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의 실험과 현대 음악시장
때론 화폐적 가격이 어떤 대상의 실제 가치에 우선하기도 한다.
나는 아일랜드 출신 밴드인 U2를 꽤나 좋아한다. 처음 그들의 앨범을 구매한 것은 히트 싱글들을 모아놓은 컴필레이션 U218이었고, 이후 그들의 이전 앨범들을 몇 장인가 샀다. 2009년에 발매된 No line on the horizon은 디지털 예약구매를 통해 음원의 형태로 손에 넣었다.
2014년에 있었던 애플 이벤트에서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새로운 아이폰의 발표나 애플 와치 같은 애플 제품이 아니었다. 그 날 행사 막바지에는 U2가 무대 위로 올라와 신보 Songs of innocence의 리드 싱글 The miracle (of Joey Ramone)을 연주했다. 2004년부터 이어진 U2와 애플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10주년 되는 해에 애플이 그들을 초대 가수로 부른 것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연주를 마친 U2와 애플 CEO 팀 쿡은 U2의 새 앨범이 무료로 배포될 것이며, 아이튠즈 이용자들의 보관함에 지금 당장(!) 자동으로 추가되었다고 발표했다.
U2는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밴드 중에 하나다. 누적 앨범 판매량이 1억 장을 훨씬 웃돌고, 보컬 보노가 '실망스럽다' 라고 표현한 지난 앨범의 판매량은 백만 장이 넘는다. 그들의 신보를 무료로 배포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금전적 수익을 포기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U2는 이 실험을 통해 그들의 앨범을 대중에게 폭발적으로 노출시킬 수 있었다. 애플의 발표에 따르면, 앨범이 공개된지 6일만에 330만명이 그들의 새 앨범을 들었다고 한다.
물론 내게도 그 날 아이튠즈 보관함에 이 앨범이 추가되었다. 스트리밍 방식도 아니고, 다운로드 버튼만 누르면 음원이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 안에 저장되는 형식이었다. 그야말로 공짜 음원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당장에 첫 곡 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에 다른 앨범들을 들었던 내 태도와는 다르게 몇 곡인가를 대충 들어보고는 다시 듣지 않았다. 1년이 조금 못되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단 한 곡만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어째서 나는 그리도 좋아했던 U2가 5년 만에 가지고 나온 음악을 그런 무성의한 태도로 들었던 걸까? 조금 생각해 보니 답은 나왔다. 그들의 신보는 '공짜'였기 때문이다. 이전의 앨범들은 물리적인 음반의 형태이든, 그와 비슷한 가격의 해외 음원 서비스이든, 통상적으로 앨범 한 장을 구매할 때 지불하는 가격인 15000원 가량의 돈을 지불하고 구매했다. 음원의 가격이 떨어지자, 음악을 대하는 내 태도도 달라진 것이다.
나는 대부분 음원을 가급적이면 아이튠즈를 이용해 구매하고 등록되지 않은 국내 음원의 경우에는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 구매한다. 할인된 이용권 (150곡 단위)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지 않다. 한 곡에 500-600원 하는 국내 음원 사이트에서 음원을 구매하는 경우 까지만 해도, 나는 구매한 음원을 귀기울여 조심스럽게 듣게 되고, 그렇게 듣는 음악은 내 마음 속에 자리잡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150곡씩 거의 공짜에 가까운 수준으로 음원을 구매할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기본적으로 150곡을 한 번씩 들어보는 것만 해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뿐더러,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 동안 '배경음악' 수준으로 틀어놓기만 한다. 여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현재도 활발하게 제기되는, 뮤지션이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지만, 듣는이인 나에게도 좋은 음악을 놓치게 되는 것은 꽤나 손해이다. 특히나 이는 문화적 측면에서의 음악시장이 성장하는데 커다란 방해요소이다.
CD시장이 정점이었던 1999년에 미국인들은 1년에 64불을 CD구입 비용으로 지출했다.
현대 음악시장의 기류는 이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고 있다. 음원의 가격이 또 한번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주도하는 스포티파이는 그들의 한 달 정액 요금이, 이전에 대중들이 한 달에 음반 구입으로 지출하던 평균 금액보다 오히려 많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티스트들이 음원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오히려 예전 음반시장이 활발했던 때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애플뮤직에서도 비슷하게 가격을 책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말도 안되는 가격의 (유통사의 상당한 중간마진 까지 책정된)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는 애초에 논의의 대상에 끼워주기도 창피하다.
스트리밍으로, 초저가의 금액으로 음원을 구매-구매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하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투자한다는 느낌이 사라진다. 더 많은 음악을 접할 순 있겠지만 '매니아'가 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음악시장을 지탱하는 힘은 돈 뿐만이 아니다. 아티스트들의 팬이 되어주고 그들을 지지해줄 듣는이들도 그만큼 중요하다. 난생 처음으로 제 돈을 주고 서태지의 테입을 사서 하루 종일 듣고, TV로 생중계한 공연을 챙겨본 어린 날의 나도 그 중 하나다.
애플에게서 어느 정도 대가를 받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사실 U2는 이미 엄청난 수의 팬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음원수익 정도는 포기하고 이런 실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U2는 360투어로 7억 3천만 불의 매출을 올렸다. 단일 투어 매출의 순위로는 1위이며, 이는 2위 롤링 스톤즈 보다 1억 8천만 불 더 많다. 이미 다른 통로로 그들을 지지해줄 팬들이 많기 때문에, 음원이 공짜든 아니든, 그들은 지속가능한 밴드인 것이다. 그러나 스트리밍이라는 채널로는 다른 아티스트들, 특히 새로 시작하는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팬이 되어줄 듣는이들에게 다가가기가 조금 더 어려울 것 같다.
어차피 인간이라는 종족이 살아있는 한, 누군가는 딴따라질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 딴따라질에 박수를 칠 것이다. 직접적인 음원의 거래가 없어지더라도, 공연이든 방송 매체 등 다른 통로로 그들이 소통할 것이라 믿지만 지금 벌어지는 음악의 가시적 가치 하락은 꺼림칙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