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괴성 (怪聲)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던 어느 해의 7월 즈음. 당시의 공부 메이트였던 친구와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런닝을 하던 중 목격한 일을 소재로 하는 글이다.
평일 오전11시라는 애매한 시간. 평소라면 사람 많을 여의도 한강공원이 한적했던 덕에 눈치 볼 사람 없이 구호를 주고 받으면서 쾌적한 런닝을 하였다. 이럴 때에나 '백수라는 것은 꽤나 괜찮은 것이구나'하고 자기 위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간 친구와 나는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나루를 달리고 서강대교를 지나 다시 마포대교로 한 바퀴를 돈다는 멋드러진 코스를 정해놓고 런닝을 시작했다. 아주 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걷는 것만으로도 땀이 나기에는 충분한 습도였다. 그러한 날씨 탓에 마포대교를 건너고 여의도 공원에 막 도착을 하였을 때 즘에는, 이미 옷이 땀으로 푹 젖어 기진맥진하였다.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뛰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강 둔치 저만치에서 괴성이 들렸다.
아아악- 하는, 절규에 가까운 남성의 소리었다.
야이씨!- 하는 호통 소리도 아니고, 꺄아악!- 하는 비명소리도 아닌, 찢어지는 소리의 괴성. 그리고 그러한 괴성이 일정한 주기로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친구와 나는 순간적으로 위기감지 능력(사실은 둘 다 겁이 많았기에)이 발동하여 뛰던 걸음을 늦추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소리의 들리는 방향을 따라 부욱-하고 선을 그어보았다. 보아하니 이대로 쭉 달리면 괴성의 주인을 가까이 마주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비명의 주기로 보아하건데, 우리가 지나칠 때 즈음에는 아저씨의 괴성을 바로 앞에서 직접적으로 받아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친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그래, 그러자."라고 하는 것을 보니, 친구도 꽤 신경이 쓰였나보다. 마침 당시는 묻지마 칼부림 같은 흉흉한 일들이 뉴스에 자주 나오던 때였다. 우리는 달리던 트렉을 벗어나 옆에 나있는 길로 멀찌감치 우회했다.
그리고 무슨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싶어 한강 둔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상대를 자극할까봐 저만치 친구 어깨 너머로 눈을 흘겨 찢어지는 목소리의 주인을 슬쩍 쳐다보았다.
꼬질꼬질 때가 탄 등산복에, 햇빛에 그을린 시커먼 얼굴. 놀랄 것도 없이 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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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괴인 (怪人)
인간됨이라는 것이 사회적 정의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면, 더 이상 '상호작용의 주체'가 될 수 없게 미쳐버린 존재는 광인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악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악인과는 다르다. 또는 선천적인 정신장애로 일반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과도 다르다. 광인은... 평범했던 사람이 더 이상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상태로 미쳐버린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에서 광인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바로 괴인이 존재한다.
괴인의 초기 증상은, 주로 혼잣말을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통념에서 벗어나는 괴이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어렸을적에 내가 살던 동네의 어느 이웃 아주머니는 행색이 다소 초췌했을 뿐 아주 멀쩡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얼마간 돌연 자취를 감추더니, 어느 순간 아파트 단지의 가로수 뿌리를 맨손으로 파내고 있는 괴이한 모습으로 목격되었다. 가정의 불화라든가 도박이라든가 하는 문제를 겪고 나면 그런 파멸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듯해보였다.
