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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Sep 20. 2022

불행이 생기는 이유

#좌절 #극복 #명언 #인생

미사를 보러 성당에 갔다. 성당에 들어서는데 못 보던 잡지가 비치되어 있었다. 표지가 한여름의 숲처럼 푸르러서 눈에 띄었다. 신자들의 투고로 꾸며진 수필 잡지였다. 요즈음에 글을 쓰는 터라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온전한 글 한 편이 아닌 단 한 줄의 문장이 가슴에 깊숙이 들어올 줄은.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적은 거의 . 그럴 때에는 잘못을 수정하고 다시 시동을 걸면 된다. 하지만 내게는 핑계 치트 키가 . 다름 아닌 과거의 불행이다. 불행은 꽤나 중독적이다. 스마트폰처럼 자기 없이   없게 만들어 버려서다. 오늘의 문제를 어제의 불행에 전가했다. 어떤 때에는 상황을 탓하고 어떤 때에는 사람을 탓했다. 그건 쉬운 일이어서 한밤중의 알코올처럼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튿날 숙취처럼 불행은  다른 불행을 나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 글쓰기를 만났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글에만 신경 쓰느라 불행의 잔당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글쓰기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의사가 병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해 줄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나으려고 애쓰는 건 환자의 몫이어서다. 나는 자주 의사의 말을 잊었고 약 먹는 일을 빼먹은 것처럼 살았다.


우연히 성당에서 수필 잡지를 본 건 글쓰기에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나만해졌을 무렵이었다. 확실히 글쓰기 전후로 달라진 게 있다. 읽기를 쓰기로 연결시키려고 하는 점이다.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는 날에는 아무 책이나 펼친다. 자극을 받을 수 있어서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는 글을 전개하는 힌트를 얻는다. 그 수필 잡지도 글쓰기에 참고할 요량으로 가져갔다. 한편으로 어떤 선택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잡지 표지를 넘기곤 한 문장에 오랫동안 눈이 머물렀다. “인생의 불행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데 있다.”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말이었다. 마치 나만을 위해 차려진 음식상 같았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잘 먹는 것뿐이었다. 오랫동안 문장을 곱씹다가 구글에 검색해봤다. 로맹 롤랑이 쓴 전문을 보고 싶어서였다. 단 한 문장으로 글쓴이의 의도를 오해할 수도 있고, 나무만 보고 숲이 이렇다 저렇다 묘사하는 건 양치기 소년의 잘못을 반복하는 일이기도 했다.


명언의 전문은 이랬다. “영웅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낸 사람이다. 범인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일만을 바라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기를 놓치지 말고 하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생의 불행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데 있다.” 클로드 모네의 루앙 대성당처럼 불분명한 형체가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나는 다이어리에 문구를 필사했다. 그리고 학생처럼 큰소리로 따라 읽었다. 의사의 조언을 잊을 때마다 꺼내 먹을 생각으로 포스트잇을 붙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클로드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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