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기자 Ⅰ

by 라이언

한 번 아니면 아닌 거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첫인상이나 결심이 크게 바뀌지 않는 편이다. 특히 소개팅이 그렇다. 월례행사처럼 소개팅을 하다 보면, 그간의 경험치가 쌓여 첫인상이 결정되는 시간이 갈수록 짧아진다. 보통 5초면 오늘의 소개팅이 의무 방어전인지, 진취적인 공격전인지 결정된다. 일종의 딥러닝 효과인 셈이다. 물론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지만.


학보사 기자를 하는 동안 평생 어떤 일을 하면서도 얻지 못한 교훈을 배웠다. 바로 ‘기자를 평생의 업으로 삼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이었다. 아무리 학생기자라고 하더라도 기자는 기자였다. 편집회의가 열리는 월요일이면, 아이템에 대한 압박감을 심하게 받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달력에서 월요일을 없애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취재원을 만나는 등 여러 루트로 취재를 하면서 딜레마에도 빠졌다. 마감날에는 문자 그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깨달은 소중한 교훈을 잊은 채, 기자가 된 것이다. 그것도 학생기자가 아닌, 직업으로서의 기자 말이다. 시간의 더께가 쌓이면서 교훈은 잊힌다. 그래도 한 번 아니라고 한 건 몸에 아로새겨지는 모양이다. 출근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덜컥 선배한테 그만두겠다고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후배가 들어왔다고 반겼던 선배에게는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장 나부터 살아야 했다. 몸이 거부하는 걸 어쩌겠는가. 사쓰마와리(경찰서를 돌며 취재한다는 뜻의 은어)를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뜻밖에 암초는 부모님이었다. 반대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심하셨다. 어머니는 찬거리를 싸서 아예 자취하는 원룸으로 올라오셨다. 이건 장기전도 불사하겠다는 신호다. 쉽게 물러서지 않으시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돋보였다. 지금이야 신문사와 방송사가 사양 산업이고, 기자가 ‘기자님’이 아닌 ‘기레기’로 불리지만, 부모님 세대에는 귀한 직업이었다. 더구나 아들이 MBC 기자가 됐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뒤였다.


아버지의 주장은 한결같으셨다. 첫 직장이 평생직장이라는 신조를 설파하신 것이다. 사실 아버지 말씀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부모님 세대에는 누구나 그런 줄 알고 사셨으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만, 이번 판은 결국 내가 물러섰다.


다시 출근하려고 하니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미 부장님한테까지 보고가 됐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눈치를 보느니, 취재를 하러 나가는 것이었다. 아직 신입이어서 뉴스 리포트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았다. 낮에도 밤에도 밖으로 돌아다닐 명분은 충분했다.


그러다가 겸사겸사 전통시장에 들렀다. 노상주차장을 관리하는 어르신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납금을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일 업체에 일정액을 내고, 나머지 돈을 갖는 구조였다. 이러다 보니 최저임금은커녕 마이너스가 발생해 자신의 돈으로 메우는 날도 빈번했다. 시청에서도 이미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업체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모양이었다. 어르신을 설득해 뉴스 리포트로 제작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이게 내 입봉작(첫 뉴스 리포트)이 됐다. 입사한 지 두 달도 안돼 첫 리포트를 낸 것이다.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 보통 사쓰마와리가 끝나고, 그러니까 입사 3개월 후에 첫 리포트를 한다. 더 늦는 경우도 있다. ‘미운 오리 새끼가 날아오른 순간’이었다고 쓰고 싶지만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었다. 이게 사실에 가까운 표현이다. 1편 만한 후속 작품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후로는 이렇다 할 뉴스다운 뉴스를 내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