그리고 괴인을 거쳐 서서히 광인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의 지인 중에는 젊은 시절에 한번 삐뚤어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광인이 된 자가 있었다. 젊어 도박에 빠졌던 그는 -같이 있기에 꺼려지는- 그저 그정도의 괴상한 사람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집에서 쫓겨나 외국 어디에서인가 도망나가 살고 있다는, 그런 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자가 되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그는 서서히 괴이해지다가 어느 순간에 휙-하고 끈이 끊기더니 노골적으로 광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주변의 사례를 떠올릴 때마다, 나도 괴인이 되는 일에서 안전할 수 없음을 생각하고는 했다. 분명 어느 시점에...운이 좋지 않았다면, 또는 도움이 없었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였든지 괴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3. 이상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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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성을 지르던 주체 -괴인- 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그는 한강 둔치의 돌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낮술에 취해 꾸벅 졸고 있는 사람 같아보였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산책로 방향으로 고개를 쳐들고는, 아아아악- 하는 괴성을 내지르며 주변의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고 있던 것이다.
그런 일련의 행동을 반복하며 평온해야할 평일 오전의 한강공원에 적당한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물리적인 위해를 끼칠만한 인물은 안 돼보였기에, 마음이 놓였다.
그의 주변에는 소주병 하나 찾아볼 수 없었으며, 뭔가를 중얼중얼거리고 있지도 않았다. 만취한 사람이라면 낯빛으로 느껴지는 끈쩍한 알코올의 기운이 있기 마련이고,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혼자 중얼중얼 거리기 마련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이 가히 괴이했으나, 외견상 특별히 소름 돋을 점은 없었다. 가만히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면 누구나 멀쩡한 사람으로 볼 터였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의경으로 복무할 시절에 서울역 순찰을 돌면서 정말 자주 보았다. 서울역 근처에 <새꿈"어린이"공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모여 찾는 사람들은 나이 50줄을 넘어가는 노숙인들 뿐이었다. 이들은 대낮부터 소주를 까며 지나가는 직장인들에게 소리나 지르고 있는 안타까운 사람들이었다. 아니, 굳이 의경 시절까지 갈 필요도 없이 시내를 나가면 어디서든 '이상한 사람들'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한참을 멀어질 때까지 괴성이 멈추지 않자 신고를 해야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또 생각이 드는 것이, 다만 시원스럽게 소리를 내질러버리는, 이 가엾은 사람을 굳이 못살게 굴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한밤 중이면 몰라도 대낮이었기에. 뒷골목이면 몰라도 드넓은 한강 공원이었기에. 그리고 서울에서, 아니 한국에서, 아니 세상에서, 미쳐버린 사람을 보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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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민 (憐憫)
제 멋대로 맥락을 만들어 놓고 누군가를 괴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분명 무례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들을 괴인이라고 받아들임으로써 단전에서 올라오는 역한 기분을 연민의 감정으로 치환해버리고는 했다.
어줍지 않은 연민은 분명 싸구려 감정이다. 내가 품는 얄팍한 연민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품는 감정인지는 물음표다.
그러한 고결한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분노하는 것보다 차라리 연민을 품는 쪽이 내 취약한 마음을 다스리기에 더 쉬웠기 때문이다. 즉, 내가 쉽사리 품어버리는 연민의 감정이라는 것은 그저 내 자신의 안녕을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었다.
'고약한 취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괴인이 소리를 지르게 된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인간 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아서? 돈 문제 때문에? 아니면 너무나 고독하여 정신이 무너진 것일까?'
어쩌면 악인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내 멋대로 괴인으로 만들어버리고 연민의 감정을 품는 순간부터, 나는 그 사람의 행동을—그게 아무리 괴상하게 보여도—이런 식으로 정당화해버릴 수 있었다. 그게 연민의 힘이자 문제점이었다.
고시촌에서 한창 공부를 할 적에도, 괴인을 본 적이 있었다. 얼마간 다녔던 독서실에는 혼잣말로 심한 욕을 중얼거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매일같이 검정색 스트라이프 니트 만을 입고 오던 단벌신사는, 하루종일 휴게실 책상에 앉아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쌍욕을 중얼거리고는 했다. 책상 위의 노트북에는 몇 시간째 같은 화면만 틀어져있었고 말이다. 급기야 그는 신고 누적으로 독서실에서 퇴실처리를 받았는데, 이후 고시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던 그를 나는 조금은 연민했다.
