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게 인간이다. 그 유효기간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요즈음 한국 사회가 얼마나 퇴사를 권하는가. 한국 사회가 이처럼 강력하게 뭔가를 권했던 건 경제 성장기 ‘술’을 제외하고 처음인 듯하다. 꿈을 위해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유죄라고 선고하는 공기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퇴사 권하는 사회를 핑계로 댔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흔들리는 나 자신도 문제였다.
꾸준히 자기소개서를 써냈다. 하지만 꾸준함에 비해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사실 원인을 잘 모르겠다. 이미 밥벌이를 하고 있던 터라 간절함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해마다 먹는 나이와 주름도 마이너스였을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지원자들과 비교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으면서도 나이만 많은 지원자를 뽑을 리가 없지 않은가.
꾸준히 한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회사에서 누가 시킨 건 아니지만,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플랜 A인 방송국 놈이 될 수 없다면, 지금 일하는 곳을 방송국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웹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사실 드라마를 만들 만한 여건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영상 공모전에서 운 좋게 수상한 적은 있지만, 카메라 감독은 따로 있었다. 즉, 혼자 카메라로 촬영하고 편집해본 경험이 일천했다. 대형 병원인지라 사내 방송팀이 있었지만, 이미 연간 제작 스케줄이 잡혀 있는 상태였다. 협조를 받기 쉽지 않았다. 당장 나부터 회사에서 맡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프로젝트를 진행시켜야 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된다고 하지 않는가. 혼자 궁리한 끝에 내린 결론은 스틸 사진 여러 장을 이어 붙여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었다. 일명 포토툰이었다. 포토툰은 포토와 웹툰의 합성어로, 사진으로 구성된 웹툰을 말한다.
파트장님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예상 밖이었다. 괜히 쓸데없는 일을 벌이지 말고, 맡은 일이나 제대로 하라고 하실 줄 지레 짐작했던 탓이다. 물론 기본적인 홍보 업무에 방해가 되어선 안 되었다. 나중에는 포토툰에 직접 출연도 해주신 것은 물론이고, 플랫폼이었던 페이스북에 좋아요도 열심히 눌러주셨다. 첫 번째 드라마, 아니 포토툰은 나름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끌었다. 공전의 히트까지는 아니었지만, 커뮤니티 사이에서는 유명세를 탔다. 총 14편을 올렸는데 누적 조회수가 90만 회에 달했다. 광고 없이 자연적인 도달로 달성한 성과여서 더 뿌듯했다.
포토툰 제목은 ‘나는 간호사다’였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간호사는 주목받지 못한 직업이었다. 메디컬 드라마는 의사의 독무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의학정치 드라마의 장을 연 <하얀거탑>은 야망을 가진 의사들의 끝없는 질주와 종말을 다뤘고, 오랜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한석규의 <낭만닥터 김사부>는 지방 병원을 배경으로 진짜 의사의 의미를 그려냈다. 이들 드라마 주인공은 의사였고, 간호사는 보조 인물에 그쳤다. 의사를 도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극의 재미를 더하는 감초 역할일 뿐이었다.
누구도 가지 않았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간호사 이야기가 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첫째, 병원 홍보실이 할 수 있는 콘텐츠였다. 둘째, 타깃 지향형 콘텐츠였다. SNS 주 이용자는 10~20대 여성인데, SNS를 하는 현직 간호사나 예비 간호사는 대부분 10~20대였다. 타깃 전략에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대략 줄거리는 이랬다. 간호대생이 대형병원에 입사하여, 암병동에 배치받고, 선배들과 환자들을 통해 성장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본격 신입 간호사 성장기, ‘나는 간호사다’가 탄생했다.
2014년 6월 13일 금요일. ‘나는 간호사다’ 첫 편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다음날 아침,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 계정에 접속한 나는 화들짝 놀랐다. 밤새 게시물 좋아요가 100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페이지 좋아요가 100에 불과했던 때라, 게시물 좋아요가 100을 넘긴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 번 불붙은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 3일 만에 좋아요 3,000을 넘겼고, 게시물 총 도달수만 18만을 넘긴 것이다.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지 못해 얼떨떨했다. ‘나는 간호사다’가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출연한 간호사도 SNS에서 나름 유명인사가 됐다. 연락이 끊겼던 학창 시절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고, 다음 해 새로 입사한 후배가 페이스북에서 봤다고 알은체를 했단다. SNS와 콘텐츠가 가진 파급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