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대차게 비가 내렸다. 교토로 여행을 간 날이었는데, 갑자기 후드득 소리와 함께 비가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게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인 그런 비였다.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는 한낱 미물에 불과한 터라, 언제 그칠지 가늠할 수 없었다. 급한 대로 처마 밑으로 피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다가 하루 일정을 통째로 날릴 순 없는 노릇이어서, 가까운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가서 비닐우산을 샀다. 슈크림빵을 사 먹으려고 남겨둔 동전을 탈탈 털어 값을 치르고 나오는데,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헛헛했다. 그래도 어찌하랴.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때도 느닷없이 비가 내렸다가 그치곤 하는 여름철이었다. SBS 면접전형에서 떨어지고, 손대는 방송사마다 모두 떨어지고 있었다. 마이너스의 손이 따로 없었다. 말 그대로 서류 광탈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와 두 시 탈출 컬투쇼다! 어서 모여주세요. 하루에 딱 두 시간, 최고의 쇼가 펼쳐집니다. 따분함도 유후, 졸린 눈도 유후, 한 방에 날려줘요 컬투쇼”도 아니고, “차마 눈 뜨고 보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 임산부와 노약자, 심신미약자는 시청을 금해주시길 바란다”,라고 안내방송을 해주는 일도 없이 내 인생 최대의 광탈 쇼가 펼쳐졌다.
문제는 이게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고지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눈앞에서 당하는 당사자인 나만, 이 비가 아니, 이 쇼가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어서 갑갑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한 건 아니었다. 발버둥이라도 치는 게 취업준비생의 마땅한 도리였다.
실험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써보기도 하고, 매번 드라마 PD 자리가 나는 건 아니어서 시사교양 PD에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마찬가지였다. 탈락. 탈락을 말하는 장문의 첫 단어만 봐도 대번에 탈락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무릎이 닿기도 전에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도사처럼. 자연스레 언론고시반에서 공부하는 시간보다 학교 후문에서 술을 퍼마시는 날이 늘어갔다.
한 번은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가 기자 전향을 권했다. 글 쓰는 스타일이 PD보다 기자에 더 어울린다는 게 그 이유였다. 기자라니, 군 입대 전까지 학보사에 청춘을 바친 적은 있지만 결코 기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학보사가 내게 가르쳐 준 건 다른 직업은 몰라도 기자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하지만 남의 말을 경청하는 수준을 넘어 팔랑귀인 데다, 수개월 동안 탈락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취업의 작은 가능성이라도 보이는 기자 전향을 대차게 거절할 수 있는 배짱은 없었다. 마침 그해에는 지역 MBC 기자직 공채 문이 잇달아 열렸다. 게다가 청주 MBC는 모든 응시자에게 필기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다시 말해 서류전형이 없었다는 말이다. 서류 광탈 쇼로 인해 그로기 상태에 빠진 내게 희소식이었다. 눈에 흙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
고시반 실원들은 지방이라고 주저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시험장 공기라도 맡아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청주 MBC 시험이 신의 한 수가 됐다. 필기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지만, 내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거짓말처럼 지원하는 곳마다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필기시험을 거쳐 면접을 보는 날도 더러 생겼다. 계절은 벌써 여름을 지나 크리스마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어디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올해를 넘기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크리스마스에 딱히 데이트 약속도 없었던 터라, 공부하기 안성맞춤인 때라고 자위했다. 결국 연말에 한 지역 MBC 기자직에 합격했다. 합격만 바라보고 기관차처럼 달려왔지만 막상 합격소식을 수화기 너머로 들었을 땐, 얼떨떨했다. 그때가 12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