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에 다녀온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임신테스트기를 집어 들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주 희미한 선이 보이는 듯했다.
변기에 앉은 채 임테기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불빛에 가까이 가서도 보고, 밖으로 나가 안경을 찾아 끼고 다시 보았다.
내 눈에는 분명 두 줄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역시, 부석사가 짱이야!'
사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수준의 희미한 선이었다.
너무 기뻤지만 또 한편으로는 검사 결과의 오류일까 두려웠다.
다음날 다시 검사를 해보았을 때 선이 연해진 것 같아서
또 다음날 다시 검사를 해보고, 다른 회사의 제품으로 다시 검사해보고...
병원에 가서 확실한 결과를 얻기 전까지 5번이나 임테기 지옥에 빠졌었다.
임테기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은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 선고를 받는 것뿐이다.
토요일 이른 아침 산부인과에 갔다.
진료 개시 전인데 병원엔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산모들이 대기 중이었다.
병원의 시스템에 익숙해 보이는 산모들 사이에서 나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여러 모습의 산모들을 보았다.
대부분은 나보다 젊거나 비슷한 나이 때였고,
하나같이 얼굴은 곱고 연예인들처럼 탄력 있고 날씬한 몸매에 배만 볼록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나는 피부와 머리가 푸석하고 살도 많이 찌고 부어
둔해 보이는 모습의 임산부를 머릿속에 그려왔었다.
내 착각이었나 보다.
아님 임산부들도 관리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가?
(이에 대한 해답은 임신 중기가 넘어가면서 풀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몇 가지 문진을 하신 뒤 초음파로 아기를 보여주셨다.
아기는 내가 예상한 날에 생긴 게 맞고,
검은 구멍 같은 것이 아기집이며,
그 아래 3mm의 작은 저것이 나의 아기라고 설명해주셨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작은 것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심장이 뛰는 것이었다.
저 작은 친구를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 내 자궁이
부지런히 집을 지었던 거구나.
그래서 아랫배가 쿡쿡거리는 느낌이 있었겠다 싶었다.
또, 저 친구의 심장을 뛰게 하느라
나는 기운이 없고 졸렸던 것이구나...
세상에!
저 작은 생명체 안에 팔딱이는 심장이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고 대견해 보이긴 했지만
우리가 정말 부모가 되었다는 감동이 있거나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분명 기쁜 일이란 건 알겠는데 아직 실감이 안났다.
다만, '앞으로 평생 저 작은 생명체를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책임감과 약간의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먹고, 충분한 휴식을 하여
아주 크고 튼튼한 집을 지어주고
저 작은 친구가 더 힘차게 파닥거릴 수 있게 도와주어야겠다.
잘해보자 꼬맹아!
<남편의 참견>
아가야 엄마가 만든 너의 집은 아주 크단다! 맘껏 뛰어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