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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Jun 21. 2021

산후조리, 우주를 건너

나는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았다.

내가 어쩌다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본다.


첫째,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는 이 시국에

신생아와 함께 알 수 없는 타인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에 간다는 것이 불안했다.

둘째, 낯선 곳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나의 예민함 때문이었다.

특급 호텔급의 깔끔함이 아니면 아무리 지저분하더라도 집이 맘 편하고 좋을 것 같았다.

셋째,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믿고 맡기지 못하는 나의 유난스러움 때문이었다.

아기는 엄마와 있어야 가장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24시간 모자동실을  바에야 집이 낫겠다 싶었다. (물론, 아기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하지만, 집에 온 지 30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빠가 처음인 나의 남편과

신생아를 돌본 게 벌써 3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인 친정엄마는 우왕좌왕이었고

몸이 성치 않은 나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내 몸은 시간이 갈수록 놀랍도록 부어올랐다.

손 발이 너무 부어 손가락과 발가락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았다.

슬슬 젖몸살이 시작되려는지 감기 기운도 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뒤돌아서기가 무섭게

아기는 또다시 배고프다고 온 힘을 다해 울어댔다.

침대에 누워 내 몸을 추스르기는커녕 한시도 쉴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최악이었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다.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서둘러 출산 전에 알아두었던 산후 출장마사지를 하는 업체에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했고,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 산후도우미를 신청하였다.


다음날, 마사지를 해주시는 분이 오셨다.


우리 집 거실에 간이침대를 설치하고, 관리가 시작되었다.

관리사분이 내 어깨를 한번 주물러 주시는 순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동안 내 몸이 얼마나 비정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관리를 받는 내내 들려오는

시작도 끝도 없는 명상음악은

어제도 오늘도 없는 육아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부터 3주 동안 산후관리사분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관리사님은 우리 집에 오시자마자

아기를 울리지 않은 채로 기저귀를 갈아주시고,

속싸개와 배냇저고리를 예쁘게 정리해주셨다.


관리사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대접에 밥과 미역국을 가득 담아 허겁지겁 마시다시피 먹었는데

매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정갈하게 차려주셨다.

그것만으로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


두 분의 도움으로 점점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나의 최애 영화 '그래비티'가 떠올랐다.

시간과 공간이 삭제된 무중력의 공간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아득하게 보이는 구조선을 만난 기분이었다.


남편,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마사지 선생님, 산후 관리사 선생님 등

여러분의 도움으로 나와 나의 아기는 무사히 산후조리를 마쳤다.


산후조리를 집에서 해서 더 좋았는지 더 힘들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나의 회복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분명하게 좋은 점은 아기랑 하루종일 붙어있을 수 있고, 내 아기의 기질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일찍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출산을 한다면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고통스러운 날들을 하루하루 버텨왔고

아무도 모르게 눈물로 며칠 밤을 지새웠다.


산후조리원에 가보지 않았지만 아마 그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후조리를 하는 산모가 마냥 즐겁고 행복할 리 없다.

아무리 좋은 산후조리원에 간다 해도 속 편하게 천국을 누릴 산모는 없다.

매일 밤 성치 않은 몸으로 아기를 안고 발을 동동 구르며

무중력의 공간에서 구조선을 기다리는 모습일 것이다.


울기만 하던 나의 아기와 아무것도 못하던 나



<에필로그>

퇴고를 남편에게 부탁했고 글을 읽어본 남편이 물었다.

'그럼 다시 돌아가면 산후조리원 갈 거야?'

나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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