써 여러 송이가 시들어 몇 송이 남지 않았다.

카밀레의 꽃말은 강인함이라고 한다.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강인한 마음.

고생했고 열심히 했다. 이 끝에 무엇이 있을지 벌써부터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주어진 기회 속에서 열심히 그러나 즐겁게 노력해야지.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얼굴을 활짝 펴보일 강인함을 가진다면. 그게 바로 무한히 계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기다림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즉, 기다릴 자신감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다릴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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