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여행영상을 본 친구가 물었다.
“니 영상제작이 수준이 어느 정도나 되는 거야? 영국남자 만들 수 있어?”
잠시 머릿속으로 <영국남자>를 떠올린 나는 이렇게 답했다.
“어느 정도는. 더 필요한 건 만들면서 공부하면 돼”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내 말을 거들었다.
“맞아. 영상에 무엇을 담느냐가 중요하지. 편집 테크닉은 배우면 되는 거 아냐?”
<영국남자>는 유튜브에서 게시물당 조회수가 300만에 달하는 인기 채널이다. 영국에서 온 조쉬와 친구들이 낯선 한국문화를 체험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영상으로 담았다. 사실 <영국남자>에는 고퀄리티 예능자막도, 화려한 영상편집도 없다. 영상미보다 내용에 방점이 있는 콘텐츠이다.
모든 장비를 갖춰야 산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등산화 없이 운동화를 신고, 스틱 없이 맨손으로도 산에 오를 수 있다. 영상 콘텐츠 제작도 마찬가지다. 모든 촬영기술과 편집기술을 익힌 뒤에야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 콘텐츠 타깃을 선정하고, 콘텐츠 소재와 주제를 잡는 게 우선이다.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실제 영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그다음에 배워도 늦지 않다. 더구나 인터넷에서는 완성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이는 게 아니라,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사용자 의견을 반영하여 개선하는 게 추세다. 때로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막무가내 정신이 필요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프리미어와 애프터이펙트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뭉뚱그려 둘 다 영상편집 프로그램인 줄로만 알았다. 당시에는 맥북에 설치된 아이무비를 활용해 여행영상을 편집하는 정도였다. 둘의 차이를 어렴풋하게 알게 된 건 창립 기념영상을 제작하면서다. 창립기념일에 상영할 영상을 전문 제작업체에 맡겼는데, 요구했던 수정사항이 모두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행사 나흘 전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담당자였던 나는 업체에 직접 찾아가 함께 작업을 했다. 이틀간 밤을 새운 끝에 기념영상은 행사 당일 오전 9시를 넘어 가까스로 완성할 수 있었다. 미뤄둔 잠 탓에 비몽사몽이었지만, 어깨너머로 전문가의 편집을 배울 수 있었다. 뭐든지 단기간에 학습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목표는 높게 일정은 빠듯하게 잡을 것을 권한다. 이제 남은 일은 스스로를 절벽 끝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어제보다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연습 삼아 여행 영상을 제작한 나는 모바일 영상 콘텐츠 제작을 올해 목표로 세웠다. 단기간 학습이 가져온 부작용(?)이었다. 무언가 새로 만들 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방에 틀어박혀 A부터 Z까지 일일이 익히는 것이다. 그 분야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응용으로 넘어간다. 두 번째로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많이 보고 외우는 것이다. 그 가운데 장점만 선별하여 내 것으로 취한다. 무엇이 더 좋은 방법일까. 후자가 효과적이다. 실패 확률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무제한으로 시간이 있다면 모를까. 현실에서 우리는 늘 시간과 다툰다.
나는 성공한 모바일 영상부터 조사했다. 그 안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공한 모바일 영상 콘텐츠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로 영상 재생시간이 짧았다. 야동도 1분이 넘으면 끝까지 보지 않는 시대다.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막간을 이용해 모바일 영상을 즐긴다. 길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종료한다. 전국 노래자랑 심사위원처럼. 그야말로 가차 없이 땡이다.
그렇다면 마냥 짧기만 하면 될까.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것도 8초 안에 말이다. 실제 AP가 2012년 조사한 성인의 평균 집중시간은 8초다. SBS가 소치 동계올림픽 때 모바일 전용 콘텐츠로 선보인 <오늘의 8초>를 보자. 여러 경기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선정해 8초 영상으로 보여줬다. 당시 모바일에 특화된 시도로 호평을 얻었다.
둘째로 정사각형 영상이었다. 정사각형은 모바일에 적합하다. 핸드폰을 회전하지 않아도 작은 화면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가로가 긴 화면은 핸드폰을 회전하지 않고서 보기엔 작다. 답답할 수밖에 없다. 버즈피드가 선보인 <테이스티>도 그랬다. 푸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푸드 콘텐츠로 정면 승부를 한 <테이스티>의 특징은 두 가지였다. 바로 정사각형 영상과 수직 앵글이다. 이 덕분에 첫 10초 이내에 시각을 자극하는 레시피가 화면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이다. 푸드 포르노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제 남은 건 창작의 고통이었다. 장고 끝에 낙점한 소재는 바로 실험이었다. 단 시간 내 시각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매력적이었다. 콘텐츠 타깃은 물론이고, 홍보하는 기관의 정체성과도 맞아떨어졌다. <테이스티>를 벤치마킹하여, 정사각형 화면과 수직 앵글의 모바일 영상을 만들었다. 수직 앵글 촬영 방법을 몰라 애를 먹었지만, 슬라이더를 이용해 고비를 넘겼다. 그렇게 40초 내외의 실험 영상 <케미컬>이 탄생했다.
아직 모자란 게 많아서 한 편 한 편 만들 때마다 개선하고 있다. 성적도 그리 나쁘진 않다. 평소 페이지 게시물 도달수에 비해 2배 이상 많다. 물론 페이지 좋아요 수가 워낙 적은 터라 절대적인 수치는 높지 않다. 그래도 1년 전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프리미어와 애프터이펙트도 구분하지 못했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무엇이든 해본 사람만이 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나한테 부족한 게 무엇인지 말이다. 모르거나 부족한 건 배우고 훈련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알게 된다.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삶의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흔에도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덧붙이면 전혀 새로운 분야의 일이더라도 할 수 있다는 괜한 자신감이 생긴다. 모두 해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소득이다. 성공하는 콘텐츠의 핵심은 아이디어보다 실행력이다. 일단 저질러 보시라. 세상에는 놀라운 일들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