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반은 정경대학 건물 1층 구석에 있었다. 말이 1층이지 실제론 지하나 다를 바 없었다. 정경대학 건물 2층이 지면과 같은 높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시반에서 나올 때면 땅굴에서 나오는 두더지가 된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곳에서 방송 꿈나무가 자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저학년들은 고시반의 육중한 철문이 열릴 때마다, 땅 위로 고개를 내민 두더지를 본 것처럼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아직 학교 지리에 익숙하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저 낮은 곳으로 임하는 언론인이 되라는 뜻이었다고 믿고 있는 나는, 하루빨리 지하생활을 졸업하리라 다짐할 뿐이었다.
언론고시반의 문을 두드린 건 4학년 기말고사를 치른 날이었다. 문을 빼꼼 열고 입실 원서를 놓고 가려는 나를 한 실원이 불러 세웠다.
“무슨 PD 지원하세요?”
어리둥절하는 나에게 재야의 고수쯤으로 보이는 실원이 재차 물었다.
“예능, 시사교양, 드라마 PD 중 뭘 지원하냐고요?”
한결 수월해졌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객관식에 강하다. 드라마 사랑은 둘째치고 왠지 예능과 교양은 나에게 어울리는 옷 같지 않았다. 지원분야 칸에 또박또박 ‘드라마’라고 썼다. PD를 향한 지긋지긋한 미련의 서막인 줄도 모른 채.
얼마 후 입실시험을 치렀고, 언론고시반 실원이 됐다. 첫 실전 무대는 SBS였다. 지상파 3사이기에 고시반 실원 대부분이 지원했다. 자체적으로 여러 번 모의고사를 치르면서 초조하게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사실 첫 시험이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시험장 분위기를 익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서류전형, 필기전형을 연달아 통과하고,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이문세 형님도 노래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알 수 없는 거라고.
하지만 면접에 오르고 나니 연습이라고 여겼던 나도 괜한 기대를 품게 됐다. 면접을 보러 생애 처음으로 SBS 목동 본사에 방문한 날, 기대감은 클라이맥스에 치달았다. 특히 13층에서 드넓은 유리창 너머로 목동을 내려다볼 때 극에 달했다. 오늘 면접이 연습이 아닌 SBS PD가 되는 과정이 되길 바랐다. 인생은 연습 없는 실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 차례가 오기 전 달뜬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썼다.
면접장에는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들어갔다. 훈련소의 신병처럼 잔뜩 긴장한 채, 직원의 안내에 따라 차례대로 자리에 앉았다. 현직 PD로 보이는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의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들과 우리들 사이에는 적막한 강만 흘렀다. 간간이 종이 넘기는 소리 너머로 소곤소곤 말하는 게 들렸다. 그중 ‘학보사’라는 말이 귀에 와 꽂혔다. 학보사는 내 자기소개서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대학생활 팔 할을 바친 곳이기 때문이다.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등 해외 경험이 없는 나에게 학보사는 강력한 무기였다. 학보사라는 이름이 아닌 학보사에서의 경험을 봐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쩐지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학보사, 이거 다 하는 거 아니야?”
자기소개서를 숱하게 본 면접관에게 학보사는 대수롭지 않은 이력인 모양이었다. 이게 불길한 전주곡이었는지, 면접관들은 내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따위의 공통 질문을 받았던 것 같고, 나는 면접관들을 만족시킬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첫 면접, 아니 첫 방송국 견학을 마쳤다.
그해, 면접 결과가 발표되는 날까지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놀라지 마시길. 면접을 그 지경으로 치러도 일말의 기대를 품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모순 덩어리이고 불완전하면서도 자신에게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때로는 당연한 현실을 맞닥뜨리고도 한동안 받아들이지 못한다. 물론 그 기대는 곧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PD가 되기에 나는 그다지 매력적인 사람도 아니었고 그에 어울리는 실력도 갖추지 못했다. 사실 면접까지 오른 건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그때에는 이 사실을 나만 몰랐을 뿐이었다. 거품이 빠지자 슬럼프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