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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Jun 02. 2022

아버지 쇼핑의 비밀

#가족 #공대 #사랑

”니 엄마가 여름에 입을 옷이 없대.”

아버지가 산보를 나가려고 채비를 하다 말했다.

내가 언제 그랬어?”

엄마는 손사래를 치면서 반박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이 맨날  타령이지.”

하긴 아버지는 쇼핑을 하고서도 돌아서면 옷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엄마는  아들과 아버지를 챙기느라 정작 본인 꾸미는 데에는 소홀하셨다. 목이 늘어난 라운드 티셔츠와 다용도로 입는 고무줄 달린 바지가 엄마 운동복이 되기 일쑤였다.  두어  전에 반팔 티를 사시긴 했는데, 정장 차림에 어울릴지 몰라도 운동하는 데에는  맞지 않았다.


산보 가기 전에 아울렛 먼저 다녀오세요.” 내가 선뜻 카드를 내밀면서 말했다.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고 저공 비행하던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카드를 들고 앞장서셨다. 토이저러스에 가기  달뜬 조카처럼. 엄마는 아들 등골 빼먹는다면서 카드를 돌려주려고 하셨지만, 계절마다  사는 재미도 누리시라는  말에  이기는  아버지를 따라 나가셨다.


띵동. 핸드폰이 경쾌하게 울렸다. 이내 화면이 밝아졌다. 카드 결제 알림 문자였다. 결제 금액은 35,000. 20     , 이어달리기를 하듯 7  재차 울렸다.  매장에서  가지를  모양이었다. 그렇게  19  남짓 결제됐다.  분이 쇼핑한 것치곤 검소했다. 이래서 내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박싱 시간이었다. 엄마는 분홍색 반팔 티를 펼쳐 보였다. 얼마  이찬원 콘서트에 다녀오셨는데, 혼자 핑크색 티를 입지 않아 난처했다고 하셨다. 모두 예스라고 하는데 혼자서 노라고 외치는 것처럼. 엄마는 다음 콘서트에   입을  샀다고 하셨다.


 띵동의 장본인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무채색 체크 바지와 청색 체크 남방셔츠를 사셨다. 상하의 체크로 한껏 멋을  아버지를 상상하니 아찔해졌다. 나는 그만 아버지 패션 감각에 진저리를 쳤다. 차라리 빨간색 체크 셔츠를 사라고 했는데, 기어이  저걸 셨다. 엄마가  속마음을 눈치채셨는지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장롱  오래된 체크 셔츠와 판박이었다.


아버지의 체크 사랑은  오래됐다. 퇴직 전에는 외갓집 가는 날이 아버지 쇼핑 날이었다. 셋째 외삼촌이 외조부를 모시고 살았는데, 읍내에서 옷가게를 하셨기 때문이다. 신사정장을 파는 그곳에는 유난히 체크 셔츠가 많았다. 특히 코발트색보단 남색에 가까운 파란색과 흰색이 수직으로 교차하는 체크를 편애하셨다.  체크 셔츠를 두고 엄마는 교복 같다고 하셨다. 간혹 엄마가 붉은색을 권하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청색 외길을 고집하셨다. 파란색 체크 셔츠를 입으면서 복잡다단한 직장 생활  평화를 간구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셔츠는 둘째치고 바지가 문제였다. 셔츠는 보수적인 선택이었던 반면에 바지는 다소 과감해 보였다. 평소 아버지답지 않은 선택에 적이 놀랐다. 잔체크였으니 망정이지, 패턴이  컸으면 체스판을 인쇄한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아마 SS 패션쇼 무대에 서는 모델 말곤 소화하지 못했으리라. “청바지 입혀 보니까 보기 좋더라. 그래도 아버지가 우리보다 다리는 길쭉하잖아?” 엄마는 동의를 구하는  나를 바라보셨다. 아마 요만큼은  것이다. 내가 엄마 장단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 먹을수록 젊은 애들 말을 들어야 .”

엄마가 연이은  끝에 묵직한 펀치를 날렸다.

아니 보기만 좋구먼.”

아버지가 남방셔츠를 가슴에 대면서 항변했다.

청바지는 입어 봤는데 무겁고 불편해.”

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바지는…… 실은  엄마랑 커플룩이야.”

순간 우리는 뭇웃음을 터뜨렸다.  있을 사촌동생 결혼식에 어머니랑 맞춰 입고 가려고 셨단디. 아버지의  그림에 놀라는 한편 청바지보다 앞선 생각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엄마도 그리 싫지 않은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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