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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감미 Jul 29. 2016

300/30 - 씨없는 수박 김대중

된장 블루스


300에 30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동네 옥상으로 온종일 끌려다니네

이것은 연탄창고 아닌가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평양냉면 먹고싶네


300에 30으로 녹번동에 가보니

동네 지하실로 온종일 끌려다니네

이것은 방공호가 아닌가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아요

평양냉면 먹고싶네


300에 30으로 이태원에 가보니

수염난 언니들이 나를 반기네

이건 내 이상형이 아닌데

오늘 밤 이 돈을 다 써버리고 싶어요

평양냉면 먹고싶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싶네

평양냉면 먹고싶네

먹고싶네


블루스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수도 없이 나올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정답을 꼽아내는건 불가능하다. 위대한 블루스 기타리스트 알버트 킹 형님에 의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블루스가 있다. (Have the blues, Got the blues) "젖병을 빨리 손에 넣을 수 없어 울고 난리치는 아기에게도, 남자친구가 끝내주는 신형 자동차를 뽑았는데 외출 금지를 받은 딸내미에게도 블루스가 있다." - Blues Power 중-


음악으로써의 블루스는 어디서 왔는가? 아프리카 출신의 미국 흑인 노예들이 그들의 전통 음악과 미국 현지의 종교 문화를 결합한 것이 블루스라고 보통 보고 있지만 정확히 언제 누가 어디서 시작했는 알려진 바가 없다. 어쨌든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는 굉장히 미국적, 혹은 서양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음악의 형태나 전달하려는 감성이 굉장히 '날 것' 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 흑인이나 코쟁이 백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블루스를 연주하는 순간 그것은 그의 새로운 블루스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적인 블루스는 계속 시도되어 왔고, 성공을 거둔 연주자들도 상당수 있다. 김목경, 신중현 부터 밴드 신촌블루스, 봄 여름 가을 겨울. 강산에나 자우림 YB 같은 밴드들도 블루스에 그 뿌리를 둔 음악을 하고 있다. 블루스와 국악이 공유하는 감성의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에 한국인들도 블루스를 잘한다는 말도 나올 정도다. 최근에는 사자 최우준과 찰리 정이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떠올랐다.


그러나 보통 그들의 음악은 '정통' 블루스에서는 일정 부분 거리가 있는 형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로버트 존슨이나 머디 워터스 같은 아티스트들이 연주하던 초기 형태의 블루스를 추구하는 아티스트가 흔한 편은 아니다. 음악의 스펙트럼이 넓어 애매하긴 하지만 한국 기타의 큰형님 이정선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로버트 존슨 (Robert Johnson)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씨없는 수박 김대중의 음악은 간소화된, 그러한 블루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굳이 나누자면 델타 블루스 정도로 분류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정도로 세세하게 장르를 나누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읇조리는 듯 부르는 노래와 깔끔한 통기타 연주, 하모니카로 그는 친근하고 익숙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즘 말로 '썰을 푼다' 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면에서는 김광석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가사다. 300/30은 함축적인 하나의 이야기이다. 보증금 300에 월세 30으로는, 서울 시내에서 살 수 있는 방이 거의 없다. 김대중이 노래의 배경이라고 주장한 10여년 전에도 조금 상황이 낫긴 했겠지만 역시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그러나 화자는 그 적은 돈으로도 어떻게든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신월동, 녹번동, 이태원으로 지도에서 삼각형을 그려보면 가운데에 홍대, 합정, 신촌이 위치한다. 어떻게든 홍대 근처에 살겠다는 그는 아마 음악인 김대중 본인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옥상, 지하실, 유흥가 근처를 부동산 중개인과 전전하고 평양냉면을 먹고싶다 한다. 이리 저리 치이고 지친, 화자의 심정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여기에 바로 블루스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김대중은 구수하게도 털어낸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동네 백수 형이 해가 저물 무렵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앉아서 본인이 고생한 얘기를 노래로 듯한 기분이 든다. 친근하고 유쾌하며,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근 유행하는 단어가 '김치~~' 이다. 김치남 김치녀 같은 비하적인 단어를 제외하면, 한국 스타일을 나타내는데 쓰이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김대중의 블루스를 된장 블루스라고 부르고 싶다. 김치는 맵고 상큼한, 자극적인 맛이다. 반면 된장은 부드럽고 진하고 구수하다. 그 맛에서 무르익기 까지 걸린 시간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김대중의 음악이 그렇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씨없는 수박 김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그에게서는 세상과의 투닥거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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