의경을 복무할 시절 주말마다 시위현장에 나가고는 했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특히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루는 행진시위를 관리하기 위해 시위대의 속도에 맞추어 걷는데, 내 귀에다 대고 고향이 어디냐고 묻던 괴이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않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더니, 제멋대로 내 고향을 추측해서는 행진이 끝나기까지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욕을 해댔다. 광장에 나와 얼마든지 자신이 믿는 바를 표출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혐오의 말을 당당하게 내뱉는 그런 태도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사랑 대신 혐오의 감정으로 반 평생을 살아야할 그 사람의 인생을 조금은 연민했다.
이런 일 하나하나에 매번 역겨움을 느끼다보면, 남아날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 내 마음대로 상대를 괴인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삶을 연민하는 편이 훨씬 받아들이기 쉬운 감정이었다.
5. 괴인을 위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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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방금 저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야 한다면, 너는 어디서 소리를 지를래?'
내가 친구에게 묻고 내가 생각했다.
정말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는 상태라면,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몸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면, 어디서 소리를 질러야 마음이 놓일까? 분명히 한강공원보다 더 나은 장소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위협을 끼치지 않고,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괴이한 행동을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장소. 공공장소에서 괴성을 지르는 행위는 분명 문제되는 행동이므로, 그러한 사적인 공간이 있다면 거기서 소리를 지르는 편이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일련의 생각들이 이렇게 꼬리를 물자, 런닝을 하던 친구와 이것을 주제로 짧게 논의를 했다. 서울에서 목청껏 괴성을 지를 수 있는 공간이 과연 존재하는가? 그 어떠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공간이 존재 하는가?
"이를테면 노래방?"
노래방이라고 해도, 저런 식으로 소리를 지르면 영업 방해로 쫓겨날 것이다.
"산에서도 좀 그렇지. 등산객들이 있는데."
서울에는 산이 많으니 산에 들어가 소리를 지르는 것도 생각해봄 직하다. 그러나 사람 드문 등산로를 걷다가 괴성을 들으면 생존의 위협을 느낄 게 분명했다. 차라리 넓은 공원에서 소리를 지르는 편이 더 나아보인다.
"집에서도 안되겠다."
집에서 저렇게 소리를 질렀다가는, 이웃에게서 신고가 들어오고 말테다. 밀도 높은 도시 서울에서는, 이웃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대끼며 살아야 하기에, 가장 사적인 공간이어야 할 집에서조차도 내 마음대로 괴성을 지를 수가 없는 것이다.
몇 번 대화를 나눈 끝에,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내부가 소리를 지르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도로에 미친 사람이 많은 이유가 설명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저런 사람들 중에 차를 끌고 다닐 여력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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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괴인 연민 (怪人憐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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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덥지 않은 주제로 진지하게 논의를 하면서 친구랑 나는 여의도 공원으로 돌아왔다. 점심 시간이 지날 때즘이 되니 한적했던 공원이 사람들로 빽빽해졌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아보다가, 모처럼 공원에서 치킨이나 시켜먹자고 합의를 보았다.
네이버지도 대신에 배달의 민족을 켜놓고 핸드폰을 보며 걷는데, 아까 그 아저씨가 있었던 장소를 지나치게 되었다. 혹시나 싶어 그가 앉아 있을 한강 둔치 쪽을 돌아보았는데, 괴인은 어디에도 없었고 놀러나온 사람들만이 빽빽했다.
제법 한적했던 한강도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니, 제 아무리 괴인이라 해도 계속해서 고성을 지르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는 이미 몇 번이나 집에서 소리소리를 질렀다가 이웃의 신고로 쫓겨났고, 그 끝에 겨우 찾아낸 곳이 평일 오전의 한가한 한강공원이었는지도 모른다.
-라고, 제멋대로 또 뒷 얘기를 지어내면서 괴인을 연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