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밥벌이는 해야지

by 라이언

홍보를 떠올린 건 고해성사 같았던 면접을 마치고 나서였다. 대기업 문을 두드렸지만, 서류전형에서 모두 물을 먹은 터였다. “귀하는 서류전형에 합격했습니다”보다 “당사 대졸 신입사원 채용에 지원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채용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지원해주셨습니다. 귀하가 당사에서 훌륭한 역량을 펼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여러 사정으로 필기전형에서 모실 수 없게 된 점을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라는 장문을 접하는 일이 잦았다. 누군가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의 사례를 찾으라는 과제를 내주면, 나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업 채용 결과 통보를 보여줄 것이다.


탈락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자기소개서를 먼저 살폈다. 지원동기에 애사심을 제대로 피력하지 않았는지, 업무 관련 경험이 부족했는지, 본인 단점에 단점 아닌 단점으로 포장하지 않은 채, 진짜 단점을 고백한 게 패착이었는지 꼼꼼히 따져봤다. 원인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 있었다. 바로 전공이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상경계열 전공자를 원했다. 보통 대학생처럼 나도 복수전공을 했다. 문제는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지 않은 것이었다. 해마다 한 학교에서 수백 명의 상경계열 전공자가 졸업하는 마당에 나는 신문방송학과 영상정보학을 복수 전공했다. 엎어치나 매치나 언론정보학이었다. 기업에서 수많은 상경계열 전공자를 제쳐 두고, 굳이 나를 뽑을 리가 없었다. 경영학을 등한시했던 지난날이 후회됐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반기 공채 끝자락이 다가오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국 나를 원할 만한 기업을 찾기로 했다. 지원자격이나 우대사항에 언론정보학 전공이 기재된 기업이 일 순위였다. 하지만 언론정보학 전공자를 찾는 기업은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간혹 홍보팀 채용 공고에서 언론정보학 전공자를 우대한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경력자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던 차에 모교 병원 홍보팀 채용공고가 났다. 홍보경력은 없었지만 모교 병원인지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필기시험에 들어온 감독관이 한 말 때문이었다.


“이번에 안타깝게도 한 명만 뽑습니다. 다들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순간 시험장 분위기가 굳어졌다. 논술 답안지 줄 사이에서 춤추던 내 손도 화석처럼 굳어 버렸다. 감독관은 아차 싶었던지, 성난 민심을 달랠 만한 말을 찾으려고 애썼다. 우물거리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B병원 홍보팀 채용소식이었다.


안타깝게도 모교는 4년간 등록금을 바친 졸업자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홍보경력이 있거나 두 명을 뽑았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 다 가정에 불과했다. 지난 일을 곱씹는 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계절이었다. 어디라도 지원해야 했다. 주저하지 않고 B병원 홍보팀에 지원했다.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필기와 면접전형을 치렀다. 당시에는 B병원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병원인지도 몰랐다. 시험을 치르러 병원 로비에 들어섰을 때, 높디높은 천장에 놀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무슨 연유인지 예정에 없던 면접을 한 번 더 치렀고, 합격자 발표일을 기다렸다. 그해 병원이나 대학 홍보팀 채용은 더 이상 없었다. 그만큼 절실했다.


조마조마했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쳤다. 처음이 아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짝사랑처럼. 합격여부를 조회해보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B병원 채용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짝사랑하던 여자에게서 온 편지를 열어보듯이 결과 확인 버튼을 클릭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여덟 자였다. 구직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합격소식에 가슴이 뭉클한 건 매한가지였다. 첫 직장을 그만둔 지 거의 1년 만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구체적으로 몰랐지만,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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